[행복한 책읽기] 남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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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남자의 탄생
  • 이우리
  • 승인 2005.0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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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본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과정

남자와 여자가 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면서부터였지만, 사고방식이나 사고구조까지 왜 이리 다른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는 느낌이다.

▲ <남자의 탄생> 전인권 지음. 푸른숲
어렴풋하나마 남녀의 차별이 심한 사회구조 속에서 약자인 여자와 강자인 남자로 길들여져 온 차이라고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이 실제 결혼 생활 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아내와의 갈등을 해결해 주진 못했다.

남자인 나와 여자인 아내의 차이에 대한 관념적인 고민에서만 그쳤을 뿐, 이미 일상화되어 있는 ‘남자’ 인 내안의 ‘잘못된 의식구조’에 대한 고민으로는 전혀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속좁은’ 여자인 아내의 잘못된 사고방식에 대한 끝 모를 분노만 키워왔다고나 할까? 물론 기나긴 싸움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이해에도 눈을 떠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1950년대 생으로 1970년대 대학시절의 대부분을 학생운동으로 지새웠고,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오스트리아 빈대학 정치학과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한 ‘사회학자’의 커밍아웃, <남자의 탄생>.

아내가 먼저 사온 이 책을 훔쳐보면서, 왜 이 사람은 착한 아들, 훌륭한 학생, 친절한 동료로 살아왔다고 하면서도, 또 사회적으로 대학교수라는 성공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지난 몇 년간 가족, 직장, 친구관계에서 거듭 실패를 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학교 등을 거치며 ‘남자’로 성장해 온 저자가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자신의 삶을 무척이나 객관적으로 분석해 놓은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문득 내 안에 무의식적으로 숨어 있는 ‘대한민국 남자’의 표상을 보았고, 그렇게 느끼는 순간 나도 불현듯 이 저자처럼 나의 ‘남자의 삶’에 대해 커밍아웃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용기가 없어 이 자리에서 직접 나의 삶에 대해 커밍아웃을 할 수는 없지만, 이를 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우리 나이로 4살 난 아들 녀석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겪게 된 남자들과 여자들의 인식 차이...

이미 40줄에 들어선 동갑내기로 외동아들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아내와 나는 어린이집 학부모들 가운데 나이로만 따진다면 거의 최고참에 속해 있었다. 특히 아내의 경우는 동갑인 사람이 윗방 아이들 학부모 가운데 몇몇만 존재하고 있을 뿐, 나이로만 친다면 말 그대로 역시 최고의 ‘왕왕언니’ 격에 해당되었다.

그런데 신입들끼리 부부 합동으로 모인 자리에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서로 거리낌 없이 무식한 ‘반말’을 막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분이 나빴다. 이제 겨우 두어 번 얼굴을 마주했을 뿐인데, 이렇게 탁 까놓고 반말을 막 해대다니... 아내를 마구 무시하고 있는 그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오로지 ‘아니,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나와는 영 딴판이었다. 전혀 기분 나쁜 표정도 아니었고, 아니 오히려 그미가 자신에게 그렇게 막말을 해대고 있다는 것조차 전혀 느끼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게 왜 기분 나쁜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때의 상황을 되짚으며 물어 보았을 때, 아내의 대답은 오히려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해대는 나의 진지한 태도를 영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형국이었다.

왜 이럴까? 실제로 그 어린이집 아빠들 사회에서는 물론 농담이기는 하지만 “주민증 까보자”란 진심의 일말을 담고 있는 말들이 횡행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나에게 모르고 반말을 할지라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주 기분이 나쁘다. 아니, 기분을 아예 잡쳐 버려 그런 사람과는 다시는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기까지 한다. 왜 우리 남자들은 이 모양일 수밖에 없을까?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권위주의’에 대한 자기 진단을 내리고 있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가정교육을 통해, 그리고 '학교'라는 공공의 교육을 통해 어떻게 ‘대한의 남아’들을 열심히 육성하고 있는지, 또한 우리 '대한의 남아'들은 어떻게 자기 몸 속에 무의식적으로 '남자'를 내면화 하고 있는지 말이다.

아이를, 특히나 아들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대가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옛날 그 순간, 왜 내가 그런 알 수 없는 행동을 저도 모르게 하고 말았는지, 불현듯 나처럼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지은이처럼 용감하게 '남자'로 살아온 나의 지나온 삶을 결코 커밍아웃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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