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51]새해에 만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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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51]새해에 만난 철학
  • 전민용
  • 승인 2012.01.1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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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에 만난 철학 멘토, 김성우, 알렙

 

안녕하세요.
토끼해 잘 보내고 용해는 잘 맞이하셨습니까? 이어지는 술자리와 모임들은 즐거우셨습니까? 짬을 내어 반성과 계획 같은 성찰의 시간도 가지셨습니까? 좋은 삶을 위해서는 먼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인간관과 세계관, 곧 철학입니다. 올해는 정치의 계절인데 정치인이야말로 균형 잡힌 철학을 가져야 좋은 정치, 큰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새해 종합선물세트 같은 철학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살면서 저절로 인생의 지혜를 깨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치열하게 살다간 분들의 지혜를 늘 가까이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이 책은 자연과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는 나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알아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나와 사회와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의문에 대한 모색입니다. 저자는 존재와 실존의 문제, 사회와 세계의 이해 및 비판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와 연관된 8명의 철학 멘토를 소개합니다.

현대 사회는 남보다 앞서고 강해지기를 바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쟁에서 이겨 성공, 돈, 권력을 얻기를 욕망합니다. 이런 욕망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도록 강요된 욕망입니다. 강요받은 선택 하에서 강해진다는 것은 실은 무언가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성공의 노예, 돈의 노예, 권력의 노예, 명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의 삶을 버리고 진정한 생명력이 넘치고 진정으로 강해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철학에는 근본 물음이 있습니다.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존재론 또는 형이상학이라고 합니다. 성리학이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이라면 실학은 농업, 상업, 공업을 연구하는 형이하학입니다. ‘형이상’이란 말은 형체를 초월한 것, 그래서 원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형이상은 추상적인 원리지만 구체적 사물의 바탕이 되므로 모든 사물의 제일 원리입니다. 서양 철학에서는 원자, 이데아, 신, 생각하는 자아, 절대 정신, 물질, 힘에의 의지, 유전자 등이고, 동양에서는 도(道), 리(理), 기(氣), 심(心), 공(空), 무(無) 등이었습니다.

‘형이하’는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개별 사물들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자들입니다. 형이상과 형이하는 원래 ‘주역’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주역의 원리로 태극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 수 있듯 주역은 동양철학의 근본이 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물음이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이 물음의 답이 윤리와 도덕입니다. 윤리와 도덕은 삶의 나침반이고 규범입니다. 이것을 위반하면 비난받거나 처벌 받을 수도 있어 법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한편 정의는 개인적인 도덕과는 달리 사회나 세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정의는 사회와 세계의 나침반입니다.
 
이 정도의 기본 지식을 배경으로 8명의 철학 멘토에게 접근해 보겠습니다.

사르트르는 고정된 본성이나 운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실존주의 철학자입니다. 시몬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과 현실에 대한 실천적 참여로 유명합니다. 그는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므로 그 순간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전자나 신, 사주팔자 같은 것에 의해 미리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하는 규정은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야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 책임도 져야 합니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나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해서도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푸코는 타자에 관심을 갖고 타자에 대해 글을 씁니다. 타자란 이성과 과학의 시대에 기존 사회의 권력관계에 의해 구분되고 밀려난 것들입니다. 광기와 질병, 범죄, 성욕, 과학의 지위를 얻지 못한 앎 등을 말합니다. 그는 안과 밖의 구분, 중심과 주변의 구분, 선과 악의 이분법을 깨뜨리고 이성과 계몽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갑니다.

예컨대 그는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을 통해 현대 사회 자체가 감옥이며 매 순간 권력이 작동하는 규율사회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비판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것은 본래의 나, 즉 ‘나인 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 관계를 강화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신장시키는 자아이고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아에 대해 배려하는 것입니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유명한 니체는 거의 시력을 상실하고 극심한 발작으로 고통 받는 육체적 한계를 초인적인 정신의 힘을 통해 극복하고 위대한 철학적 성취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는 기존의 상식적인 가치관에 물든 수동적이고 획일화된 삶이나 소유욕과 지배욕에 빠지는 것은 가짜 힘이고 부정적인 의미의 ‘힘에의 의지’라고 단언합니다. 진짜 힘은 세속의 돈과 지위를 쫓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즐겁게 도전하는 생명력이 충만한 삶입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힘에의 의지’입니다.

그는 천상을 추구하는 기독교나 현상계 너머의 영원한 이데아는 현세 부정의 관념을 대표하는 전통적 허무주의라고 비판합니다.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인 현실 세계를 관통하는 어떤 법칙을 추구하고 매달리거나 자본, 화폐, 국가 등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도 극복해야 할 허무주의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사자의 용기를 가지고 삶을 어린아이처럼 놀이하며 즐기는 진정 강인한 자가 될 것을 권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과거의 철학이나 현대의 과학이 존재자(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존재자의 존재(있음)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예컨대 자연과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구성단위로 분해해서 그 성격을 규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해를 수학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세계는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구조가 됩니다. 이런 세계를 탐구하는 인간은 순수한 관찰자로서 순수 의식이 됩니다. 사실을 탐구한다는 현대 과학에서 피와 살이 살아있는 구체성이 아이러니하게 사라지는 것이죠.

현존재로서의 인간은 수동적인 관찰자로 격하되는 인간도 아니고 실존주의 철학에서처럼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구성해 가는 주체적인 인간도 아닙니다. 물론 신학적으로 규정하는 기독교적 인간도 아닙니다. 현존재는 세계나 다른 존재자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과 사물과 구체적인 연관성 속에서 살아가는 실존적인 존재자입니다. 과학은 현존재가 다른 존재자와 관계 맺는 하나의 존재 방식입니다. 실존주의의 실존도 현존재가 자신과 관계하는 가능성의 방식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런 철학을 통해 유럽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평화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막스 베버는 ‘계몽’이 현대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계몽은 세계의 탈마법화이고 합리화 또는 지성화입니다. 자연은 더 이상 신비의 대상이 아니고 인간이 의도에 따라 분석하고 종합하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인간은 계몽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 자원화를 통해 다른 인간까지 지배합니다. 계몽은 자연과 전통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제국주의, 전쟁, 생태계 파괴, 핵 문제 등 부정적인 면도 많습니다. 따라서 계몽이라는 현대의 과제를 인식하면서도 계몽이 지니고 있는 모순까지도 깊이 통찰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계몽의 합리성이 유일한 합리성이 아니라 역사성과 상대성을 지닌 한 종류의 합리성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물질적으로 파악한 마르크스와 달리 베버는 자본주의를 정신적인 측면에서 고찰합니다. 이 내용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의 말년의 원숙한 사상을 잘 드러내 주는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공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황혼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상하는 미네르바(지혜의 여신)의 올빼미”라는 말은 철학이란 현실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지 당위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 헤겔의 문장입니다. 어떤 철학도 시대를 초월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헤겔은 현실 속에서 이성을 실현하는 길을 탐구한 철학자입니다. 헤겔이 꿈 꾼 사회는 현실의 프로이센 국가가 아니라 ‘만인이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화해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였습니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역동적인 종합인 변증법을 기반으로 한 헤겔의 다양하고  정교한 논리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기는 하지만 즐거운 지적 여행이 될 것이며 사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확장해 줄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니체와 프로이트와 더불어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틀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상가입니다. 그는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적 해석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운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마르크스와 명문 귀족 출신의 아내 예니는 특권층의 기득권을 버리고 고통스럽게 망명지를 떠돌며 산 사람들입니다. 마르크스는 ‘포이허바흐 테제’(1845)를 통해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변혁을 위해 현실의 자본주의를 연구 분석하고 변혁의 길을 모색합니다.

마르크스 일생의 역작인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가장 최소 단위인 상품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특수한 상품인 화폐, 스스로 가치를 더해가는 자본, 잉여가치에 대한 분석과 수탈과 착취로 성립된 자본주의 역사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본론은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유행되면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존 롤스는 공정한 정의를 꿈 꾼 철학자입니다. 그는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윤리학설을 제시합니다. “한 사람에게 케이크를 자르도록 한 후 다른 사람들이 먼저 고르게 하고 자른 사람이 마지막에 남는 것을 가진다면 그는 케이크를 균등하게 자를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조건의 유불리에 상관없이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분배와 관련하여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차적 정의의 핵심입니다. 그의 주장은 실효성 면에서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는 구성적 절차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개인과 사회, 인간과 세계는 연결되어 있으니 이 관계성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교감의 방식들인 음악, 그림, 시 같은 것도 즐기고, 글과 말, 토론과 대화 같은 소통도 적극적으로 즐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감과 소통을 통해 모두 함께 삶의 춤을 추자고 말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압축된 내용을 몇 줄로 소개하자니 쉽지 않았습니다. 책을 꼭 읽으시고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도 읽어 보시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20대에게 권하는 책이라 비교적 쉽고 읽기도 편하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철학자들의 개인사도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젊은 시절에는 엄청 방탕하게 놀았더군요^^. 철학책(특히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평생을 두고 반복해서 읽어야하는 것 같습니다. 8명의 중요 철학자들의 철학을 잘 간추린 책이라 옆에 두고 가끔 한번 씩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건치신문의 기사가 실려 있기도 합니다.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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