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고장난 가족(Dysfunctional famil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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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고장난 가족(Dysfunctional family) 2
  • 이상윤
  • 승인 2005.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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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의 부모님은 두 분다 공장 노동자였는데 아버지는 은퇴하셨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일하고 있고, 형제는 세자매인데 자신이 둘째이다. 이혼한지는 3년째되고 14살된 딸 하나와 열한살 된 아들하나, 그리고 보이프렌드 하나 이렇게 어떻게 보면 이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이다.

그런데 재키는 자기 가족이 디스펑크셔널 패밀리(dysfunctional family) 였다고 한다. 왜 디스펑크셔널 패밀리였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니 재키는 노말 패밀리(normal family)를 먼저 설명한다. 정상적인 가정은 단순하다. 식구들이 서로 관심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우리가 미국 영화를 볼 때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이다.

그 반대인 디스펑크셔널 패밀리는 가족들이 집에 오면 서로 자기방에 틀어 박혀 꼼짝도 안하고 부모와 자식간에, 그리고 형제자매간에 서로 관심도 없고 대화도 없는, 재키의 표현에 따르면 서로 귀찮아 하는(hate each other) 그런 가정을 말하는 거였다.

재키의 아버지는, 재키에 따르면 항상 혼자였다고 한다. 애들의 이름도 한번 불러주지 않고 관심도 없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소파에 파묻혀 텔리비젼만 보는, 한마디로 아버지로, 또는 남편으로 기대하는 역할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애 둘을 키우고 있는 재키의 현재 가정은 어떤가 하여 물어보니 지금의 자기 가정도 디스펑셔널이라 한다. 재키의 14살짜리 딸과 11살짜리 아들은 아버지가 다르다. 그리고 자기가 1988년에 결혼했던 그 남자는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아니다. 좀 복잡한 가족구성이지만 재키는 그 자체로 디스펑셔널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재키의 세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재키의 두 아이들은 서로간에도 전혀 말을 안하고 애들과 재키사이에도 전혀 가족다운 대화가 없다. 재키의 딸은 학교에서 디텐션(detention)받고 담배피고 ‘뱀파이어 뮤직’(재키가 뱀파이어 뮤직이라 했는데 짐작은 가지만 그게 정말 어떤 장르의 음악인지 아니면 그냥 비유인지는 나도 모르겠다)을 즐기며 엄마인 재키가 간섭하는 것을 무척 싫어해 방에도 못들어오게 한다.

재키가 아홉시쯤 집에 가도 딸래미는 집에 없다. 전화도 없이 있다가 11시나 되어야 들어온다. 아들은 딸처럼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지는 않지만 말도 없이 집을 나가 어딘가 가서 머물다 오곤 한다. 그 세 식구들은 서로 귀찮게 하지 않고(don’t bother each other) 완전히 남남처럼(like a stranger!) 지낸다. 이것이 재키가 말하는 디스펑크셔널 패밀리이다.

재키도 자기 가족이 정상적인 가족이기를 바라지만 말하는 투를 봐서는 그렇게 절실한 것 같지는 않다. 재키에 따르면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이 디스펑크셔널 패밀리다. 딱 한사람만 빼놓고.

그렇다면 영화에 나오는 그 사랑이 넘치는 가족들은 전혀 사실과 다른 것들이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단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살기도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디스펑크셔널로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키가 보기에는 디스펑크셔널로 사는 가정이 훨씬 많아 보이는 것이다.

재키 주위에서 디스펑셔널 가정이 아니었던 그 딱 한사람은 재키의 전 남편이다. 재키가 퍼펙트 패밀리라고까지 표현했던 재키의 전 남편가정은 부모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형제간에도 우애가 넘치는 가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가정의 남편과도 4-5년 만에 이혼했고 실제로는 그중 2년여를 별거했으니 실제로 같이 산 기간은 2년여 밖에 안된다. 이혼한 이유는 그가 전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단다.

여기와서 내가 이혼한 여자들에게 왜 이혼했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흔히 우리가 이혼의 이유로 떠올리기 쉬운 성격차이라든지, 외도라든지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이 일을 하기 싫어했다거나 아니면 직장을 잡지 못했다거나 그래서 이혼했다는 사람이 꽤 있었다.

재키의 전 남편은 변호사 사무실인가 회계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잘리고 공장노동자, 트럭운전수 등등을 전전하면서 수시로 해고를 당했던 데다가 집에서 애들도 돌보지 않고 집안일도 전혀 안하고 군림하려 하고, 거기다 약물까지 해서 재키는 이혼했다고 한다.

이런 재키에게 다시 결혼하고 싶냐고 하니 물론 하고 싶다고 한다. 좋은 남자만 만나면. 지금의 보이프렌드는 어떠냐고 하니까 변변한 일을 안하기 때문에 싫다고 한다. 결혼하고 싶은 이유는 사랑받고 싶고 사랑할 사람을 갖고 싶은 것도 있지만 현재의 생활고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있는 것이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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