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작 『파업전야』 다시 봐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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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 『파업전야』 다시 봐야하는 이유
  • 채민석
  • 승인 2012.08.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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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영화 <파업전야>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위기의 시대이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면서 우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저 멀리 그리스의 총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선전뿐만 아니라 작년의 오큐파이 운동이라던지 광범위한 유럽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려는 지배자들의 시도는 저항을 맞고 있다.

국내에서는 다른 수준의 위기가 도래했다. 이러한 경제위기 시대에 평범한 대중들의 분노를 대변하고 주체적으로 싸워나가야 할 진보정당이 스스로의 실책과 더불어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우파 진영의 이데올로기적 총공세의 심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노동절 집회에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16개 산별노조·연맹 위원장들은 노동 관련 현안 처리와 노동 개혁 입법 도입을 요구하며 7월 경고파업과 8월 총파업을 강고하게 추진하겠노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다.

남한만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87년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은 엄혹한 전두환 정부를 퇴진시키면서 이 땅에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고, 96년 말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는 그 해 겨울 총파업으로 이어져 이후 김영삼 정부를 식물 정권으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2002년 철도·발전·가스 공공 3사 노조의 전국을 뒤흔든 파업은 IMF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민영화 드라이브에 일정부분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올해는 연말에 대선이 예정되어 있는데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날치기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경제위기의 대가를 대중들에게 전가하고 구조조정의 분위기를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임기 말 마지막으로 KTX와 의료를 민영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도 단결과 연대에 바탕을 둔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 언론노동자들은 100일 넘게 파업을 이어나가고 있고, 22명의 희생자가 나온 쌍용자동차도 작년 희망버스의 범 사회적 연대를 점차 건설해 나가고 있다. 또한 8월의 민주노총 총파업이 위력을 발휘한다면 지금의 우경화된 사회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파업은 필요할 때 주머니에서 꺼내 쓰는 칼이 아니다. 8월이 되어서 갑자기 파업 카드를 꺼내는 것이 아닌, 지금의 투쟁을 좀 더 확대하고 더 광범한 연대를 건설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되새김질 해 볼만한 영화가 있다. 아마도 상당수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생소할만한 영화, 바로 <파업전야(1990, 감독 이은 외 3명, 장산곶매)>이다.

영화 <파업전야>는 개봉 당시 큰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는 발표 당시 상영을 하면 형사 처벌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으며, <파업전야> 상영 장소인 전남대에 경찰 당국이 상영을 막기 위해 사복경찰 12개 중대와 경찰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영화사상 유례가 없는 탄압을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이 영화가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지배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에 과민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영화는 공장 안에서 인간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동성금속’ 단조반원들이 어떻게 그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노동조합을 건설해 싸워나가는 지에 대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미 그 전에 노동자들을 선동해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원기는 노조 설립을 결심하게 되고,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위장취업한 대학생인 완익을 비롯한 동료들을 모은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노조와 ‘빨갱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노동자, 앞에 나서면 다치게 되므로 뒤에서 소극적으로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노동자, 그리고 그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탄압하는 자본가와 중간관리자들.

주인공이랄 것이 없는 이 영화에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동생 학비를 대고 파트너와 살 방을 구하기 위해, 또 이 끔찍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시민적인 성공을 바라는 한수라고 할 수 있겠다. 한수는 반장을 시켜주겠다는 동향(同鄕)의 중간관리자에게 포섭되어 그동안 친하게 지내온 같은 반 사람들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프락치’가 된다. 그리고 노조를 만든 대가로 해고된 동료들이 공장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구사대’ 역할도 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조 활동을 하는 파트너가 한수를 설득하고, 사측의 악랄한 탄압으로 동료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피 흘리는 것을 보면서 점차 심경에 변화를 느끼게 된다. 영화는 안치환의 ‘철의 노동자’를 배경음으로 하여 한수가 공구를 무기삼아 용역들과 싸우러 다른 노동자 동료들과 공장 밖을 뛰쳐나가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끝이 난다.

20년이 지난 이 영화가 세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공명을 일으킨다는 것은, 강산이 두 번 바뀔 만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진보진영이 요구받는 시대정신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까지 5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삼성반도체, 22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사망한 쌍용자동차,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100일 넘는 언론노동자들의 파업, 10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장기 투쟁 사업장인 재능교육, 코오롱, 콜트-콜텍 등, 그 밖에 수많은 정리해고 노동자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되고 눈에 보이는 경제는 발전했다고 할지라도, 결국 노동자가 한낱 쓰다버리는 일회용품에 불과한 이 추악한 자본주의 본질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좀 더 은폐되어지고 악랄해지고 있다.

자본이 주인이 아닌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은 자본가가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기계를 멈추고 스스로 무기를 들고 자본과 싸울 때만이 최소한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고 노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선거철의 미사여구와는 달리 작은 양보조차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공짜로 내어주지 않는다.

또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비록 처음에는 단순히 처우 개선에서 출발할지라도, 투쟁 속에서 서로간의 연대감과 단결을 확인하게 되고, 스스로도 대자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업전야>는 2012년 정치적으로 요동치는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곱씹어볼만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회원들도 <파업전야>를 한번 찾아서 보시길 권한다.

채민석(서경지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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