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서울대 단일후보인가?
상태바
무엇을 위한 서울대 단일후보인가?
  • 신순희
  • 승인 2013.01.29 15:07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신순희 논설위원


전문치의제로 전국의 치과계가 들썩이던 지난 토요일, 서울치대 동창회에서 29대 치협회장 선거에 동창회 단일후보를 확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야권단일화라는 알 수 없는 제목의 예고 기사가 나왔을 때부터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공개석상에서 진행된 것이다.

이는 개인적 충격을 넘어 매우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일이기에 비판하고자 한다.

지하철에서 젊은 남녀가 과도한 애정행각을 벌일 때 주위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그들의 ‘사랑’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를 공개된 장소에서, 그것을 안 볼 권리가 있는 대중들 앞에서 강제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다. 젊은 남녀가 사랑을 표현할 권리와 공공장소에서 대중들이 상식에 부합하는 행동만을 볼 권리, 그 두 가지의 권리가 경합할 때 무엇이 우선하는가?

이 정도 토론 주제라면 그나마 수준이 높은 편이다.

서울치대 동창회는 모교출신 후보를 사랑하고 지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치과의사 일반 대중은 치과계의 수장을 뽑는 협회장 선거가 출신대학으로 좌우되기보다는 정책과 미래비전으로 결정되기를 소망할 상식적 권리가 있다.

이 두 가지 권리가 경합할 때는 무엇이 우선할까? 비교조차 부끄럽다.

서울치대 동창회가 모교출신 후보 지지를 저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란 듯이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은, 일반 치과의사들의 합리적인 협회장 선거에 대한 소망과 권리를 침해한다.

더욱이 서울대 출신 현직, 혹은 미래 대의원들이 어떠한 문제의식이나 부끄럼 없이 그러한 시도에 호응한다는 것은 단순한 권리의 경합을 넘어선 문제로서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으로서의 권력남용이다.
누가 그들에게 그래도 된다고 했는가? 그들이 대의원이 된 이유는 서울대 출신 티오가 아닌 것으로 안다. 각 지역이나 직능 등의 대표성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한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지닌 대의원들이 동창회가 벌인 서울대중심주의 놀음에 그 어떤 한마디의 ‘비판과 반성’도 없이 참여하고 부응하는 모양새는 매우 우려스럽고 부끄럽다.

대의원은 아니지만 나는, 비서울대 출신으로서 서울대 출신 후보를 지지할 수 있다. 그 후보가 국민건강과 치과계 발전에 부합하는 후보라면 말이다.
이제 서울대 출신 대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서울대 출신 후보만을 지지하는가?

서울치대 동창회는 “아름다운 경쟁과 깨끗한 승복의 전통”, 그리고 “합리적이고 건전한 선거풍토 조성”을 내세웠다. 이는 유체이탈 화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만일 타 대학들이 오로지 서울대 타도를 목적으로 연합해서 단일 후보를 선출한다면 서울대 동창회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금까지 대한치과의사협회의 28대 집행부 중에 비서울대 출신 협회장은 단 두 명이었다. 두 명 빼고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는 말이다. 서울치대가 가장 오래된 전통과 가장 많은 졸업생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지나친 쏠림이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젊은 치과의사들의 의사가 반영되기 힘든 대의원제 선거제도 때문이었다. 전체 치과의사 중 서울대 출신의 비율은 세월이 흐를수록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대의원의 비율은 그만큼 줄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협회장의 서울대 독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서울대 출신 협회장을 배출하기 위해 동창회결집을 호소하며 합리적 선거풍토 조성을 말하는가?

의사결정을 대리하는 대의원이 본인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의결권이 마치 대단한 권력인양 착각한 채 스스로 존재가치를 부정해버린다면, 그들이 가진 ‘협회장 선출 권한’은 박탈하는 것이 마땅하다. 바로 이런 잘못된 구태들 때문에 직선제 주장이 힘을 얻는 것이다.

건치신문의 보도태도 또한 매우 부적절하다.
‘야권 단일후보’라는 본질을 흐리는 기사제목과 문제의식 없는 논조는 의도적인가? 아니면 정말 몰라서인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세상에는 친구끼리 대폿집에 둘러앉아 나눌 종류의 얘기가 있고, 격식을 갖추고 공개된 자리에 둘러앉아 나누어야할 종류의 얘기가 있다.

이번 사태는 동문들끼리 대폿집에서나 나눌 얘기를 공개된 석상에서 부끄럼 없이 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그 자리에 참석자체만으로 비판의 소지가 있는 공인들이 아무 문제제기 없이 부화뇌동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이고, 이 상황을 모호한 어휘와 비판 없는 논조로 보도하고 홍보해준 언론의 태도가 세 번째 문제이며,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는데도 아무런 내부비판 없이 방조 혹은 허용하고 있는 조직문화가 네 번째 문제이다.

내가 서울치대를 나오지 않은 것이 이렇게 안타깝기는 처음이다. 내가 서울대 출신이었다면 이런 한심한 작태를 비판하는 내 목소리와 진심이, 비서울대 출신의 질시와 모함이라는 혐의를 부인하기에 더 없이 유리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려스런 사태에 대해 상식을 가진 동문들의 합리적 비판마저 나오지 않는 학교라면, 그 학교출신이 아님을 새삼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서울대치대는 현 11개 치대 중 최초로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으로서 서울치대가 만든 기준이 곧 대한민국 치과대학의 표준이 되었던 전통 있는 대학이다.
그러한 서울치대의 전통을 동창회에서도 계속 지켜주기 바란다.

모두가 힘을 합쳐도 대한민국에서, 전체 의료계에서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치과계의 힘을 출신대학별로 쪼개고 또 쪼개어 분열하고, 우리대학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기주의로 반목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동창회 선거를 조장하는 이러한 모습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수오지심을 아는 대다수 동문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진정 합리적이고 건전한 선거풍토를 만들어가는 동창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신순희(본지 논설위원, 종로 인치과의원 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덕영 2013-01-31 10:22:34
만약 기자들을 동창회가 불러모았다면 그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자입장에서는 구미당기는 기사거리일테니 취재를 원하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기자분들이 왔는지 기자를 불렀는지는 동창회 간부분이나 당사자인 기자분이 아실 일이죠.

박덕영 2013-01-31 10:12:59
우려하는 사태의 가능성에 대한 걱정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심각한 이의가 있습니다.
단일화를 한다고 서울대에서 저 세 분이 아닌 다른 후보가 출마 못하는 것도 아니고 참석자들이 본선에서 저분을 뽑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닙니다.
저렇게 결정되면 실제로 저렇게 될것이다라는 강한 믿음이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서울대동창회가 마피아 수준의 권능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는듯

짝짝짝! 2013-01-30 09:02:49
신선생의 비판....속이 다 시원하네요....잘 읽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