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 현장에서 본 ‘북한인권’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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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 현장에서 본 ‘북한인권’ 논의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5.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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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권, 한국 시민사회 합리적 목소리 낼 때

지금 제61차 유엔 인권위원회가 열린 제네바에서는 북한인권을 둘러싼 공방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2004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 협의자격 취득한 참여연대는 박원석 사회인권국장을 파견해 제61차 유엔 인권위원회를 모니터링 하고 있다. 인터넷참여연대는 제네바에서 보내 온 박원석 국장의 '유엔 인권위원회 현장에서 본 '북한인권' 논의'참관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3번째 북한인권 결의안 상정이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제네바에서 진행 중인 제61차 인권위원회에서는 북한인권을 둘러싼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두 차례의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개선조치를 찾아 볼 수 없다는 EU 등 서방 측의 평가나 잇따른 유엔의 인권결의안 채택과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등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주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규정하는 북한 측의 반발 등 양측의 기본입장에 별다른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별 보고관 일본인 납치문제 거론, 탈북자 정의 논란 예상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지난 3월 29일에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비팃 문타본(Vitit Muntarbhorn) 교수의 그간 조사에 대한 구두보고가 이루어졌다.

비팃 보고관의 발표 내용은 지난 1월 유엔 인권위에 제출한 보고서의 구조 및 내용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식량 및 생명권’, ‘형사정의 및 사법 접근권’, ‘이동의 자유와 탈북자의 보호’, ‘건강 및 교육권’, ‘자결권 및 종교 표현 결사 등 정치적 자유권’, ‘아동 및 여성의 권리’ 등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각 분야별 실태판단 및 우려를 표명했다.

구체적 권고사항으로는 이미 비준한 국제조약의 준수와 여타 조약의 비준, 국제인권기준에 맞는 법률 및 집행의 개선, 법치존중 및 독립적 사법부 설치, 교정시설을 포함한 형사정책의 개선,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중지, 특별보고관의 방문허용, 인권고등판무관실의 기술적 협력 등을 거론했다.

주목할만한 내용으로는 식량 등을 찾아 중국에 왔다가 체류 중인 탈북자들의 지위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논란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비팃 보고관은 난민조약 등 국제적인 원칙에서 적용하는 ‘현지난민(Refugees sur Place)'의 개념을 들어 "정치적 이유 등 박해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여타의 이유로 본국을 떠났더라도,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예상되는 박해와 처벌이 두려워 타국에 체류 중인 사람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한 어조로 밝히고 있다.

실제 별도 비공식 면담 자리에서도 비팃 보고관은 "굶주림을 이유로 탈북 했더라도 처벌의 두려움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모두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중국 당국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강제송환이나 북한당국의 처벌은 ‘난민에 관한 국제조약 및 원칙에 비할 때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견해를 밝혔다. 최근 북한이 형법 개정 등을 통해 이 같은 탈북자들에 대해 적용하던 죄목이나 양형을 완화한 점 등에 대해서도, 부분적 개정일 뿐이며, 처벌이 있는 한 “여전히 잘못된 법”(still wrong law)이라는 다소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비팃 보고관의 이 같은 관점은 중국 등에 체류 중인 일부 탈북자의 지위와 관련하여 여전히 ‘미등록 체류자’인가 ‘난민’인가 논란을 떨치기 어려우며, ‘현지난민’ 지위 부여와 관련해서도 본국 송환 시 처벌의 정도와 수위 등을 고려하지 않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적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보고내용에는 지난 2~3월 일본(일본인 납치)과 몽고(탈북자)를 방문한 결과가 첨부되었는데, 특기할만한 사항은 일본방문에 대한 보고내용에 북한당국에 의한 일본인 납치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일본 측의 항의와 납북자 귀환문제에 대한 북한당국의 적극적 반응과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 점이다. 이 사안은 일본이 이번 인권위원회 기간 중 끈질기게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 2002년 양국정상간의 회담 및 이에 따른 ‘평양선언’으로 양국간 이 문제 해결과 관련된 원칙과 기준이 합의되고 일부 납치된 일본인들의 귀환이 이루어졌으나, 일본 측은 여전히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반면, 북한은 이미 해결되었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외국인 납치 문제가 본질적으로 인권문제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나 양국간 정치적, 외교적 공방이 진행되는 사안이며, 일본이 유엔무대에서는 EU측 결의안의 공동발의자로, 자국 내에서는 ‘북한인권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일방의 판단이 담긴 권고를 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비팃 보고관은 “2002년의 플랫폼으로 양국을 복귀 시키는 게 목적이며, 양국간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강경태도 속 곤혹스러운 북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국정부

특별 보고관 발표에 이은 북한 측 반박성명은 예상했던 대로 지난 두 번의 북한인권 결의안과 특별 보고관 활동 일체를 부정하는 등 매우 강경한 어조를 띄었다. 북한 대표부의 최명남 참사관은 성명을 통해 “북한은 60차 인권위원회의 결의안과 특별보고관 일체를 절대적으로 거부 한다”고 밝히고, 특별보고관의 보고에 대해서도 “우리의 적대세력에 의해 조작되고 지속되어온 음모적 선동과 정확히 일치 한다”고 비난했다. 또한, 특별보고관에게 “다른 사람들이 아닌 주권국가와 그 민중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음을 명심하라”며 “북 인민들의 강고한 투쟁에 의해 설립되고 지켜져 온 정치, 문화와 존엄한 사회체제의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강경한 외연과는 달리 북측은 유엔인권위에서 3년째 거듭되는 비난과 결의안 추진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하나의 예가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을 시 유엔 인권기구 등과 협력할 용의가 있다는 비공개적 제의를 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아니나, 인권위 현장에서는 북측이 이번 61차 인권위원회 의장에게 ‘결의안을 의장성명(chairman statement)으로 대체할시, 인권고등판무관실과의 기술적 협력 등을 할 용의가 있다’는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 제안에 대해 의장과 특별보고관 등이 의견교환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상 의장성명은 구체적인 인권상황에 대한 거론 없이 관례적 우려와 비난의 내용을 담는 것으로 유엔인권위원회 내에서 대응 수위를 조절할 때 활용된다. 회의장에서 만난 북한 대표부의 한 외교관도 유럽연합이 2003년 사전 예고도 없이 비밀리에 결의안을 추진하고 이를 지속하는 것을 비난하면서도, 그 전까지 유럽연합과 인권대화를 추진해왔던 점, 두 번째 결의안이 추진되던 작년 인권위 기간 중에도 ‘아동권위원회’의 방문을 허용했던 점 등을 거론하며, ‘대화의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고등판무관실의 ‘기술적 협력’에 대해서도 결의안에 명시되는 이상 받을 수 없으나,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거나, 이 문구가 빠진다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한국정부는 이미 결의안에 기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제네바 현장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외교적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에 대해 한국 대표부의 백지아 참사관은 "북한이 지금처럼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한, 정부가 역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북한 측의 의장성명 타진 등에 대해서도 "이미 유럽연합이 결의안 초안을 완성한 상황인데 너무 늦은 것 아닌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인권, 국제인권외교 무대의 단골 이슈화, 한국 시민사회의 적극적 대응 필요

현지에서 북한 인권 이슈는 일부 국내언론들의 보도와는 달리 예년에 비해 그 긴장의 정도가 덜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실제로 지난 3월 24일부터 시작된 ‘세계 각국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 침해문제’ 세션에서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 호주, EU, 캐나다, 일본 등에 의해 수단, 네팔, 짐바브웨이, 벨라루스 등 이번 인권위원회에서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라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 정도이며, 그 수위 또한 앞서 열거한 나라들에 비해 높지 않은 수준이었다.

대표적인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이나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가 61차 인권위원회를 앞두고 발표한 입장문서에 북한을 우려의 대상국으로 거론하지 않은 사실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가 북한인권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위기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인권위원회의 만성적인 이슈로 자리 잡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현재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는 EU등 서방측과 당사자인 북한당국과의 입장의 차이가 너무 클 뿐더러, 실질적인 인권상황의 개선이나 막후의 정치적 타결이 없는 이상 비난과 행동의 수위를 낮추지 않는 인권위원회의 관행으로 볼 때, 향후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인권위원회 및 국제외교 무대에서 빠짐없이 거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서 언급처럼 주요 국제 인권 단체들이 다소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반면, 미국, 영국에 기반을 둔 보수 성향의 단체들이 북한이슈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지난 3월 31일에는 쥬블리 캠페인(Jublee Campaign), 국제여성의소리(Women's Voice International ), 세계기독교연대(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와 영국 기반의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등이 공동주최 한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올해 3월초 촬영되었다는 공개처형 장면이 담긴 비디오 상영, 김영순, 김태진씨 등 탈북자 2인의 정치범 수용소 증언, 빌 람멜(Bill Lammell) 영국 외무성 차관, 비팃 특별보고관 등의 기조발표 등이 이루어졌다.

람멜 영국외무성 차관은 북한의 인권상황을 ‘세계최악’으로 지목하고, 실질적 인권상황의 개선이 없는 한 국제적인 압박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표명했다. 자유발언 순서에서 앞서 소개한 단체 관계자들 중에는 북한핵문제, 인권문제 등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할 것’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사석에서는 극단적으로 ‘북한정권 붕괴’, ‘무력행동’ 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반면, 이 문제를 보다 역사적, 객관적 시각에서 보고 남북관계 진전 및 한반도 평화를 고려한 합리적 접근을 모색하는 흐름은 매우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참여연대가 경제사회이사회 협의체 자격으로 서면진술서를 제출한 것과 인권운동사랑방등 한국의 10여개 인권단체가 비공식적인 의견서를 작성하여 특별 보고관에게 전달한 것 정도가 전부이며, 이 마저도 인권위원회 직전 또는 기간 중에 진행된 사항이다 보니, 외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형편이다.

유럽연합과 일본 대표부는 31일 북한인권 결의안 초안을 공개했다. 결의안은 그 구성과 문구 등이 일부 수정되었으나 그 수위와 내용은 지난해와 별반 다를 바 없으며, 지난해 표결 등으로 볼 때,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번 회기 말미에 채택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이번 결의안 채택의 효과는 ‘북한인권’이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문제로 확정된다는 점이다. 북한인권이 유엔을 비롯한 각급의 국제적인 외교인권 무대에서 지속적인 이슈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정부 및 EU 국가들, 국제 NGO 등 이 문제의 다양한 행위주체들을 상대로 한 한국시민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활동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박원석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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