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의료정책, 평등의 원칙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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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의료정책, 평등의 원칙 품어라
  • 채민석
  • 승인 2013.02.1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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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료 관리 세미나 후기②] 채민석 공중보건의

 

리처드 윌킨슨의 책 ‘평등이 답이다’를 보면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보다 덜 건강하다는 무수히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학생들의 수학, 읽기 점수가 낮고, 고등학교 자퇴율도 높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10대 출산율이 높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살인은 더 자주 발생한다.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학교 폭력도 더 자주 발생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감옥도 더 많고 죄인을 더 오래 가둔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 이동성 혹은 계층 이동성도 낮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노동시간도 더 길다.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 문제의 목록은 끝날 줄을 모른다.

물론 평등의 개념은 다양할 것이고 달성하는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영국의 국가공영의료제도(NHS) 도입 사례는 두고 볼만 하다. 사회보험제도로 운영되었던 영국 의료체계가 조세방식의 국영의료체계로 바뀐 것은 1948년. 그 전의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리버풀에 있는 조그만 극장에서 고전적 반전영화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가 상영될 때의 이야기인데, 독일 병사 두 명이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장군들하고 정치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게 하는 게 나았을 걸 그랬어.”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니까 영국의 퇴역 군인이 다수 섞여 있었을 청중석에서 곧바로 큰 박수가 나왔다. 당시 참전 군인의 92퍼센트가 노동당을 찍었을 정도로 종전을 전후해서 급진화 바람이 불었다.

보수당 의원인 퀸틴 호그가 “만약 우리가 국민들에게 개혁을 선사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혁명을 선사할 것이다”라고 당시 급진적인 분위기를 잘 요약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42년 영국 복지제도의 근간이 되는 베버리지 보고서가 발간됐고, 광산노동자 출신이었던 영국 노동당의 당시 보건부 장관 어나이린 베번(Aneurin Bevan)이 NHS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복지국가의 대표주자 스웨덴은 1930년대 유럽에서 노동쟁의가 가장 많은 나라였다는 것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 건강증진 원리의 이해를 위한 상류-하류 비유
세미나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에 무려 세 번이나 나온 그림이 있다. ‘건강증진 원리의 이해를 위한 상류-하류 비유’다.

즉 상류를 오염시키는 ‘질병 제조업자’와 ‘질병공장(담베, 설탕, 술)’이 존재하는데, 하류에서 아무리 ‘구호활동’을 통해 상류로 올려 보낸다고 해서 물이 깨끗해질 수 없고, 사람은 건강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비유의 그림이다.

그런데 내 눈에 띈 것은 ‘구호활동’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공공병원’이란 것이었다. 왜 일반적인 병원이 아니라 공공병원이라고 해놨을까?

사람은 아프기 마련이고, 따라서 필요에 따라 병원비를 치를 수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든 적절한 의료적 처치를 받아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질병의 예방을 포함할 것이다. 하지만 진료실이 사적영역에 맡겨져 있다면 의료가 인간에게 그 기능을 제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그런 구호활동은 공공병원이니까 그나마 하는 것이고, 민간병원이었다면 아마 돈 없는 사람은 떠내려가도록 두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한 예로, 폴리오 백신을 개발한 닥터 조너스 소크는 “태양에 특허를 걸 수 있는가”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이 개발한 백신에 대한 특허를 포기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상당수 많은 나라에서 poliovirus는 근절됐다. 하지만 세금과 민관공동연구로 개발된 글리벡은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발매했으나, 원가 760원에 불과한 약을 한 알에 25,000원으로 신청했다(현재 보험가 21,200원/정).

환자들은 한 달에 300~450만원이나 하는 약값을 대지 못하면 골수 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지금은 건강보험에서 90% 부담을 하지만, 노바티스는 여전히 인류의 건강을 볼모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

‘건강’ 개념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의학에 대한 맹신이나 의학이 인류의 건강에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가를 따지는 것 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하고 또 누구를 위한 의료가 되어야 하는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모든 이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세미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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