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 날' 그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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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그녀가 생각났다.
  • 김랑희
  • 승인 2013.03.06 11: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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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헌정 최초 여성대통령

2월 25일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새 대통령은 헌정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운동기간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나는 이 슬로건의 포인트가 ‘준비된’에 있는지 ‘여성’에 있는지 헷갈렸다.

그녀에게서 난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의 공감이나 동질감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와 나는 출신성분, 정치적 지향,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너무나도 다르지만 대한민국에서의 여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내심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녀는 정치인의 시간동안 여성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정책을 거의 만들지 않았으며 선거공약에도 그런 고민이 많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이후 인선에서도 여성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과 현실을 생각하면 ‘여성’대통령으로서의 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녀는 가부장제 질서와 유교적 가치가 여전히 중요한 한국사회에서 여성대통령이 되는 놀라움을 잠깐 안겨줬을 뿐 오랜시간 난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박정희의 딸’, ‘새누리당의 대장’으로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도 역시 ‘여성’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은 그녀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특히 남성)을 통해서 다가왔다. 게다가 여성으로서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녀도 여성이구나’라고 새삼스러워했다.

그녀도 ‘여성’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18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 기사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기사들이 있었다. 의상과 패션에 대한 기사들이다. 대통령이니 어디 의상만 관심사겠냐마는 연예인 기사를 보는듯한 패션에 대한 기사들과 심지어는 ‘패션정치’라는 표현도 적지 않다.

패션이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고,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있어 미치는 영향이 있겠지만 유독 여성정치인(또는 남성정치인의 부인)의 패션에 대해 기사화가 된다. 그녀의 취임식과 관련해서 패션이 눈에 띄는 것이 정치는 없고 패션만 있어서일까? 아님 대통령이 ‘여성’임을 드러낼 것이 패션밖에 없어서일까?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했고 최초의 여성들이 진출하는 영역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는 여성과 남성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고, 종종 여성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과는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하여 몇 가지 평가나 표현들을 한 번 보자.

KBS 뉴스는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며 남성 못지않은 안정감을 줍니다.”라는 평가를 했다. 이 평가는 ‘안정감’은 여성에게는 부족한 면이라는 점을 전제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여성의 단점은 넘어서고, 장점은 더욱 살려야”라고 했는데 여성의 단점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여성의 단점은 뭘까? 박근혜 대통령에게 ‘여성적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하는데 동아일보 사설에 등장한 장점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여성적 리더십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수직적, 권위적이지 않은 수평적 리더십인데, 수평적 리더십은 남성이나 여성이 모두 추구해야할 리더십이 아닐까? 권위적이고 군림하는 대통령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여성적 리더십은 대화와 설득을 통한 소통의 리더십이라고도 설명한다.

 이 역시 남성에게도 필요하다(소통하지 않는 대통령과의 5년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니겠지?).문제는 (여성이건 남성이건)대통령에게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여성성’, ‘남성성’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별로 해석되고 평가하는 것은 ‘정상성’과 결부되어져 ‘정상여성’, ‘정상남성’을 만들어낸다.

나와 그녀는 ‘정상여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별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흔히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것에 근거한다. 남성이 남성스러워야 정상남성의 범주에 들어오고 여성이 여성스러워야 정상여성으로 인정된다.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해 여성이냐 아니냐를 논했던 최고(아니 최저라고 해야할까?)의 사건은  황상민교수의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발언이다.

나도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의 여성을 상징하다기 보단 그저 의학적, 법적 성별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이분의 발언은 성별을 넘어 ‘정상여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고 그녀를 나와 같은 ‘여성’으로 서 연민(?)까지 느끼게 했던 사건이다. 황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우면서 여성의 현상이 나타난 것인데 박 후보는 그런 상황이냐"며 "생식기만 여성이지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건 (없다)"고 말했다.

난 슬퍼졌다. 황교수의 이론에 의하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난 불완전한 여성, 여성의 역할을 방기한 여성, 여성이되 여성이 아닌 사람인 것이다. 난 그녀가 나와 같이 ‘여성’으로서 강요받는 ‘여성성’과 ‘정상여성’에 대해 당당히 맞서기를 바랬고, 그렇다면 유권자로 그녀에게 투표하진 않아도 ‘여성’으로서 응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기대한 그녀의 반격이 있었던가...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생식기’라는 표현에 발끈했던 것 같다. 황교수의 발언을 ‘여성’대통령의 ‘여성’으로서의 의미를 제대로 부여하자라는 취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는 ‘여성’의 역할(엄마, 아내)로 ‘정상여성’을 규정하려 한 것이다.

여성≠엄마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이 ‘여성’임을 느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 결혼과 출산과 육아뿐일까? 많은 여성이 결혼과 출산, 양육의 시간들 속에서 힘들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고군분투하기도 하지만 여성의 삶이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성에게도 노동이 있고, 인간관가도 있고, 정치와 경제도 있다. 나는 내가 여성으로 어떤 모습을 요구받고 있는지, 사회가 날 여성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하는지 과장하자면 삶의 매 순간에서 느낀다.

직장에서 남성상사들의 커피를 가져다주고 책상을 청소해야만 했을 때, 내 뒤로 남성직원이 채용된 뒤에도 그 일은 여전히 나의 일이여만 했을 때(결국 나는 커피를 가져다주지 않아 해고되었다), 집회 때 경찰에게 항의하는데 나와 몇 마디 하더니 남성대표자와 얘기하겠다고 할 때, 촛불집회에서 여자는 빠지라고 할 때, 시댁에서 나는 일꾼이지만 친정에서 남편은 손님일 때,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편하게 살지 왜이리 힘든 일을 하냐는 말을 들을 때...

특히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라는 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려 한다. 그들의 질문 속에서 나는 여성으로의 역할을 팽개친 이상한 여자인 나를 발견한다. 나는 아이를 낳는 것은 결혼을 하는 것처럼 나의 인생에 대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물론 결혼 역시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특히 결혼한 여성이라면 더욱) 생각한다. 이들은 내게 아이를 키우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하고, 저출산국가에서 한명이라도 더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는 비애국자나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라는 것이다. 이는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당연히 있기 때문에 (여성이라면)누구나 아이를 낳고 싶어 할 것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질문이다.

나의 여성성을 의심받게 되는 대목이다. 난 ‘전혀’라고 대답한다. 역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과 함께 ‘이상하다’라는 눈빛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물으며 확인을 하려하고 나의 잘못된 생각을 찾아내려 한다. 결국 그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인 자신들의 생각을 말한다. “그래도 아이는 낳아야지.”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우리 사회에는 황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성’인 그녀에게 대통령으로서 바라는 것
 

‘엄마’를 여성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바라보니 여성 정치인과 관련해 엄마에 비유하거나 모성정치라는 표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여기엔 모성의 위대함, 아름다움만을 담고 있다. 현실의 우리 엄마들, 이 시대의 엄마들을 모습은 어떨까? 엄마는 모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보살핌노동, 양육노동과 감정노동과 직장에서의 노동까지 온갖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엄마 아닐까? 그녀들은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며 계획적으로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집도, 아이도, 회사일도 엉망이 되기 때문에 매일매일을 시간에 쫓겨 동동거리며 살고 있다. 그걸 모성으로 포장하여 그녀들의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고, 노동에 대한 가치를 남성의 노동과는 다르게 평가하고, 희생과 고통을 당연한 역할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최면이 아닐까?

세상의 여성들은 엄마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하는 여성, 차별받는 여성,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 결혼하지 않는 여성,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 가족을 부양하는 여성, 장애를 가진 여성, 이혼한 여성, 가난한 여성...다양한 여성의 삶을 ‘여성성’과 ‘정상여성’의 잣대로 획일화 시키면 그녀들의 개성은 사라지고 삶은 더 피곤해진다.

대통령인 그녀가 아름다운 포장의 ‘모성정치’를 표방하지 않아도 좋다. ‘여성’대통령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녀들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 105주년이다. 헌정 최초 여성대통령인 그녀가 인간의 삶을 살고자 외치는 세계여성들과 연대하는 그날 어떤 이야기를 할지 무척 궁금하다.


 

김랑희 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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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동 2013-03-08 08:50:33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전민용 2013-03-07 15:27:40
쥔 주먹과 쌓여있는 구호 상자들 속에 결기가 느껴지네요. 사진 속 얼글들이 너무 작아 안 보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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