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삶이 내게 수신되어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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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삶이 내게 수신되어 말을 건다.
  • 김랑희
  • 승인 2013.05.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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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 말하기

대학생이던 시설 친구와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친구가 느닷없이 내게 말했다. "나 임신한거 같아." 예상도 못한 말에 깜짝 놀랐지만 호들갑을 떨 순 없었다. 왜냐하면 친구는 차분히 말했지만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짐작할 수 있었고(왜냐하면 나도 그런 불안감을 느낀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친구는 왜 나에게 그 말을 했을까? 도와달라는 건가? 조언이 필요한 건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우린 그 때 친구 말을 이어 20대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해, 남성애인들의 맘에 들지않는 태도에 대해, 임신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꺼내진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기에 그녀의 ‘말걸기’로 우리는 ‘말하기’를 했다.

자신의 삶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기 전에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을까? 곱씹어 재생하기를 반복하고 ‘이런걸까? 저런걸까?’ 수많은 질문과 답 속에서 감정은 격랑이 되었다 침잠하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기도 하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을까? 나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과 그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 그 사건에 앞선 시간들과 사건 이후의 자신의 감정과 고민, 그 고민 속에 결정된 삶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 이런 것들을 담은 삶의 궤적 속에 있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테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주한 세계를 직시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내게 말을 전한다. 말을 전하는 것은 내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말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말을 걸어온 책이 있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책 속의 그/녀들이 내게 말을 건다.

▲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오월의봄)

 수신된 이야기들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너무 흔히 얘기했던 ‘차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윤리적이든 인권적으로 말하는 ‘차별’(차별은 옳지 않다던가, 차별은 해서 안된다던가 등등)은 그/녀들의 삶의 말을 통해서 실체가 되었다. 추상적인 차별이 그/녀들의 삶 속에서, 사회 속에서 구체성을 갖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차별은 어떤 단일한 행위(사건)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들은 차별과 함께 삶을 재구성하며 살고 있다.

차별은 관계, 즉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즉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자신의 다양한 삶의 조건으로 인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겪게 되는 사회현상이라 할 수 있다.(p115)

차별은 때때로 ‘(능력, 조건, 신체가)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비정상이니까’, ‘위험하니까, 보호해야하니까’를 달고 모습을 감추려고 한다. 마치 합리적인듯한 같은 이유를 달고 ‘그것은 차별이 아니다, 마.땅.히 그러하지 못하니 당연한 것이다’라고 공식화하려 하는 우리의 모습도 엿보인다.

사실 차별을 하는 사람이 “나는 너를 차별하고 있어”라고 말을 하면서 하진 않는다. “네가 정상이 아니니까, 네가 부족하니까, 네가 혼란스럽게 하니까(이건 차별이 아니야)”라고 우리의 차별의 행위를 그/녀들에게 덮어씌운다. 그래서 차별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어떤 부분이 차별이고 편견인지는 잘 모르겠어. 진짜 취약 계층은 더 그래. 계속 살아온 과정이 그렇기 때문에 더 그런 거야. … 돌아보면 나도 대부분 지나고 나서야 아는 거야. (p180)

또 차별과 관련되어 흔히 얘기되는 ‘정체성으로부터(정체성때문에) 발생하는 차별’로 해석되기에 대한 경계가 끊임없이 변주된다. 가정폭력에서 시작해서 가난한 노동자, 예쁘지 않은 여성, 트랜스젠더, 교도소 수감되었던 혜숙의 이야기나 여성이자 레즈비언인 가난한 탈학교 청소년인 서윤의 이야기 등이 그렇다. 혜숙의 이야기를 뒤이은 수신확인에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이야기한다. 마치 각각의 차별이 특화된 존재에게만 발생하는 문제처럼 인식하지 말자는 것이다.

차별은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요소가 해결된다고 해서 차별이 모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정체성은 얽히고설킨 차별의 맥락이라는 미로 속에서 만나는 안내판이자 힌트일뿐 전부를 설명하는 '근본적이고 단일한 원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p65)

나의 삶을 보아도 다른 관계들 속에서 여러 모습(여성, 아이 낳지 않은 기혼자, 누군가에게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등)으로 나타나고 다양한 존재로서의 내가 삶을 구성하고 있는데 ‘차별’의 문제에 있어 그/녀들을 도드라진 하나의 정체성으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마치 섬같이 떨어져 있는 줄 알았던 그/녀들이 보내온 편지를 보니 그 섬들은 이어져 있고 나도 그 섬들에 닿아있었다. 그래서 9명의 삶의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이면서 서로 만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말하기

이 이야기들은 처음에 차별금지법의 논란의 항목들에 대한 사례를 모으고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 다양한 차별의 당사자인 열명의 인터뷰이들을 섭외하고 그들에게 사례를 들으려했다. 그러나 보고서가 아닌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되었다. 아마도 인터뷰이들이 사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어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엮은이들은 ‘들어버렸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엮은이들이 ‘들어버린’ 이야기들로 나에게 말을 건다. 말은 그 내용만으로 전부를 전달하지 않는다.

목소리의 높낮이나 소리의 크기로 감정이 파악되기도 하고, 말과 말사이의 시간 또는 말줄임으로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그 말들의 감정을 글로 옮기기 위해 엮은이들은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엮은이들도 말을 건 그/녀들처럼 스스로 질문하고 곱씹고 갈등하는 시간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도 ‘들어버렸다.’

추천사에서 김영옥은 ‘이.어.말.하.기.’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말을 건다. 같이 이야기하자고, ‘이.어.말.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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