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학회 설립 금지’는 독소조항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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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학회 설립 금지’는 독소조항 인가?
  • 강민홍 기자
  • 승인 2013.05.2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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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치협 정관 61조2항을 둘러싼 논란…‘유사’ 판별 기준 마련·‘인준’ 여부 보완 필요·비인준학회 학술활동 지원책 마련도

 

지난달 27일 열린 대한치과의사협회(이하 치협) 제62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협회장 선거제도 개선 정관개정안과 함께 서울지부가 상정한 ‘유사학회 인준 취소 결의안’ 통과 여부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의안의 요지는 “이미 ‘임플란트’ 학문과 관련 대한치과이식임플란트학회(이하 A학회)라는 공식 인준학회가 있는 상황에서 유사학회인 ‘대한구강악안면임플란트학회’(이하 B학회)를 인준한 것은 정관 61조2항 위반이니 이를 취소할 것을 결의하자”는 것이었다.

‘유사학회 인준 취소’ 문제는 이날 총회 감사보고 인준 때부터 ▲61조2항은 ‘설립’의 문제지 ‘인준’과는 상관 없다 ▲현 집행부가 현행 정관을 위배했다는 등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으나, 결국 상정자가 취하의 뜻을 밝히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두 학회간 ‘인준 취소’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A학회가 B학회의 인준을 취소해 달라며 법적 소송을 걸어놓은 상태기 때문.

감사단은 당시 총회에서 ▲61조2항의 개정 ▲두 학회간 통합 등을 통한 갈등 해소를 권고했다. 그러나 두가지 다 산넘고 산이다. 8년을 넘게 끌어온 임플란트 학회간 통합이 감사단 권고로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질 리도 없고, 61조2항으로 인한 갈등도 비단 이번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999년 신설된 61조2항으로 여러차례 신설학회 인준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있어왔는데, 때문에 김세영 집행부는 지난해 61차 대의원총회에서 61조2항 삭제를 시도했다. 부결된 바 있다.

김세영 집행부는 왜 61조2항을 삭제하려 했고, 왜 부결됐으며, 감사단이 이번 총회에서 개정·보완하라 지적한 내용은 무엇일까? 61조2항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해보자.

61조2항의 ‘2가지 맹점’

1999년 4월 17일 48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정관 61조2항(당시는 60조2항)에 “기존학회와 설립목적이나 사업이 동일하거나 연구활동, 명칭 등이 유사한 학회는 신설할 수 없다”는 내용의 ‘유사학회 설립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정관개정안이 상정돼, 145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신설 이유는 ‘무분별하게 난립할 수 있는 유사학회의 신설을 방지해 학문의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61조2항은 2가지 맹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유사학회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별할 것이냐 이다.

김현기 감사는 “유사학회로 규정할 만한 시행규칙도 없었을 뿐더러 학회인준규정 3조의 학회인준신청서와 4조5항 학술활동평가기준에도 유사학회와 관련된 인준 기준이 기재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해당조항이 유사학회의 ‘설립’을 금지한 조항이지, ‘인준’ 여부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 치협 김현기 감사
이에 대해 김현기 감사는 “61조2항이 유사학회의 인준을 배제하는 효력을 갖추려면 ‘신설’을 ‘인준으로’ 바꾸던지, ‘~유사한 학회는 인준학회로 신설할 수 없다’와 같이 자구 보충이 있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설립 자체가 안되는데, 어떻게 인준을 요구할 수가 있느냐”는 것. 즉, 설립 금지 안에 이미 인준 금지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

별도로 1996년 개정된 정관 제6조에는 “인준을 받지 않은 학회는 명칭 앞에 ‘가칭’의 문구를 넣어 사용해야 한다”로 규정돼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61조2항에 따라 설립이 금지된 유사학회도 ‘가칭’으로 표시만 하면 되기 때문에 상호보완을 위한 개정도 필요해 보인다.

불완전한 조항이 낳은 ‘학계 불협화음’

이렇듯 61조2항이 내포하고 있는 두가지 맹점으로 인해 2000년대 들어 신설학회가 생길 때마다 ‘유사’ 논란과 함께 치협 분과학회 ‘인준’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있어 왔다.

2000년대 이후 인준된 학회는 ▲대한구순구개열학회(인준 2003.7,8) ▲대한치과마취과학회(2004.10.12) ▲대한스포츠치의학회(2007.6.19) ▲대한노년치의학회(2007.10.16) ▲대한레이저치의학회(2008.3.18) ▲대한장애인치과학회(2008.3.18) ▲대한심미치과학회(2011.12.20) ▲대한치과근관치료학회(2012.2.21) ▲B학회(2013.2.19) 총 9개다.

이 중 ‘인준’ 여부로 논란이 됐던 학회는 ▲구순구개열학회(창립 1997년) ▲심미치과학회(1987년) ▲근관치료학회(1991년) ▲B학회(1994년) 4곳이다. 이 중 심미치과학회는 대한치과보철학회, 근관치료학회는 대한치과보존학회의 강한 반발을 겪었고, 이번 B학회와 A학회간 뼈속깊은 갈등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모두 61조2항 신설 이전에 설립된 학회라는 점에서 ‘인준’에 하자는 없지만, 인준 당시 빚었던 관련학회와의 마찰을 과거의 일로 덮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반면, 고령화 등 시대적 요구, 치의학 전문화, 치과계 파이 확대 등을 명분으로 인준이 되긴 했지만, 2000년 이후 신설돼 인준된 나머지 5개 학회도 ‘유사’ 논란에서 자유로운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한 예로 스포츠치의학회 인준을 두고 “보철학의 한 분야인 마우스가드 잘 만들자는 학회 아니냐”고 비판한다면? 그렇다고 그 비판자가 “해당학회는 무의미하고, 설립되거나 인준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진 않을 것이다.

인준 장벽이 ‘학문 발전’ 저해?

치협 김세영 집행부는 지난해 61차 총회 때 61조2항의 ‘유사학회 설립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대신 ‘협회 정관·규정 위반 시 인준 취소’ 조항을 신설하는 정관개정안을 상정한 바 있다.

삭제 이유는 “신의료기술의 새로운 학문 도입에 대한 회원들의 욕구에 맞춰 신설학회의 진입장벽을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인준 분과학회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인준 이후 활동이나 실적이 미미한 학회를 과감히 처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정관개정안은 부결됐다. 왜였을까? “학회 활성화를 통한 학문의 발전”이라는 현 집행부의 정책기조가 잘못됐기 때문일까?

한 대의원은 “부결된 것은 학문발전을 꾀하겠다는 취지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다”면서 “복수인준학회 하에서 전문의 교육관련 혼선이 벌어지거나, 의료분쟁 등 고충처리 과정에서 학회간 입장차로 발생할 문제점을 방지할 수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미가 컸다”고 피력했다.

특히, 그는 “학회 인준 여부를 ‘학문 발전’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치의학문 발전’을 위해 “자유로운 학회 활동 보장”도 중요하지만 “무분별한 학회 난립 방지”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61조2항은 독소조항이라기 보단, ‘유사 기준’ ‘설립과 인준 분리’ 규정 마련과 치협의 학술정책 기조 개선을 통해 보완해야 할 조항이라는 것이다.

제고돼야 할 치협의 정책기조

치협은 2012년 4월 28일 면허신고제 및 보수교육 강화 개정의료법 시행 이후, 비인준학회 학문활동 지원 자체를 원천 차단했다. 의료법 하위법령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 보수교육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게 이유.

문제는 법령에 명시된 보수교육 이행기관과 공동으로 학술행사를 진행해도 보수교육 점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인준학회는 아니지만 보수교육 이행기관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누가 봐도 합당한 학술행사에도 보수교육점수를 지원했다면, B학회가 굳이 분과학회 인준을 강행했을까?

특히, ‘보수교육점수 부여 여부’에 대한 치협의 기준이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크다. 어느 단체에는 ‘공동 개최’라도 안된다고 하면서, 후원자와 주최자 명의만 바꾼 똑같은 행사에는 점수를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인준 진입장벽이 아니라 보수교육점수 부여 기준 완화 등 다양한 학술활동이 활발해 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다.

둘째는 학문의 전문화·세분화 경향을 학회인준 정책에 그대로 반영할 것인가 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2000년대 이후 신설 및 인준된 학회들은 장애인, 노인, 스포츠, 치과마취 등 특정학문에서 보다 세분화되거나, 여러 학문이 특정분야로 전문화된 성격을 띄고 있다.

치과보험학회 등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거나, 통합치과학회 등 여러 학문을 양질의 개원임상이라는 분야로 특화하는 방향은 장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한 학문의 하위범주를 전문화·세분화해 독립 인준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가는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대한치과보철학회의 보철임상교육연구회, 보철생채공학연구회나 대한구강보건학회의 구강보건교육학회, 지역구강보건학회, 대한예방치과학회 등 산하 세부분과학회(연구회)가 활성화되고, 그 학문적 성과가 모(母) 학회로 모여질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실제 치협은 2011년 60차 대의원총회에 ‘세부분과학회’ 도입 정관개정안을 상정한 바 있다. 부결되기는 했지만, 치의학문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다시 한번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하나의 핵폭탄이 대기 중이다. (가칭)대한예방치과학회(회장 백광우)의 인준 여부. 치협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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