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79]내가 행복해지는 ‘거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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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79]내가 행복해지는 ‘거절의 힘’
  • 전민용
  • 승인 2013.05.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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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행복해지는 ‘거절의 힘’, 마누엘 스미스, 이다미디어

 

이 책의 관점에서 본다면 영화 ‘고령화 가족’은 ‘고인돌 가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갈등 해결 방식이 원시적이다. 다양한 직간접 폭력과 심지어 원시인들이 가장 애용했을 돌로 머리 까기도 자주 등장한다. 인모(박해일 분)는 깡패들의 더 큰 폭력 앞에서 다소 뜬금없이 문명적 해결 방식의 우월함을 주장한다. 영화를 보면서 갈등에 대한 문명적 해결방식의 이론과 실전기법을 담은 이 책을 인모에게 권하고 싶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고 김수환 추기경은 삶은 ‘계란’이라고 했다.^^) ‘관계 맺기’가 아닐까 한다. 나와 환경, 나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주변 환경보다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훨씬 중요해졌다. 우리의 희로애락을 좌우하는 것도 대부분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이 책은 사람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 맺기에 대한 지침서다. 누구나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기주장을 펼치고, 조정당하지 않고 조정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최종판단자이자 책임자로서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진화심리학적 이론과 대화 기술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저자처럼 심리전문가들도 가족, 친구, 거래 상대자 등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를 겪는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안긴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다.

동물이나 원시인의 대처 방법인 싸우거나 도망치는 것 외에 인간 조상이 점차 발달시킨 능력이 언어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다. 우리는 지금도 싸우거나 도망치는 대처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수동적 공격성과 수동적 도피 행동의 모습을 띤다. 그런데 직접적이든 수동적이든 이런 공격과 회피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노, 두려움, 우울은 인간이 타고난 생존 감정 3종 세트다. 분노를 느끼는 순간에는 공격을 하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에는 도망치라는 생리적, 화학적 신호가 나오고 자동적으로 실행된다. 우울감은 환경이 혹독한 시기에 초기 조상들에게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게 해주었다. 원시 인류는 이 세 감정들을 통해 생존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컨대 오늘과 같은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심리적 ‘동면’ 메커니즘인 우울감은 거의 효용이 없어졌다.         

분노-공격성, 두려움-도피, 우울함-위축이라는 신경생리학적 대처 메커니즘은 그 자체가 질병이나 잘못된 대처 방법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우리가 겪는 갈등과 문제의 대부분이 타인과의 관계 때문인데 이런 원시적 대처방법은 말로써 당당하게 해결하는 문명적 대처방법에 비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원시적인 저위 뇌센터는 나중에 발달한 뇌기능의 대부분을 차단한다. 혈액은 자동적으로 골격 근육으로 집중되고,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뇌의 활동은 억제된다. 원시 조상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효과적인 대처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주 제한적인 경우에만 효과적이고,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역효과가 더 크다.

이러한 진화적 관점이 옳고 언어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이 유익하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두려움에 떨며 공격성과 도피에 의존하는 것일까? 저자는 인간의 성장과정에 그 답이 있고 우리가 타고났지만 어느 순간 잃어버린 자기주장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자기주장이 강하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보채거나 울고 어디든 기어 다닌다. 어른들은 아기들의 행동을 일정하게 통제할 뿐이다. 아이가 커서 말을 배우면 부모의 통제는 심리적인 것으로 바뀐다. 부모는 아이의 선천적인 자기주장을 통제하기 위해 불안해하고 죄책감이 들도록 훈련시킨다. 불안과 죄책감은 기본 생존 감정인 두려움이 조건화되거나  학습되면서 변형된 것이다.

부모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등의 말로 불안과 무지와 죄책감을 야기하는 행동 방식을 끊임없이 주입한다. ‘착한 아이, 못된 아이’의 프레임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효율적이긴 하지만 교묘하게 사람을 조정하는 비겁한 방법이다. ‘착한’아이는 사랑받고 ‘나쁜’아이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심리적 위협이 아니라 단지 ‘엄마가 원한다’는 단순하고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가 아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권위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행사한다면 아이는 자기주장 개념을 익히면서도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것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될 것이다.

자기주장을 못하고 조작적 감정 통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크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10대가 되면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불안감과 죄책감을 활용하므로 말싸움만 반복된다. 엄마는 완벽하고 모든 행동에 항상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강변하는 것보다 실수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때로 화내고 기분 나쁘게 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

길들여진 아이들은 어른이 돼도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과 무지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런 감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우리를 조종하는 끈으로 계속 활용된다.

타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다보면 불만이 쌓이고 우울해지고 소통을 피하고 타인과 멀어지고 자존감을 잃는다. 서로 상대를 조정하기 위해 조작적 – 반조작적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서로 좌절하거나 화가 나거나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자기주장 권리야말로 인간관계에서 개개인의 건전한 참여를 위한 기본 틀이라고 말한다. 자기주장 권리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헌법적 권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권리다. 저자는 스스로가 자기주장을 하는 최종판단자가 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의 체계가 아니라 ‘내게 맞고 맞지 않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체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당하고 적절한 거절과 자기주장과 타협을 위해 알아야할 ‘내가 행복해지는 자기주장 권리 10계명’을 제시하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1. 당신은 스스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 2. 당신은 이유를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3. 당신은 스스로 책임질 권리가 있다. 4. 당신은 마음을 바꿀 권리가 있다. 5. 당신은 실수를 저지를 권리가 있다.6. 당신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7. 당신은 타인의 호의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 8. 당신은 비논리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9. 당신은 남을 이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10. 당신은 “관심 없어”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

저자는 분노-공격성, 두려움-도피라는 원시적 대처를 넘어서서, 무지, 죄책감, 불안감을 떨치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기법을 제시한다. ‘고장 난 레코드’ 기법과 ‘안개 작전’, ‘부정적 단언’, ‘부정적 질문’ 등이다. 다양한 인간관계를 상업적 또는 공식적 관계, 권위적 관계, 대등한 관계로 나누고 각각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소개한다.

‘고령화가족’의 인모가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 가족 간이나 개인 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깡패집단처럼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나 제도적 국가적 폭력 앞에는 별무신통일 것이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조작에 대해서는 대응 가능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구조적 조작에 대해서도 무력할 수 있을 것이다. 피상적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최종판단자가 되기 위해서는 깊은 통찰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동안의 삶과 조정 당하거나 조정해온 인간관계 등에 대해 돌아보게 해 주는 유익한 책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많은 갈등이나 문제에 대해서 시도해볼만한  현명한 해결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개인보다 가족이나 집단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다만 우리 문화와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적용은 당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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