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품격, 그리고 성재기와 스케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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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 그리고 성재기와 스케일링....
  • 박한종 논설위원
  • 승인 2013.07.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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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박한종 논설위원

 

남성연대라는 단체의 대표로 있던 성재기씨가 단체 활동비 1억 원이 없어 한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이 한창 말거리가 되었다. 어찌되었든 한 인간이 유명을 달리할 기로에서 그이의 선택이 옳건 그르건 간에 죽음보다는 삶으로 귀결되기를 바라며 또한 결국 되돌아 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바라보는 마음은 찹찹함을 넘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선 그것이 자살의 선택이 아니라 퍼포먼스라 하자. 자살이 모금을 위한 퍼포먼스의 소재가 되다니...공포나 폭력이 그러하듯, 자살에 대한 노출이 빈발한다는 것은 둔감함을 키워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다. 더구나 사회적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하는 단체의 장이라면, 더더욱 못할 짓이다.

그것이 퍼포먼스가 아니라 자살이라면, 그것이 벼랑에 몰린 개인적 삶의 고뇌나 인간을 옥죄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항거를 표현하고자 하는 발언으로서의 것이 아니라, 단지 단체 후원금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모금하기 위한 것”이란 것에서 아연할 수밖에 없다.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느 만큼의 역차별을 감수하는 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남성연대가 이에 대한 문제를 찾아 제기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다면, 그것은 남성으로서의 삶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손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번 선택은 사람의 삶이 가지는 품격, 그리고 그럼으로써 사람의 죽음이 가지는 품격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는 우리 사회의 한 켠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하다.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무참히 쓰러져간 광주항쟁의 주검에 대해 홍어라는 표현으로 인간에 대한 일말의 예의마저 내팽겨 친 것이 오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지속되어 자행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결국 그러한 행위가 스스로의 인격을 부정하는 귀결이긴 하지만, 우선적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은 직접적 피해 당사자이겠고, 더 나아가 같은 공동체에서 인격의 손상에 무감각해는 공동체 성원의 그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편으로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스케일링 보험화로 치과의사들은 이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듯하다. 이제 치과의사는 누구에게라도 스케일링이 필요한 환자에게 쉽고 당연히 권할 수 있고, 환자 역시 편안히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좁은 치료실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런 것이 인간의 품격의 회복이 아닐까?

치과의사들은 환자가 경제적 부담으로 거부감만 느는 건 아닌지, 또는 이웃 대형 치과에서 얼마를 받는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건강 서비스를 경제적 수요와 공급의 접접에서 구하지 않고 인간의 필요에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보자면 환자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품격은 우선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지켜야 할 것이자, 동시에 서로에 대해 지켜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과연 사회적 환경이 인간의 품격을 유지해 주느냐는 핵심적 요소이다. 스케일링의 보험화로 치료실에서 그러하듯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 등의 문제 역시도 자본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차별받는 것을 용인내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사회적 제도로서 보호하는 속에서만 우리는 우리의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한종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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