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사람들의 향기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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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나는 사람들의 향기있는 삶
  • 김랑희
  • 승인 2013.08.0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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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바야흐로 냄새의 계절

여름은 후각이 피로해지는 계절이다. 사방에서 냄새를 느닷없이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반나절 그대로 두면 쉰내가 나기 시작하고, 옷과 몸에 밴 땀 냄새는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로부터 쉴 새 없이 난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장마가 오면 눅눅한 빨래냄새와 빨지 못한 옷의 냄새가 뒤섞인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냄새의 기습에 우리는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순간의 감각의 반응인 것뿐일까? 우리는 냄새와 향기를 구별해서 사용한다. 물론 냄새가 좀 더 포괄적으로 사용되기는 하나 향기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없다.

냄새는 본질적이기도 하지만 부정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냄새는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고개를 돌리는 행동과 더러운 느낌을 동반해 피해야하는 것이나 치워야하는 것으로 결론나기 십상이다.

바야흐로 냄새의 계절에 어울리는 자리가 있었으니 대한문에서 화요일마다 진행되는 <평등예감_‘을’들의 이어말하기> 4번째 ‘냄새의 출처’이다. <평등예감_‘을’들의 이어말하기>는 한국사회에 반차별과 평등에 대한 지향을 널리 확산시키고,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 활동하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이어말하기 기획단이 주최하는 이야기 나눔의 자리이다.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몇몇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집단을 향해 쏟아지는 혐오와 차별이 우리 모두의 평등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차별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행동은 우리가 서로를 연결시키며 평등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사회가 말하는 대로 듣지 않고 사회가 들으려는 대로 말하지 않기, 사회가 배제하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기. 이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불평등의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평등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연대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4번째 자리를 이어왔다. 그런데 대체 차별과 냄새는 무슨 관계인걸까?

냄새는 ‘코’에만 머물까?

이야기 손님으로 '반말해도 괜찮은 사람?' 마문,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공동체와 함께하는 조승화, 기록노동의 존재와 의미를 알리고 싶어 하는 희정, 분홍 메니큐어를 하는 준우가 초대되었다. 자신 혹은 자신과 함께 한 사람들의 냄새에 관한 이야기, 외양과 관련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빠짐없이 꼭꼭 마음으로 듣는다.

외모 때문에 한국인과 늘 다르게 평가받고, 다르게 대접받는 이주노동자 마문은 “이런 경험을 하면 내 피부색에서 냄새가 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건물, 비위생적인 재래식 화장실, 골목마다 쌓인 소주병 등에서 나는 냄새로 동자동쪽방촌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한 냄새이지만 쪽방촌 사람들은 살기위해 익숙해져야 하는 냄새라고 조승화는 전한다.

기록노동자인 희정은 자신들이 만난 노동자들의 노동과 냄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여름이면 코가 헐 정도의 냄새가 나는 청소차에 얼굴을 붙이며 매달려갈 수밖에 없는 노동과 담배를 필 수 있는 정규직에게서 나는 담배냄새가 비정규직에게선 날 수 없는 냄새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성별과 차림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끼어드는 간섭과 태도의 변화를 통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이, 직업,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에 대한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의 ‘냄새’이야기를 들으니 냄새는 그저 코끝을 스치는 찰나의 감각이 아니라 냄새를 제공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멋진 슈트처럼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게선 향기를 기대하게 된다. 반면 노숙인, 허름한 옷차림에서는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사실이다. 냄새나는 사람들을 피하며 우리는 그들이 게을러서 더럽다거나, 혹은 피해야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냄새는 그들의 삶의 조건에서 오는 것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그 냄새를 갖고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기 전에 우리는 황급히 그 냄새에서 멀어진다. 냄새는 코를 스쳐갔지만 냄새의 시선은 우리를 성급한 편견으로 몰아넣었다.

냄새의 출처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심결에 보였던 나의 행동이 번쩍 떠올랐다. 나도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 내 몸에서 나는 냄새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나는 냄새에도 코를 벌름거린다. 좋아하는 냄새라면 별 문제없지만 싫은 냄새가 예기치 않게 풍겨왔을 때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얼굴을 찌푸렸겠구나 싶었다. 그 냄새의 제공자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찌푸린 나를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미안해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흡연자인 나는 요즘 담배 필 곳이 귀해 흡연실이 있는 카페를 하이에나처럼 찾아 헤맨다. 카페의 흡연실은 흡연을 하는 나도 싫을 만큼 담배연기와 냄새로 찌들어있다. 하지만 담배 필 곳이 없으니 꾹 참고 그곳에 있을 수밖에.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힐 듯한 흡연실을 나오니 내 몸은 내가 핀 담배의 100배 이상의 담배냄새에 쩔어 나는 걸어다는 담배냄새가 되었다.

그리고 서점에 갔다. 책을 보고 있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내 옆에서 책을 고르던 여성이 나를 향해 무언의 항의를 하고 있다. ‘넌 담배를 얼마나 피길래 온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는 거냐? 너의 담배냄새가 너무 싫다. 어떻게 이러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오냐?’ 말은 안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 얼굴표정이 끊임없이 나를 비난하는 듯했다. 난 속으로 답했다. ‘니가 참아라. 나랑 얼마나 같이 있는다고 그러냐. 난 흡연실에서 담배피웠는데 뭐가 잘못된거냐? 그럼 담배냄새가 공기 중으로 사라질 수 있는 곳에서 담배피게 해달라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앞으로 탈취제를 가지고 다녀야하나 고민하며 쪼그라든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몸에서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향수 냄새나 비싼 화장품 냄새 또는 상쾌한 목욕용품 냄새를 풍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이 아닌 땀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는 노동, 그 노동 이후에 샤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몸에선 땀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음식이 아닌 음식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다른 냄새가 날 수 밖에 없다. 집이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서 온갖 도시의 냄새가 밸 수밖에 없다. 생선장수에게서는 비린내가 나는 것이, 햇볕이 들지않는 지하방에서는 곰팡내가 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렇게 냄새는 삶에서, 노동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당연한 삶의 냄새가, 노동의 냄새가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결국 그들의 삶과 노동을 부끄럽게, 감추고 싶게 만든 건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었다.

냄새나는 사람의 향기있는 삶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냄새를 맡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노동자들은 온갖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노동한다. 화약약품을 다루는 노동자들은 독한 화약약품을 맡아야만 한다. 쪽방촌 사람들은 일년에 3-4번의 홀로 죽어간 사람의 냄새를 맡는 다고 한다.

모두가 맡을 수 없는 냄새를 맡으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만이 맡는 냄새, 이 냄새도 삶과 노동, 죽음의 냄새이다. 그리고 가난의 냄새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 가난한 사람들만 맡는 냄새,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맡을 수밖에 없고 풍길 수밖에 없는 냄새. 이 냄새는 낯설게 다가와 경계의 촉수를 세워 차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냄새 맡는 코 뒤에 나타나는 시선에 차별이 숨어있음을 발견할 때, 그 시선을 변화시킬 때 사람들의 삶의 냄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고개를 돌리는 냄새가 누군가의 삶의 향기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냄새의 출처는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게을러서만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삶의 조건과 환경이 냄새를 생산하고 있었다. 인간이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위생적인 삶도 필요하지만 냄새의 출처를 들여다보는 것, 삶의 냄새를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냄새를 경멸하지말자. 그들은 그 냄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매끈한 멋쟁이가 향수냄새가 난다고 그의 삶이 향기로운 것만은 아니다. 실상 알고보면 썩은 내가 진동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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