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명예훼손 그리고 입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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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명예훼손 그리고 입막음...
  • 전양호
  • 승인 2014.02.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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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호 편집국장…치협 집행부의 회원 상대 소송을 지켜보며...

 

참여연대는 이슈리포트 ‘국민입막음 소송 남발실태와 대책’(2013.05)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국가기관과 고위공직자에 의해 진행된 30건의 민형사소송의 문제점을 보고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30건의 소송 중 유죄가 인정된 것은 단 2건뿐인 반면에 소송 당사자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유무죄 여부를 떠나 모두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소송의 당사자들은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4년 이상 경찰 또는 검찰의 수사, 그리고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 응해야 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변호사 사무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또한 당사자들 대부분은 재판 결과나 수사와 재판 기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감, 경제적 부담, 위축감, 자기검열과 주변으로부터의 고립감 등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소송당사자들의 불필요한 피해를 예방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법원은 국가의 명예훼손 소송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아무런 제한 없이 국가의 피해자 적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 및 기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으며, 국가 산하에는 실로 다양하고 많은 국가기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송이 남발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하면,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적격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서울중앙지법 2010. 9.15선고, 2009가 합103887판결)’

‘언론보도의 내용이 객관적 자료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직자의 공직수행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어떤 의혹을 품을만한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그 사항의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인정되는 경우에는 언론보도를 통하여 위와 같은 의혹사항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조사를 촉구하는 등의 감시와 비판 행위는 언론자유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대법원 2006 5.12. 선고 2004다35199판결)’

얼마 전 치의신보는 김세영 협회장 등 임원을 대상으로 근거없는 비방을 한 현직 치과의사를 고소한 소식을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한 치과의사가 지난해 4월 정기대의원총회에서 통과된 선거인단제도 도입과 관련된 글을 유명 포털게시판에 올리면서 근거없는 사실로 치협 집행부를 음해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이 기소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는 사실과 치협 고문변호사의 의견을 근거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있다. 또한 해당 치과의사와 친분이 있다는 익명의 치과의사의 인터뷰를 근거로 그가 평소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켜 지역치과의사사회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고, 문제가 많은 회원까지 보호해 줄 필요는 없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치협, 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땐 강력한 법적대응’이다. 이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보고 ‘이상한 소리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엄포를 느낀 건 나뿐일까?

우리나라는 검찰에 의한 ‘기소 독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오직 검찰만이 범죄가 성립될 수 있으니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기소를 할 수 있으며, 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올때까지는 피고인은 무죄라는 전제하에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는 경찰에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으니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하지만, U모 치과에서 십수차례의 명예훼손 고소, 고발을 당한 경험과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비추어 볼 때 현재 상태는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경찰에서 일차조사를 마치고 자신들의 의견을 달아 검찰에 기소 여부를 판단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일 뿐이다.

물론, 유무죄 여부에 대해 언론으로써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이니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언론이 고소인과 사실상의 동일 주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고소인이 자신의 권력를 이용해, 그것도 피고인이 속한 사회가 부여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정당함과 상대방의 유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친분이 있다는 익명의 치과의사의 인터뷰를 근거로 해당 치과의사의 삶과 인격을 비하하는 것 역시 악의적이다. 원래 나쁜놈이니 이번에도 유죄일 거라는 단순한 논리로 촛점을 흐리고 있고, 맘만 먹으면 대충 누군지 알 수 있는 치과의사 사회에서 피고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고작 익명의 1인의 인터뷰로 개인의 삶을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것에도 동의하기가 힘들다.

한낱(?) 직능단체의 집행부를 국가기관과 비교하고 판단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미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치협 집행부 역시 전체 치과의사를 대표하고 치과의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조율하며, 치과의사들의 복리를 위해 헌신할 것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최소한 치과의사 사회에서는 엄격한 도덕성을 유지해야 하며 다양한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다소 무리한 비판일지라도 전체 맥락에서 이를 이해하고 좀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치과의사 개인이 소송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피해와 고통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인 고통을 피하게 해 준 지위와 힘이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았으면 한다.

 

 

 

 전양호(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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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2014-02-26 15:20:42
공감합니다. 인터넷에 대통령 욕하는 댓글이 그렇게 많아도 대통령이 국민을 검찰에 고소했다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요. 치협 회장에게서 대통령 정도의 아량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지만, 그래도 고소하기 전에 당사자와 통화를 해서 오해를 풀어주었다면 그 분은 오히려 더 든든한 회장 편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서운 회장 보다는 따뜻한 회장 이미지가 더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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