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역사를 찾다] 암사동 선사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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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역사를 찾다] 암사동 선사주거지
  • 임종철
  • 승인 200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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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깎고 토기를 빚으며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집터

▲ 복원된 선사시대의 움집
"(1971년 11월 29일 암사동 유적지에서) 발굴조사된 집터의 바닥이 얼어있어 작업인부에게 얼마나 두껍게 얼었는지 파보게 했다. 그런데 1cm 정도의 바닥이 얼어 마치 시루떡 한켜가 일어나듯 떨어져 나왔다. 하루 만의 추위에 모래바닥이 1cm 두께로 얼어붙었다는 것으로도 강추위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인부들에게 얼어붙은 바닥을 모두 들어내게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집터의 기둥 구멍 흔적을 찾지 못해 기둥을 세우지 않은 특수 용도의 유구라 생각했던 이 집터에 벽을 따라 기둥자리 흔적이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완형의 빗살무늬토기 1점이 짓눌려 찌그러져 파손된 채로 드러났다.

선사시대 움집터 바닥의 전모가 일순에 드러났다. 모든 것이 날씨 덕을 본 것이다. 갑자기 땅이 얼지 않았으면 그것으로 작업을 끝냈을 것이고 작업이 끝났다면, 그 집터는 기둥이 없고 완형의 빗살무늬토기도 없었던 그저 특이한 유구로 영원히 기록되고 말았을 것이다.(조유전, '발굴 이야기'에서. 참고로 무령왕릉의 발굴이 그해 7월이었다)

서울에서는 강동구 암사동 · 송파구 가락동과 강남구 역삼동 등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굴, 보고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는 지상 조사를 통해 채집된 것들로 불확실한 것도 있다 한다. 따라서 서울 지방에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확인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그중의 대표적인 유적이 암사동 선사유적지다.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때 표층이 쓸려가면서 유물이 지상에 드러나 처음 알려졌다 한다. 그후 1960년대 이후 수차례의 재발굴을 통해 신석시시대의 중요한 유적지임이 밝혀졌다.

▲ 완전한 형태의 빗살무늬토기. 발굴당시의 모습
신석기시대는 농경정착생활을 통해 잉여농산물을 가질 수 있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져 인구증가와 생산력의 증가가 이루어진 인류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라 한다. 이곳에서 이러한 인류사의 혁명적인 시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다음부터는 암사동 선사주거지를 좀더 경외감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물은 櫛文土器(즐문토기)이다. 그야말로 즐!이라 할 만한 용어인데 다행히 빗살무늬토기라는 알아들을 만한 말이 있다. 아무튼 암사동은 BC 5000년 경의 신석기 유적이 주를 이루지만, 발굴과정에서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의 유물도 발견되었다 한다.

넓게 공원처럼 꾸며진 유적에는 복원된 움집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다양한 유적과 전시관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거위나 타조(!)도 있어 가족단위의 나들이에도 좋은 장소가 된다.

관 람 료 : 어 른 500원(단체 30명이상 400원), 학 생 300원(단체 30명이상 200원)
주 차 료 : 경차  1,000원 / 소형차  2,000원 / 대형차(25인승 이상)  4,000원

▲ 움집의 내부. 선사시대의 생활상이 재현되어 있다
교 통 :

[승용차] 천호대교를 지나 천호동사거리에서 현대백화점을 끼고 암사동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5~7분정도 계속 직진. ※ 100m~200m간격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음.
[대중교통]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하차하여 1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승차

임종철(서울 좋은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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