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위생 논단] 개념적 몰이해 속의 성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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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위생 논단] 개념적 몰이해 속의 성윤리
  • 편집국
  • 승인 200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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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경계는 어디인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잡다한 묵은 찌끼들을 말끔히 털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그러나 우리 치과위생사들의 갑신년은 새해 벽두부터 그리 달갑지 않은 도전으로 심기가 불편한 출발을 하게 돼 못내 안타깝다. 지난해 막바지에 이르러 터져 나온 사제간의 성폭력 사건의 불길이 쉽사리 잡힐 것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담이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유토피아에서 내쫓김을 당한 역사이래, 인간의 유약함은 욕심의 저울대 위에서 매순간을 갈등하게 하는 굴레인지도 모르겠다. 혹여 “어디 이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라고 새삼스럽게 말세가 온 것처럼 유난을 떠느냐”고 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설사 이 사건에서 신분, 지위, 상호관계 등 여타의 조건들을 모두 배제한다해도, 가해자의 편에서는 실수였건 고의였건 최대한으로 피해자에게 무조건적인 사죄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일진대, 하물며 이미 심신이 무참하게 상처 받아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인격 모독적인 루머에서부터, 보호받을 자격을 운운하는 어이없는 추임새까지 보태고 있는 자들이 있는 상황이니 어찌 우리네 심기가 태평할 수 있겠는가.

그런 논리라면 이 사건의 당사자가 윤락여성의 신분이라고 가정했을 때는 전혀 항변할 자격조차 없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법 앞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인간의 기준을 그 자격에 따라 차별할 수 있는 것인가? 혹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그 법은 세월이 몇 십 년이 아니라 몇 세기가 흘렀어도 존속해 오지 않았겠는가 되묻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정의의 기준이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검증을 거듭해 오면서 정리하고 다듬는 가운데, 오히려 인간의 행동반경에 시대의 변화에 따른 더 많은 구속요건이 추가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지금도 누군가가 미처 챙기지 못한 악법의 모순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모든 법은 끊임없이 검증되고 수정·보완의 과정을 거치며 초시대적 완전함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약자를 노예 삼아 잔인하게 부린다거나, 일부다처제의 관습을 재현한다거나, 한낱 부리던 자라 하여 고용인의 주검 옆에 생매장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에게서 일어난다고 하자.

그러나 그 사람의 신분 때문에 또는 무지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 그렇게 했던 역사가 있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 일도 용납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자고로 어떤 범죄든 역사의 한 때에 흔히 자행했던 흔적이 있다 해서 그 죄질을 가볍게 평가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들의 감각이란 사회가 빛 바래고 어두워질수록 점점 더 둔감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혼란스런 소용돌이 속에 있다보면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지 누구를 두둔해야 하는 건지 그 판단력마저 잃고 마는 모양이다. 단지 내 편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연이야 어떻든 간에, 관대함을 넘어 피해 입은 당사자를 음해까지 하고 나서는가 하면, 옳은 소리하는 동료를 배신자로 몰아버리는 등 극도의 이기주의가 난무한다.

이번에 표면화된 이 사건은 사실 불행하게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단지 우리나라의 정서상 드러내놓지 못해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처지로 여간한 결단이 아니고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세상에 외치기 힘겨운 문제이기 때문이었던 것뿐이다. 마음의 고통을 못 이겨 사이버 상에 호소하며 곧 협회에 손을 내밀 듯 하다가도 시든 꽃 떨어지듯 힘없이 숨어버리는 것이 그간의 실정이었다.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제공하는 자료에서, 성폭력이란 “상대방의 의사에 반(反)하여 가하는 성적 행위로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며,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다’함은 원치 않거나 거부하는 행위를 상대방에게 계속하거나 강요한다는 의미로, 따라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성폭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행동제약을 유발시키는 것도 간접적인 성폭력이라 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 편에 있는 사람들조차 그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의사표현이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부의사를 보이자니 친근함의 표현이라는데 면박을 주는 것 같고, 받아 주자니 불쾌하기 짝이 없고….

어찌 보면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이 개념의 정리가 출발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번 일을 그저 인구에 잠시 회자하다 마는 이야깃거리로 흘려보낼 수가 없다. 이미 대한치과위생사협회장이 의지를 밝혔듯이 “더 이상은 이러한 일들이 치과계에 존재하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 우리 협회의 입장이다.

우리 협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치과계의 올바른 성윤리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내부에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비롯, 각 사회단체들과 연계하여 치과계 뿐 아니라 이 땅의 성범죄 예방을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왕이라는 절대 권력을 이용해 신하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왕도 결국 죄를 회개하고, 불륜으로 얻은 아들을 잃는 벌을 받는 과정을 겪으면서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 다윗왕의 인간성 회복의 교훈을 부디 되새길 일이다.

김원숙(대한치과위생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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