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프랑스 유럽헌법 비준 실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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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프랑스 유럽헌법 비준 실패의 의미
  • 양승욱 논설위원
  • 승인 2005.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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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음모에 대한 반대, 그리고 불균등한 유럽의 한계

어제(29일) 프랑스의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이 큰 표차로 부결된 것으로 내무부 부분 개표와 조사기관의 출구조사에서 나타났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국영 TV 연설에서 국민투표가 부결됐다고 시인했다.

통합유럽의 중추이며 통합론의 핵심인 프랑스에서 통합헌법이 부결되에 따라 6월 1일로 예정된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도 부결이 예고되는 등 유럽 통합에 관한 회의론이 증폭되고, 유럽의 정치 통합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예상된다.

사실 유럽헌법 비준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대 여론의 기폭제가 된 사건은 이미 지난 3월 22일 일어난 바 있다. 프랑스 의회가 노조의 반대에도 현행 주당 35시간의 노동시간을 노사합의를 전제로 48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국민들은 이와 같은 노동유연화 정책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신호탄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곧바로 유럽헌법 비준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유럽통합의 산실인 프랑스의 국민들이 유럽통합론의 대의(?)에도 이를 악용하는 신자유주의적 음모에는 명백히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지역적으로 확대되면서 이미 중ㆍ동부 유럽 10개국이 대거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또한 향후 2~3년 내에 불가리아, 루마니아 및 터키 등이 가입하게 되면 28개국의 회원국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 얼마 전부터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소위 ‘유럽통합 속도 조절론’이 대두되어 왔다.

프랑스 국내기업이 고임금과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그 산업시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ㆍ동부 유럽지역으로 이전함으로써 소위 ‘사회적 덤핑’이 일어나는데 비해 자국으로 유입되는 저개발국가출신 국민들로 인하여 실업율이 높아지고, 복지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것이다.

시장이 통합됨으로써 사회적 편익과 경제적 효과도 커지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함에도, 프랑스 시민들은 경제 수준이 낮은 신입 회원국들에 대한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는 셈이다.

결국 온건적 유럽통합론자들은 불균등한 유럽의 한계를 고려해 급속한 유럽확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일부 회원국 시민들의 상당수가 이에 동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헌법이 발효하게 되면 사실상 미국과 같은 유럽연방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므로 소위 ‘유럽정치공동체’의 결성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의 회의와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도 프랑스에서 유럽헌법의 비준 실패의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승욱(변호사. 양승욱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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