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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냉·온탕을 오가는 북핵문제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5.06.01 00:00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는 인류가 한번도 겪지 못한 참상을 당했다. 핵폭탄이 도심에 떨어지자 0.6초 후 직경이 180미터가 되는 30만 도의 불덩이가 솟았다. 지열은 곧바로 6천 도가 되었고, 모든 구조물들이 폭발하며 무너져 내리면서 곧바로 불에 타 버려 도시전체가 황폐화했다. 인구 40만 명중 25%가 하루만에 죽었다. 도시에서 달아난 사람들 중 5만 명이 방사선 때문에 죽었다.

그러자 2차 세계대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고 모든 미국인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이 날 생일을 맞은 62세의 한 노인은 핵폭탄 투하를 명령한 트루먼 대통령에게 바로 편지를 썼다.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17세 한 소년은 그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날을 기억합니다. 나는 정말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가 몇 시간 동안 혼자 있었습니다. 누구와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반응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철저하게 고립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노인은 20세기 미국의 양심으로 이름 높았던 스콧 니어링(1883∼1983)이고, 소년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성인인 MIT 석좌교수 노암 촘스키(1928∼)이다. 선지자적 혜안을 지닌 노인과 소년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는 핵의 폭력과 야만을 꿰뚫어 본 것이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1953년 휴전으로 끝났다. 현상유지만 회복하였을 따름이다. 그 후로도 미국은 꾸준히 북한을 압박했으며, 이런 위협은 언제나 북한 체제의 생존문제를 자극하였다.

1960년 대 중반 이후 북한은 공산권의 분열로 고립무원에 빠졌다. 일사불란한 체제를 만들었으나 사회가 역동성을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렀다. 미국에 자존심을 최대한 세울 수 있었지만, 그 대신 미국과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의 길을 걸어갔다. 그래서 북한은 전쟁 위기감을 언제나 느꼈으며, 결국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자신감에도 북한 체제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1990년대 사회주의 동맹국들이 사라지자 북한은 외교와 안보의 고립에서 탈피하고자 적극적인 대외 관계 개선에 나섰다. 갑자기 몰아닥친 체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정상적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이 몰락한 마당에 홀로 남아있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질 않았다.

이에 북한은 '핵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다. 1993년 북한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가 핵사찰을 결의하자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해 미국과 긴장을 조성하였다.

북한은 핵사찰을 '미국의 반공화국 책동'으로 인식하면서 여기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한이 핵문제를 걸고 미국의 공세에 결사적으로 대응하자 양측은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으나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 중재하면서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북한은 자신을 '악의 축'으로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부시 정권한테서 사회주의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 핵을 외교적 카드로 다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국방력의 열세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의 생존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갈림길에서 핵카드를 꺼내든 것은 자칫 민족의 공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한반도에서 인류의 재앙인 핵무기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북한에게 막다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긴장을 완화하는 조치가 시급하다. 미국의 강경파를 달래고 북한과 교류와 협력을 통해 공존을 위한 최대 공배수를 찾아야 한다.

다급한 북한 지도부도 '우리식 사회주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대외 개방과 시장 도입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방향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외부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입해 경제가 회생할 수 있게 활력을 주어야 한다.

북한도 스스로 세계사의 흐름에 뒤진 고립주의적 자세를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제대로 도와줄 때 핵없는 평화 한반도와 통일의 길은 더욱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송필경(대구 범어연세치과)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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