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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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 전양호
  • 승인 2014.06.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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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전양호 편집국장

 

박근혜 정부가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의료법인의 부대사업을 대폭 확대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과 ‘의료법인 국내 자법인 설립운영 가이드라인’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본격적으로 의료를 통해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대형병원은 옷가게, 호텔, 목욕탕, 여행사, 식품판매까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괴물이 된다. 게다가 의료기관 임대업까지 허용하여 대형병원들이 호텔을 세우고 돈벌이가 될 만한 병원들을 끌어모아 임대료를 받아 챙기는 부동산업자로의 변신까지 부추기고 있다.

의료기관의 임대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보증금, 월세 받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 정도라면 굳이 욕을 먹으면서까지 추진할 이유가 없다. 아마도 병의원의 시설과 관리, 운영에 상당한 수준의 권리를 가진, 아니 월급쟁이 원장을 고용해 실질적으로 병의원의 소유권을 가지는 수준까지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자법인을 통한 실질적인 영리법인 허용의 문제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여기가 쇼핑몰인지 병원인지 헷갈릴 정도로 갖가지 부대사업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나마 최소한의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투자와 이윤배분이 가능한 영리법인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료법인이 자법인을 설립하고 그 자법인을 통해 각종 부대사업과 투자와 이윤의 배분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 우회적으로 영리법인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의료상업화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영리법인 허용의 문제였다. 정부는 자법인이라는 꼼수를 통해 이를 일거에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다.

게다가 가이드라인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제도적 근거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의료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의료법 제1장1조). 자법인의 허용(영리법인의 허용)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혜택을 받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를 미끼로 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의료법 체계를 가이드라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행정조치로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이번 조치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동네병의원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1차 의료체계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리자회사 설립이 가능하게 되면 대형병원은 더욱 상업화되고 대형화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기관의 임대를 통해 더욱 손쉽게 1차의료까지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또한 개인병원의 법인화 문제 역시 심각하다. 일부 대형 개인병원들은 의료법인이 갖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소유 및 상속 문제 때문에 지금까지는 개인병원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자회사를 통한 병원의 실질적 소유와 상속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의료법인으로 전환하는 개인병원들이 생길 수 있다.

이제는 굳이 바지원장을 내세우고 이면계약을 할 필요도 없다. 그럴듯한 이름의 법인을 만들고 자회사를 설립해 의료기관을 임대하게 되면 합법적으로 많은 동네병의원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힘들게 만들고 힘들게 지켜온 1인1개소법이 순식간에 무력화 될 것이다.

요즘 의료민영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각종 토론회나 기자회견 자리에서 치과계의 사례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치과계를 보라!’ 의료민영화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시민사회가 외치고 있는 말이다. 

 

 전양호(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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