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하겠습니다. 더 이상 슬픔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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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겠습니다. 더 이상 슬픔이 없도록.
  • 전양호
  • 승인 2014.07.21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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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전양호 편집국장

 

2014.4.16.

수요일,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 날이었다.
감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 아들놈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와중에,
무심코 틀어 논 TV에서 처음으로 사고 소식을 접했다.
여객선이 사고가 났고 승객이 전원 구조됐다는 속보에 ‘그냥 가벼운 고장이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오후가 되고 딸내미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간식 챙겨 먹이고 학원에 보내는 사이,
간간히 살펴본 인터넷 포털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이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별일 아닐 거라는 마음에, 이 정도는 충분히 구해낼 수 있을 거라는 우리나라에 대한 믿음에 그냥 별일 없는 오후를 보냈다.

저녁에 되어, 어어? 하는 사이에 실종자 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도대체 말이 되는 거냐고?
300여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수많은 아이들이 대명천지에 수장이 되게 생겼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거냐고? 울분을 곱씹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사고 후 100일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정말 한 사람도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10명의 실종자가 차가운 바닷속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두 번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던 국무총리는 다시 돌아왔고,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란 낯선 말로 우리를 뜨악하게 만들고 있으며, 정부여당 인사들은 어떻게든 뭉게고 지나갈 심산이 훤히 보인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무산되었다.
부모님들이 뙤약볕에서 단식을 하고 있고, 생존 아이들이 상처 난 가슴을 부여잡고 47km를 걸어 행진을 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100일이 되었지만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아니 국가와 기득권자들에 대한 환멸과 절망감이 커져갈 뿐이다.

▲ 광화문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농성장엔 아직 슬픔이 가득하다

의료민영화 반대 시위행진 중 광화문 광장에 갔다.
100일이 지났는데, 국가는 빨리 잊자고 재촉하는데 그곳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 슬픔이 나에게 전달되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 그 곳을 벗어났다
그런데, 어버이와 엄마의 이름을 붙인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곳에서 거친 막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정치사회적 입장이 다르다고 막말을 하고 몰아붙이는 건 옳지 않지만, 참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이를 처참하게 잃은 부모에게 이런 행동은 용서가 안 된다.
이분들, 심장까지 굳어버린 걸까? 참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대한민국은 바뀌어야 한다.
돈이 아닌 안전이 먼저인 대한민국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희생자들과 유가족, 우리 아이들과 내가, 국민들이 너무 불쌍하다.

그리고 바꾸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한다.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자.
누가 이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지, 누가 책임을 회피하고 덮으려고 하고 있는지 기억하자.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슬픔이 뒤따를 것이다.

 

 

 

 전양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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