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기고] 故 이거종 선배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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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기고] 故 이거종 선배님을 보내며…
  • 정갑천
  • 승인 2014.08.19 19: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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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정갑천 회원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추억과 후회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잊혀 지겠지만 말이다.

전대 치대 80학번! 풋내 나는 대학 신입생이 겪었을 80년 5월의 광주, 그는 신군부 쿠데타 정국에 항거하다 제적을 당하게 되고 인천에 올라와 노동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했었다.

88년 즈음인가에 민주화운동 관련 제적자에 대한 복적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치대에 돌아왔고, 나와는 졸업동기가 되었다.

그는 이후 인천에 올라와 ‘건강치과’를 개원하였고, 나를 인천에 올라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매주 화요일 만나는 건치 모임과 밤새 이어졌던 토론과 술자리들….  내가 낯선 인천에 적응하고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거종형은 술을 너무 좋아해 ‘말통’이라 불렸고, 무언가에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려하는 스타일이었다. 한때는 바둑에 열광하기도 했고, 한때는 스킨스쿠버에 미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치과 외적인 일로 인하여 재정적 파국과 건강의 위기 상황을 맞았었다.

아마 이때부터 형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던 것 같다. 같은 인천에 살면서도 얼굴 보기도 힘들고, 간혹 들리는 주변의 소문 정도나 들었고, 난 내 앞가림 하기에 바빴었다.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관계망이 협소해지고 움추려 들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관계 안으로 들어오기만 기다릴 뿐 먼저 다가서려고 하지는 못했다.

형을 보내면서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 하던 술, 담배도 끊고, 몇 년간 죽어라 산을 탔단다. 우리나라의 대간, 정맥, 지맥, 기맥 등 들어보지도 못한 산들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녔고, 최근엔 마라톤에 빠져 살았었다고 한다.

그냥 참여만 하는 마라톤이 아닌 완주를 했고, 심한 경우 1, 2주 간격으로 완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와의 싸움을 너무 치열하게, 극한까지 몰아 부치다 몸에 무리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힘겨웠을 시간 동안 형과 함께 하지 못함에 마음이 쓰리다.

이제 형은 가고 없다. 남겨진 유족들(형수와 4남매)에 대한 걱정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로 심사가 복잡하다. 좀 더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살아가야겠다.

거종형! 평온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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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호 2014-08-19 22:07:27
안타깝습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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