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대로 이루어진다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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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대로 이루어진다 했으니…
  • 양정강
  • 승인 2014.10.13 15: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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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양정강 논설위원

 

 

집안에 이런 저런 것들을 모아두기보다는 진즉에 정리하고 버려야 할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안 여기저기에 온갖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언젠가는 다시 읽거나 글 재료로 쓸 요량으로 스크랩(scrap)해 놓은 것들도 많다. 그 중에는 마음에 드는 문장을 손가락만한 크기로 잘라둔 것도 있다.

오려놓은 글들 중에 “수렵시대 원시인들의 치아가 더 건강 했었다”라는 제목으로 과학기자가 쓴 글이 있다. 본문에는 ‘치아’가 세 번, ‘이빨’이 한번 그리고 ‘입’과 ‘입속’은 다섯 번, ‘구강’은 두 번 나온다.

‘이빨’의 사전적 의미는 ‘이’(먹이를 씹는 기관. 치아(齒牙). tooth)의 속어이다. 아나운서들은 ‘이빨’이란 단어는 동물에게 적용하고, 사람에겐 사용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치과계 행사시에 축사를 하는 기관장들의 입에서 ‘이빨’이란 표현이 수차례 나올 때마다 참으로 교양미가 떨어져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치과의사’와 ‘치과 의사’로 어느 땐 붙여 쓰고 어느 땐 띄어 쓴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과’자가 있어 의과의 일개 과로 치부되는 느낌이 들어 일부러 강의자료 첫 장 이름 앞에 ‘치(과)의사 000’라고 ‘과’에 괄호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치과의사 출신 국회의원을 소개하면서 그냥 ‘의사’라고 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는데, 당최 마땅찮았다.

‘齒’자는 갑골문에서는 止(발지)가 없는 형태로 앞니모양을 본뜬 것으로, 후에 음을 나타내기 위해 ‘止’가 첨가되었으며, 앞니와 어금니를 통칭하는 ‘이’(teeth)를 의미한다. ‘牙’자는 위아래의 두 어금니가 맞물려있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occlusion’을 뜻한다고 한다.

한자를 사용한 일본, 대만, 홍콩, 중국 치과의사들의 명함을 보면 일본은 ‘齒科’, 대만은 ‘牙齒醫師’, 홍콩은 ‘牙科醫生’, 중국은 ‘口腔(stomatology)’으로 적혀있다. 아무래도 ‘구강’이 턱과 얼굴을 모두 포함하는 악안면(顎顔面)과 잘 어울리며 차지하는 영역이 가장 넓다고 생각한다.

옛말에 ‘말이 씨가 되고’, ‘아’와 ‘어’가 다르다고 하는데, 우리들만이라도 단어나 용어의 선택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글 제목 중 “Full Denture 집중심화 강의 ‘완전의치’세미나”라는 것을 보았는데, ‘완전’은 ‘불완전’이란 단어와 대칭적인 느낌이 드는 까닭에 ‘완전의치’보다는 ‘총 의치’나 ‘전체 틀니’가 더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덧붙여 치과 전문지에서 자주 보는 단어 중 ‘매출’은 ‘진료수입’, ‘가격’은 ‘수가’나 ‘진료비’, ‘칫솔질’은 ‘이 닦이’, ‘이빨’은 ‘이’나 ’치아‘로 바꾸면 좋겠다. 말이나 글이 세월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매출이나 가격은 우리 스스로를 폄하하는 듯한 표현이라 저어된다. 학술행사와 관련해서도 참여도를 가름하는 정도를 표현하는 ‘흥행’이나, “외압 이겨내 건전한 양악시장 형성돼야”라는 기사 제목도 그 뜻은 고맙지만 ‘시장’이란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고, 말(言)대로 이뤄진(成)다고 했으니 부디 정성(誠)스럽게 말하라.

 

 

 

양정강(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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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욱 2014-10-14 16:17:41
선배님 지론이심을 알고 있으나 언어 사용의 누빔점을 잘 잡는 것이 그 체계가 잘 작동하는 기본임을 조금 알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이 의미있게 전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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