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 한편]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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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 한편] 질투는 나의 힘
  • 강재선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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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리를 굴비처럼 엮어서 생각했던, 그런 친구가 있다. 많이 달라서 늘 다투고 서로 맘에 안 들어 아웅다웅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다보니 10여년 간 엮여버린 것은, 밥 먹을 다른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이쁜 것들은”을 입에 달고 다니던 그녀석이 최근 몸치장에 신경을 곤두세우더니 얼마 전, 파마를 했다. 나름대로 예쁘고 어울리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다. 녀석의 아줌마 파마를 보고 문득 ‘질투는 나의 힘’에 나오는 성연(배종옥)이 생각났다는 나의 촌평에, 윤식(문성근) 같은 남자를 만났으니 이제 원상(박해일) 같은 남자 만나면 되겠네 하며 좋아라 한다.

“질투는 나의 힘”을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대화를 하는 그들에게서 나와 내 친구들과 내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원상이, 모자란 듯한 하숙집 딸 혜옥을 대할 때와, 인간관계와 도덕관에서 자유로운 성연을 대할 때, 자신이 연정을 품은 여인들을 두 번 빼앗은 직장상사 윤식을 대할 때의 모습들은 다면적이고 분열되어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원상을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질투다. 원상의 결핍은 가지지 못했다는 질투를 만들고, 갖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고, 욕망이 그를 움직인다.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원상뿐만이 아니다. 어떤 관계든 더 힘센 자가 있고, 더 가진 자가 있으니까. 불안하고 불균형한 청춘의 그늘 속을 막 빠져나온 듯한 원상의 마지막 모습은 씁쓸하다. 원상과 윤식이 나눠마시던 싸구려양주처럼 흔하고 씁쓸하다. “이거..싸구려 양주지만..자꾸 손이 가..마실만 해”라는 윤식의 말처럼, 세상살이가 그런가보다.

얼마전, 녀석과의 통화. 늘 그렇듯이 허접한 개그에서 선문답, 심각한 인생상담까지 다양한 얘기들이 오고간다. 대학시절, 대화가 안된다며 서로 갈구던 녀석과 나는 10여년을 보내면서 새로운 대화방법을 터득했다. 말이 오고 가되,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지난 가을, 영화를 보고 난 후,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며, 자신이 성연 같기도 하고 혜옥 같기도 하다는 말을 하던 녀석이 올 겨울엔 원상을 닮았다. 길고 우중충한 터널 안에서 끊임없이 바깥을 동경했던 녀석의 결핍이 녀석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불균형이 균형을 찾을 때, 그것이 녀석을 좀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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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2006-06-28 04:57:00
이제는 누구를 만나야 하지...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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