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는 세상] 평화 대행진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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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는 세상] 평화 대행진을 다녀와서...
  • 윤정식
  • 승인 2005.07.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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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조금 넘어 다시, 평택이었다

▲ 전경차 위에 내걸린 평화의 구호들
작년 5월 29일, 비좁은 주차장에 ‘허가 없이’ 천막 치고 단 쌓아 무대 만들어 꾸역꾸역 더불어 치른 반전평화축제에, 나는 축제를 '즐겼던' 한 사람이었다.‘허갗받지 못하여 예정했던 공설운동장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다. 하지만 들어가지 못한다고 못할 건 없다는 걸, 축제는 어디서든 펼칠 수 있다는 것을, 평화축제는 보여주었다.

평화기행을 마치고 흰 윗옷 가득 친구들의 격려의 말을 담고 땀에 절어 도착했던 간디학교 학생들, 연신 아까운 줄도 모르고 음식을 권하던 외국인 노동자의 웃음, 너무 예쁘게 '자 총을 내려' 노래했던 꼬마아이들, ‘권위적’이란 말과 전혀 반대의 모습이란 저런 것이리라 싶었던 곱슬머리 모자의 문정현 신부님의 노래, 그리고 주차장 한쪽에 쳐 놓은 천막 안 모기장 안에서 잘도 자고 있던 아기들...

‘평화는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복직되고, 두꺼비와 맹꽁이가 멸종되지 않고, 농민들이 땅을 빼앗기지 않고,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 이라 하셨던 문정현 신부님의 말처럼, 평화축제는 한가지 얼굴을 가진 한 부류의 사람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닌, 모든 이들이 골고루 만들고 누리는 것이라는 걸, 내게 알게 해주었다.

▲ 소박한 평화대행진 팻말
올해 다시 독서모임 사람들과 평택을 찾았다. 토요일 평택에서 평화를 주제로 독서모임을 하고, 다음날 평화 대행진에 참가하는 일정. 평택에서 공동육아를 하시는 한 회원의 어린이집에서의 하룻밤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문구점에서 사온 재료가 아닌, 나뭇조각과 씨앗으로 만든 아이들의 만들기작품도 인상적이었고, 빗방울과 풀과 벌레를 마음에 담아 동시를 쓸 줄 아는 아이들의 정서에 가슴이 찡해져 왔고, 오랜만에 땅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여름 밤공기에 감사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회원 댁에서 쪄내온 아이 주먹만한 예쁜 감자 한 소쿠리를 보며, 참 평화롭다, 중얼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소 감상적이 되었을 것이다. 팽성에 차를 대 놓고, 산길을 지나고 마을길을 지나고 논길을 지나며 더욱, 가지꽃, 벼포기, 메꽃을 보며 더더욱...

푸른 논 한켠에 까맣게 서 있는 전경들을 볼 때도, 마음이 그닥 어두워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가는 길로 들어설수록 수가 많아지는 전경들, 미군기지 철조망을 빈틈없이 싸고 도는 ‘닭장차’와 세줄 네줄 겹겹이 서 있는 전경들의 굳은 표정에도 마음은 다잡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대추초등학교 입구에서 함박만한 웃음으로 감사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하시는 할머니의 환대에, 운동장 가득한 사람들과 노란 깃발에, 마음은 들떴다.

고맙게도 일기예보가 빗나가서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장마철인지라 운동장 바닥이 진흙탕이 되어 질척였으나, 어떻게든 만여명 사람들의 엉덩이 들일만한 공간은 마련이 되었다. 할머니도 계시고 청년도 있고, 엄마 따라온 아이들도 있고, 아빠 등에 매달려 더운 날씨에도 마냥 신이 난 꼬마도 있어, 평화대행진 답다고 슬몃 웃음이 맺혔다.

일정보다 빠르게 행사가 끝나고 인간띠 잇기 행진이 시작되었다. 워낙 많은 깃발들에 가려 초등학교 입구는 쉽게 열리지가 않았다. 느릿느릿, 답답하게 이어지는 행렬, 마침내 초등학교 밖으로 나와보니, 왜 입구가 아수라장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캠프 험프리를 두르는 좁지 않은 그 길에 전경들이 겹겹이 서서, 길을 내주지 않은 탓이었다. 방금 지나온 그 길이 너무나도 좁아 노란깃발들이 전경의 얼굴을 스치기도 하고 사람들에 밀려 나도 모르게 전경의 대열 위로 쓰러지기도 한다.

그제서야 우리의 얼굴도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 오늘 행진이, 수월하지는 않겠구나. 성이 나고 답답해진 아저씨 한 분이 홧김에 전경들을 밀치며, 길좀 내 달라고 소리치자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그를 말린다. 전경들의 왼발이 일제히 앞으로 한발 내디뎌진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누구를 향한 군화인지, 가슴이 조여온다.

▲ 길 위에 써놓은 bring the soldier back home
느리게 느리게 나아가던 줄이, 그나마 막혔다. 서서히 술렁이는 사람들의 기운, 길 옆 논두렁 위로 전경들이 급하게 뛰고 있었다. 넘어지겠다, 조심해라, 농을 던지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외친다. 사람들이 갇혔어요!!! 모두들 걸음을 멈췄다. 황급히 논둑 위로 올라서 앞대열을 보자, 사람들이 밀리고 있었다.

물대포와, 소화기와, 진압봉과, 진흙과, 깃대들... 비명소리와 얼크러진 사람들 사이에 혹시 아이는 없는지, 사람들은 울상이 되었다. 아수라장 속에 확성기로 전경을 독려하는 한 목소리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잘한다, 훈련받은 대로 해, 앞으로, 앞으로, 좋아... 대체 저 사람, 사람이긴 한 걸까, 모두들 듣고 있는데, 사람들의 가슴은 타들어가는데...

때리지 마세요,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고, 그쪽으로 이동하는 전경들을 몸으로 막기도 했다. 몸이 온통 물과 진흙이 범벅이 된 채로, 피를 흘리는 사람을 급히 데려가는 사람에게 뭐라 건넬 말이 없어 길을 내주며, 마음이 얼어버렸다. 불과 두어시간 전에, 이 길을 그지없이 따듯한 마음으로 지났다는 것이 부끄럽고 분했던 것이다. 멀리 구급차가 도착했으나, 저 안쪽에 부상자들이 많을텐데, 꺼내올 방법이 없을텐데...
분노와 두려움에 차마 저 앞을 계속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자 전경차들에 온통 노란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손에 든 깃발들을 너도 나도 차에 매달아, 차의 한 면이 평화의 구호로 가득해졌다.

저 앞의 아수라장을 보며, 차에 매달린 깃발을 보며, 짓밟힌 풀밭을 보며 휑한 가슴으로 느낀다. 평화란, 감상이 아니구나. 곱고 따스한 것만이 아니구나. 평화를 평화로 맞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 때문인가? 누구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평화에서 밀려나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7월의 푸른 논둑 위에서, 나는 솟는 눈물을 꾹 누르고 있었다.

윤정식(전북 전주시 소망부부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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