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The Immi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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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The Immigrant)
  • 전양호
  • 승인 2015.09.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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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이민자(The Immigrant)'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1년, 뉴욕의 엘리스 섬. 이민자들의 입국심사를 하는 곳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피로, 아메리칸 드림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폴란드에서 탈출한 에바(마리옹 꼬띠아르)와 마그다 자매가 초조하게 입국심사를 기다린다. 그러나, 동생 마그다는 폐질환으로 인해 수용소에 남아 치료를 받게 된다. 언니 에바 역시 배 위에서 여성으로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입국이 거부될 위기에 처하게 되지만, 브루스(호아킨 피닉스)의 도움으로 간신히 뉴욕에 가게 된다.

브루스는 몇몇 여성들을 데리고 댄스홀 벤디츠 루스트에서 공연을 하고 매춘을 해 살아가는 포주다. 에바는 동생을 빼내오기 위해 돈이 필요함을 깨닫고 브루스의 제안에 따라 벤디츠 루스트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마술사인 올란도(제레미 레너)가 오게 되면서 새로운 관계와 긴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영화는 관계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마리옹 꼬띠아르의 영화다(적어도 나에게는...).

브루스는 에바를 보자마자 첫 눈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곁에 두기 위해 서슴없이 매춘을 제안하고, 자신의 삶의 공간에 묶어두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녀가 무얼 하든 자신을 어찌 생각하든 상관없다. 그녀를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에바 역시 처음엔 저항하지만 점차 그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런 브루스에게 올란도는 에바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불안요소다. 올란도는 브루스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다. 뭔가 어두워 보이는 브루스와는 달리 그는 밝고 명랑하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브루스와는 불가능한 평범한 삶에 대한 상상이 가능한 사람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에바에 대한 집착과 올란도에 대한 경계심은 자기 자신과 그 주변을 파괴하게 만든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아름다운 배우다. ‘아름답다’가 ‘예쁘다’와 다른 단어라는 걸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배우다. 그녀의 깊은 눈과 창백한 피부, 심지어 볼에 깊게 파이는 보조개마저 에바의 슬픔과 좌절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강인함을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호아킨 피닉스는 이제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 아닌 그 자신의 이름만으로 영화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주는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마리옹 꼬띠아르가 출연한 영화들은 나에게는 그냥 마리옹 꼬띠아르의 영화일 뿐이다.

난민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의 난민 문제가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파도에 밀려온 3살짜리 아기의 시신에 마음이 시리다. 독재와 반민주적인 정권의 빈자리에 곧바로 몰아닥친 무질서와 폭력, 사람들의 고통이 당황스럽다. 반복되고 심화되고 있는 야만이 역사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를 의심케 한다.

아일란 쿠르디와 그의 가족, 그리고 폭력에 희생된 난민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하루 빨리 평화를 되찾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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