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역사]신라 때 만든 산꼭대기 연못, '한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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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역사]신라 때 만든 산꼭대기 연못, '한우물'
  • 임종철
  • 승인 2005.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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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발굴조사 이전과 현재 모습.
산꼭대기의 호수는 신비감을 준다. 천지나 백록담이 그렇다.

물론 그런 호수에 비길 수는 없지만 한우물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온 이들에게 나름대로 놀라움을 안겨준다. 관악산에 단풍이 드는 가을에 파란 하늘이 잠긴 물가에서 서울을 내려다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한우물 및 주변 산성과 석구상은 관악산 줄기 호암산(315m) 정상 부근에 있다. 1990년 발굴당시 확인된 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현재의 연못 밑에 묻혀 있었으며, 그 위에 어긋나게 축석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2년(672)경 나당전쟁시 한강을 넘어 수원으로 넘어가는 육로와 남양만으로 침입하는 해로를 효과적으로 방어·공격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로 추정되고 있다.

 ▲ 장군봉 너머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석구상의 뒷모습
현재의 연못은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길이 22m, 폭 12m의 규모다. 연못 근처에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화재를 막기 위해 세웠다는 해태상이 있다. 그런데 기록이나 발굴시 석구지(石狗池)라는 글씨가 발견되어 이 상은 해태가 아니라 돌개라고 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호압사도 인근에 있는 걸로 보아 풍수적인 의미도 있을 듯 하다.

지금 남아있는 돌개는 장군봉(412m)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석구지라는 글씨는 석축에서 볼 수 있는데 글씨가 거꾸로 되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우물에서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 산 정상부에는 또다른 연못의 흔적이 남아있다. 주변의 산성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다는 한우물은 지금은 서울의 서쪽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시흥동 일대에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주민들의 산책코스가 되었다.

바로 옆에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불영사라는 가정집 같은 절이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한다. 연못 주위 여기저기 널려있는 기와와 토기조각은 이곳의 옛모습을 생각해 보게 한다.

신림동에서 안양 석수동을 잇는 산복도로에서 오를 수 있으며 신림동이나 시흥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는게 편하다. 시흥네거리에서 올라가서 '호압사-장군봉-한우물'을 연결하면 나름대로 등산이라 할만하다.

임종철(서울 좋은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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