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새 역병의 시대, 위협받는 식탁 안전!
상태바
[문화광장] 새 역병의 시대, 위협받는 식탁 안전!
  • 편집국
  • 승인 2004.0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역병의 시대

새로운 천년을 맞은 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아 전 세계는 전쟁과 테러, 빈곤과 기아,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광우병과 사스, 조류 독감과 같은 새로운 질병들로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영상 매체를 통해 전쟁의 참혹상을 게임 즐기듯 한 순간의 볼거리로 전락시켜 버렸고 수 천, 수 만 마리의 오리와 닭들이 도축되는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내고 있는 언론 앞에 이런 잔혹한 이미지들이 우리의 감수성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알아채지도 못한 채 닥쳐온 현실 앞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권리와 혜택이 어떻게 다른 생명체의 고통과 관련돼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오염과 파괴 시대, 살인의 위협이 도사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한 번 앓거나 접종을 하게 되면 평생 동안 감염될 가능성이 없었던 홍역은 아이들의 몸 안에서 항체가 사라지는 덕에 홍역 재접종이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어버린 지도 오래다. 겨울이면 독감 예방 접종을 맞아야 한다고 언론과 전문가들은 예고하지만 해마다 더 강한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은 막을 길이 없고 인명 피해는 날로 커져 최대의 바이오 공격을 예견하는 경고는 끊이지 않는다.

새 질병, 인간이 뿌린 씨앗

동물마다 감염되거나 병원성을 가지는 바이러스는 각 종속에서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동물의 종을 뛰어넘어 바이러스의 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유전자의 변이를 일으켜 생존을 위한 변이를 계속하게 된다.

바이러스도 생명체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가 살아갈 수 있는 숙주가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생명을 위한 숙주를 찾아나서는 것이 이치다.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는 앞으로도 더 많은 동물들간의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을 예고하고 있고, 이것은 인간에게 더 적응력이 없고 병원성이 더 높은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 해마다 유행하는 변종 바이러스의 감염보다 더 위험하다 할 수 있다.

광우병은 초식 동물인 소가 면양과 같은 동물 사료를 먹고 뇌가 스폰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신경 장애를 일으키고 정신이 미처 돌아가는 병을 말하고, 광우병에 감염된 고기를 먹은 사람 또한 크로이츠야콥 병이라고 하는 인간 광우병에 감염되는 것을 말한다.

동물들이 제가 먹어야 할 것을 먹지 못하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 파괴되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을 향해 온 몸으로 항변하는 것을 지나 그들의 분노와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처럼 심한 공포심이 오싹하게 느껴지는 21세기다.

이렇게 역병과도 같은 새로운 질병의 탄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뿌린 씨앗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이치에 따라 더 많은 질병을 예견하고 있다. 결국 어떤 동물체도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생명체로 살아가는 한 인간마저도 살아갈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면역력 저하의 원인

여기에 현대인의 면역력 저하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일들을 재촉하거나 앞당길 수 있음을 예고하기도 한다. 현대인의 면역력의 저하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 중에 하나가 식생활의 변화와 식탁 안전의 위협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옛날과 아주 다른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다. 농약을 주며 통통하게 키운 콩나물을 “그 놈, 잘 키웠다!”’ 이야기 하고, 초식 동물인 소가 당연히 풀을 먹고 만들어낸 살덩어리를 질기고 풋내가 난다고 이야기 하며 곡물과 동물 사료를 먹이고 성장 호르몬제와 항생제가 넘쳐나는 그 고기가 연하고 부드러우며 더할 나위없이 맛있다고 말하고 있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잔뜩 주어 키운 야채, 과일은 그 안의 영양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 그 안의 중금속과 화학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더 맛있고 탐스럽고 보기 좋다는 이야기만 되뇌이고 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거친 곡식과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오며 그런 음식에 적응되어 있고 우리 몸 또한 그런 음식을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양반 문화와 빵과 스테이크라는 서구적 식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속에서 부정당하며 읽혀지지 않고 있다. 예전과 다른 새로운 음식의 탄생과 낯선 음식의 섭취라고 하는 것은 곧 면역 기능의 혹사로 이어진다.

식품 안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균과 미생물의 감염을 막아 집단 식중독의 발생을 막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일차적이거나 근본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는 항상 미생물과 더불어 살고 있으며 병원성을 가진 미생물에 대해서는 우리의 면역 체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풀어야 할 두 가지 숙제

여기에는 우리가 풀어야 할 두 가지의 숙제가 있다.
한 가지는 식품 안전에 대한 사고의 확장이며 다른 하나는 규모적 사고의 필요다. 식품 안전은 더 이상 세균 감염의 측면에서의 관리 , 감독만이 아니라 농약과 화학 비료의 사용을 제한한 상품의 표시제와 잔류 농약 검사제의 도입이나 가장 유전자 조작될 가능성이 높은 콩이나, 옥수수, 감자와 같은 식품의 자급율이 가장 낮은 상황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을 사용한 가공 식품까지 완전 표시제를 실시하는 것, 식품의 대량 유통과 가공 과정중에 사용되고 있는 향료, 색소, 방부제, 화학 조미료 등 식품 첨가물 사용의 완전 표기제와 식품속의 환경 호르몬과 중금속 검사 등을 통해 넓은 의미의 식품 안전을 이뤄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것이 좋고 아름답다는 생각과 무조건 생산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방식의 괘도 수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연이라고 하는 것은 크기고 하고 작기고 하고 힘이 세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듯이 아주 다양하게 자신의 생명력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의 발현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 싹이 땅을 뚫고 나오듯 작고 여리며 그것을 한없이 키워내기 위해 서로 보살피는 마음을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키워지며 그렇게 모든 생명체가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미덕이 되어야 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우리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적 가치가 그러하듯 교육적 차원의 문제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우리의 삶을 존재하게 하고 이어주는 하나의 사회적, 문화적 차원의 문제다. 우리는 이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의 생명체에 대한 생각들과 관계를 달리해야 하며, 음식과 관련해 나와 음식, 음식과 사회, 음식과 자연이라는 폭넓은 관심과 이해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이치 배워야

한편 전 세계의 80%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고 있는 인류의 20%에 의해 사회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이 먹고 많이 쓰고 많이 만들고 많이 버리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은 개발과 발전의 논리속에서 나와 상생과 공존과 평화의 시대로 가기 위해 재점검되어야 한다.

내가 누리고 있는 특권은 지구 저 편 누군가의 고통과 그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고 그런 누군가의 희생을 통한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오랜 시간동안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의 보장 또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온 세상의 생명체와 더불어 살고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을 배워 갔을 때만이 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김수현(식생활강사, 약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