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설해香雪海와 해당화海棠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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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설해香雪海와 해당화海棠花
  • 송학선
  • 승인 2016.05.27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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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밝 송학선의 한시산책 17] 향설해香雪海와 해당화海棠花
▲ 인왕산 팥배나무 (ⓒ 송학선)
▲ 몽산포 해당화 (ⓒ 송학선)

향설해香雪海와 해당화海棠花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부안 기생 매창梅窓(1573-1610)의 정인情人이었던 유희경劉希慶(1545~1636)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희경劉希慶은 상놈 종인데 성품이 담박淡泊하고 고아高雅하였다. 어릴 적부터 시詩와 예禮를 배웠다. (중략) 유희경이 선비들과 함께 용문산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함께 놀러간 선비들이 말 위에서 유희경에게 시를 짓게 하였다. 그 시에 이르기를

산함우기수함연山含雨氣水含烟 산은 비 기운을 머금었고 물은 안개를 머금었네

청초호변백조면靑草湖邊白鳥眠 푸른 풀 호숫가에 흰 새가 졸고 있다

로입해당화하전路入海棠花下轉 길은 ‘해당화’ 아래로 돌아드는데

만지향설락휘편滿地香雪落揮鞭 휘두르는 채찍에 땅 가득 향기로운 눈 떨어진다.

                                                   <어우야담於于野談 225>에서

로입해당화하전路入海棠花下轉 길은 해당화 아래로 돌아드는데… 이 구절의 해당화는 팥배나무 흰 꽃이 산 가득 피어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키 작은 해당화가, 게다가 여름에 피는 붉은 해당화가 바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산굽이 길에 피었을 리도 없고, ‘만지향설락滿地香雪落 땅 가득 향기로운 눈 떨어진다’라고 표현 될 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인왕산 기슭 수성동水聲洞 넓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안평대군의 비해당匪懈堂을 노래한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에도 ‘숙수해당熟垂海棠 흐드러지게 늘어진 해당화’가 나옵니다. 이 또한 팥배나무입니다. 지금도 인왕산 기슭에는 봄이면 팥배나무가 향설해香雪海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시 한 수 봅니다.

궁사宮詞 궁녀의 노래 / 성간成侃(조선朝鮮1427-1456)

의의렴막연교비依依簾幕燕交飛 하늘대는 주렴장막 제비는 엇겨 날고

일사청창수기지日射晴窓睡起遲 맑은 창에 볕 들고서야 느지막이 일어난다

급환소왜공회수急喚小娃供頮水 서둘러 시녀 불러 세숫물 들이라 하고

해당화하시춘의海棠花下試春衣 해당화 꽃 아래서 봄옷을 걸쳐본다

이 시에 나오는 ‘해당화’ 또한 팥배나무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여름에 피는 키 작은 나무 붉은 꽃 해당화로 풀면 말이 안 됩니다. 모든 번역이 무심히 해당화로 되어있어 시비를 거는 바 입니다.

향설해香雪海는 향과 꽃이 온통 눈처럼 바다를 이룬다는 소주蘇州 초산超山 매화의 별칭으로 쓰였습니다만, 우리의 봄 산에 향설해香雪海를 이루는 해당화海棠花, 팥배나무 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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