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연합‧민의련 서로의 마음을 통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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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연합‧민의련 서로의 마음을 통역하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6.07.15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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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 황자혜 선생

영화 러브액추얼리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각각 영어와 포루투갈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남녀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사랑에 빠져 각자의 언어로, 마음이 통한 것을 증명하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매우 자연스럽게. 결국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 서로의 언어를 배워 마침내 서로의 언어로 사랑을 고백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이 서로의 언어를 몰랐을 때도 그들은 같은 마음을,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극적 구성을 위해 이용된 장치고, 게다가 그들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 사이가 아닌가.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언어를 가진 나라, 단체, 사람 사이엔 ‘통역사’가 있다. 통역사들은 서로의 말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생각과 ‘마음까지도’ 통역해 주기도 한다.

▲ 인터뷰 중인 본지 김철신 편집국장(왼쪽), 황자혜 선생(오른쪽)

“그 때 내 일본어 수준은 동시통역자의 수위까지는 못 미쳤지만 적어도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그리고 양 단체가 어떤 교류를 원하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비공식 석상에서의 한‧일 양국의 단체가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진지하게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큰 기쁨 이었다”

각자 다른 언어를 가진 한국의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연합)과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이하 민의련)의 교류의 중심에는 ‘황 상’, 황자혜 선생이 있었다.

황자혜 선생이 민의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5월 ‘민의련 학술운동교류 행사’에 특별연자로 초청된 한국 녹색병원 양길승 원장의 수행통역을 맡게 되면서 부터다. ‘황 상’의 통역이 빛을 발한 건 뒤풀이 자리 같은 비공식 석상에서였다. 정말로 양 단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통역한 것이 그대로 전해져 한‧일 양 단체로부터 “앞으로 계속 황 상과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것이 이어져 벌써 12년째다.

“지금은 거의 민의련국제교류위원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물심양면으로(웃음)”

시민단체 활동으로 깨달은 소통의 중요성
통역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다

황자혜 선생은 2000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라디오 스크립터를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문화 계간지 ‘리뷰’의 편집기자로, 서울 YMCA 시청자 시민운동본부가 주관하는 미디어 제대로 보기 운동인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활동에서 얻은 사람, 단체 등 인적 네트워크 자산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풀뿌리 교류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양 국은 서로에 대해 계속 교류할 수 있는 상대인지,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서로 탐색하고 고민하는 단계였다.

“그 때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수첩 속에는 일본 시민단체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단체가 모두 들어있었다. 단체에 연락해 일본과의 교류를 제안하면 ‘당신이 통역을 한다면’ 이란 전제로 마음을 열고 만나 줬다. 그리고 그러한 교류가 쌓여갈 때마다, 나는 그 교류의 현장에서 함께 성장해 감을 느꼈다.

통역은 단순히 대화를 통역하거나 형식화된 멘트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현실사회에 놓인 두 단체의 활동과 의지를 전하고 연대의 파트너를 찾는 것이기에 통역을 통해 양쪽의 열정이 전해졌고, 스스로 성숙해나가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공식 회의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 저녁 교류회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그것이 다시 다음 행사와 연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때마다 상당히 뿌듯했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맡겨주신 민의련에 감사할 따름이다“

민의련을 통해 내가 아는 한국사회의 너머를,
제대로 된 일본사회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황자혜 선생은 민의련에서 활동하기 전까지 보건의료의 중요성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보건의료라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인지도 민의련을 통해서 배우게 됐다고 한다.

“결국 사람 사는 일,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와 정치가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을 민의련을 통해 알았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민의련 병원에서는 민의련 강령 옆에 나란히 후보자들의 의료정책과 내용을 분석한 게시물이 붙는다. 정치와 사회, 나의 건강, 개인의 행복은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의련은 바른 의료정책을 실현하는 정치가 되도록, 내가 못나 병원에 못가는 신세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차별 없는 의료 혜택을 받는, 인권과 건강권이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단체다.

민의련은 이론이나 깃발만이 아닌 실체로서, 전국 1,700여개의 크고 작은 사업소를 통해 의료 현장에 뿌리내리고, 그 지역 주민과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그 활동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화, 등산가방, 자전거…
현장에서 뛰는 민의련 선생님들

황자혜 선생이 민의련을 겪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귀티나는 깔끔한 정장, 가운, 권위적인 인상의 전형적인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그곳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민의련에서 일을 한지 얼마 안 됐을 때, 민의련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 일행들과 견학을 마치고 병원을 나오는데, 마침 원장님이 오셨다는 것이다. 저만치서 자전거를 세우고 나타난 60대 동네 어르신 같은 분…. 룩색에 운동화 차림. 알고 보니 왕진을 다녀오시는 길이었다.

어느 민의련 병원을 가도 마찬가지였다. 민의련 원장님들은 항상 운동화를 신고 자신의 병원과 지역 의료 현장에서 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민의련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민의련은 강령에서도 「우리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업소의 집단 소유를 확립해, 민주적 운영을 지향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라고 밝힌 것처럼 병원이 원장 개인의 소유물도 아니고, 지역 주민과 공동조직이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병원이기에 가능한 것인 것 같다“

실제로 민의련 병원의 의사 결정 구조는 법인의 이사회이며, 병원 내에서도 의사나 관리직만이 아니라 의사, 사무장(원무과 과장), 간호부장 3직종 회의가 있어, 병원 내 문제가 생기면 이들이 동등하게 의논하고 결정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직종간 평등을 실천하고 있다.

“민의련은 ‘팀 의료’, ‘개호 플랜’이란 이름으로 환자 한 사람의 치료부터 재활, 사회 복귀 및 개호, 요양시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총체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고, 약물을 주는 것을 넘어서 이 사람이 어떤 사회적 환경에 처했는지, 국가로부터 어떤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병원이란 곳이 단지 아픈 내가 가서 진료 받고 계산하고 약 받아 나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총체적 보건의료 서비스’로서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의료가 평등하게 제공돼야 함을,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됐다.

몇 년 전부터는 ‘무료저액진료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 이는 본인부담금 30%을 낼 수 없는 빈곤층(차상위계층) 사람들이 의료를 필요로 할 때 우선 진료를 제공하고 차후 국가로부터 이들의 진료비를 받는 것이다. 돈이 없다고 환자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고 국가가 사회복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사업이다“

아울러 민의련은 강령에서 보건의료 뿐 아니라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파괴하는 모든 전쟁 정책에 반대하고, 핵무기를 없애며 평화와 환경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선언을 지키기 위해 2007년 ‘평화학교’를 열고 의료인을, 환자를 진료하는 것 뿐 아니라 환자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를 위한 의료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회에 전국 민의련 소속 직원들 50여 명이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녹색병원 및 의료기관 방문교류, 나눔의 집과 서대문 형무소 견학 보건연합과 교류회를 가진다. 이 모든 일정을 기획하고 코디하는 것이 바로 황자혜 선생이다.

▲ 황자혜 선생

오랜 ‘소울메이트’ 보건연합과 민의련
이제는 연대의 틀을 더욱 넓힐 때!

황자혜 선생은 12년간 두 단체의 교류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눈을 돌려 연대의 테이블을 동아시아로 확대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과 ‘공식행사 참여’라는 교류형식에서 벗어나 좀 더 작고 친밀한 교류를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금 민의련은 한국 보건연합 뿐 아니라, 프랑스, 쿠바, 베트남과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끈끈한 것이 한국과의 교류다. 지금 하고 있는 한‧일 연대 테이블이 동아시아까지 확대해, 이 나라들이 함께 격고 있는 신자유주의 물결, FTA, TPP, 각종 민영화 정책 등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어도 토론이라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민의련에서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베정권의 핵무장,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드는 것에 반대해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운동이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게 ‘북핵’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 대북지원 등에 대한 지식 공유 및 지원과 같은 주제를 건치와 함께 다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식으로 또 소소한, 민의련 대표 및 관계자 한 두명을 보건연합으로 초청해 일본 의료 상황을 파악하고 토론하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도 좋을 것 같다. 항상 하는 총회나 회의, 교육의 장에서 민의련 분들을 활용(?)한 학습교류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 이날 인터뷰에는 본지 김철신 편집국장이 동행했으며, 두 사람은 민의련과 보건연합과의 교류에서 쌓인 지식과 감상을 나누고 향후 연대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등 풍성한 대화의 장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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