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과 코리아의 탈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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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과 코리아의 탈분단
  • 윤훈기
  • 승인 2005.1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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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 민족의 심금을 울리는 ‘아리랑’이라는 단어. ‘아리랑’은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하나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왔다. 물론 지금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지금 ‘대한민국’ 안의 ‘아리랑’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는 New Word가 되었다.

▲ 북의 아리랑 공연
현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아리랑’은 우리들의 어머님이 흥얼대곤 하셨던 고향의 노래보다는 북한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칭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아리랑’ 공연 관람을 마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일단 10만 여명의 배우(중복인원 포함하면 대략 6만 여명)가 출연하는 공연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공연이었을 뿐더러, 2만여 명의 인원들이 만들어내는 카드섹션과 음악, 노래, 교예, 체조, 연극 등이 어우러진 공연 내용은 남측에서는 볼 수 없는 비주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놀라움’이 파생시킨 다양한 해석들은 남측에 많은 기사거리를 제공했다. ‘아리랑’ 자체가 가지는 작품성의 우수함에 초점을 맞추어 많은 장점들을 부각시킨 기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아리랑’은 ‘북’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하나의 공연에 불과하다는 기사도 있었다.

공연을 보고 온 사람들의 표정 또한 다양했다. 너무나 멋진 공연을 보고 와서 오랫동안 그 감동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국가재정의 큰 축을 담당하는 ‘아리랑’을 관람하러 많은 사람들이 입국하면 그곳의 인민들이 고생한다고 주장하며 ‘아리랑’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아리랑’ 공연 중 ‘적군 퇴치 장면’이 남측의 보수언론을 통해 기사화되자 북측에서 이를 수용하고 그 장면을 삭제시키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물론 이 ‘삭제 해프닝’ 역시 결코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적군 퇴치 장면’은 남측에서 문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 장면을 없애라고 명령했다는 기사가 회자 되면서 상반된 시각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측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연을 과감히 수정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찬사를 보낸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광 수입의 중요성을 인지한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의 관광객 감소 우려에 대해 선택한 수세적인 결정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떠한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그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이다. 때문에 북측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는 남측에서 앞으로 결정될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번 ‘아리랑’을 계기로 남측의 많은 사람들이 북녘 땅을 밟아보았다. 이번에 밟은 북녘 땅은 금강산이나 개성과 같은 관광지역이나 공단지역이 아닌 소위 ‘혁명의 수도’로 불리는 북측의 중심 ‘평양’ 이었다.

▲ 아리랑 공연 중 문제의 한 장면
‘평양’ 관광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크다. 일단 북측에서는 그 이유가 어쨌든 남측 동포들의 평양 방문을 허용했다. 금강산, 개성과 같은 특수지역(어찌 보면 남측의 땅이라고까지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닌 ‘수도’를 남측의 불특성 다수들에게 개방해 분단의 벽이 조금은 더 허물어졌다.

또 약간의 제약들이 있기는 했지만 평양 시내, 심지어 골목길까지도 다니는 버스의 이동 경로와 차창 밖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북측 동포들의 마음 씀씀이가 ‘탈분단’의 지렛대 역할을 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아리랑’의 놀라움과 함께, 평양의 다른 문화 유적들에 대한 추억을 함께 가지고 돌아왔다. 물론 이전에도 ‘평양’을 가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달 여의 기간 동안 몇 만명의 사람들이 ‘평양’을 다녀왔다는 사실은 충분히 남북의 민족들에게 충격을 던져주었다.

6.15 선언 이후 경제 교류와 문화 교류가 활발해 졌다는 보도를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교류 당사자들만의 북측 방문이 허용되었다는 점에서 실제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적었다.

하지만 이번의 방문은 인적교류 활성화에 물꼬를 텄다. 또한 제한된 관광코스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남측 동포들이 원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매커니즘으로 운영된 것은 남북 관계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리랑’ 관람은 남북의 공통 코드를 찾아내 인적교류 활성화를 자연스럽게 꾀하려는 북측의 전략과 동북아의 평화 전선 체제를 구축하고 최근에 많이 부각되는 통일 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측의 요구가 맞아 떨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우리 남북의 모든 동포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새로운 사고를 지녀야만 할 것이다.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노력들과 상대의 입장 안에서 또 다른 우리 자신들을 투영할 수 있는 시각의 확대가 ‘탈분단’ 시대에 요구되는 패러다임일 것이다.

통일은 어쩌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고,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현상일 수도 있다. 분단 50년은 우리에게 많은 이질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자신들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교묘히 이용하는 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턴가 수없이 탄생된 통일 정책의 각가지 이론들은 우리 생활과는 별로 연관성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만 보였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람들에게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거대한 목표로 자리매김 할 수가 있다.

때문에 이러한 부담감은 오히려 ‘통일’에 더더욱 반발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니 ‘연합제’니 하는 통일 이론은 이제 흥미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남과 북 모두 조그만한 목표부터 실현한다면 ‘통일’은 언젠가 완성될 것이다. ‘분단’의 고착화에 대항하는 ‘탈분단’의 목표가 어쩌면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는 목표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를 이루려는 거대한 목표보다는 ‘둘’이 아니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어떨까? ‘아리랑’을 둘이 아니기 위해 발버둥치는 또 하나의 요소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과연 나만의 욕심일까?

남과 북은 이제 ‘탈분단’ 시대를 준비하는 ‘아리랑’ 민족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윤훈기(연세대 통일대학원 석사과정, 윤훈기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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