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과 변경이 가능한 생명: 백 투 더 퓨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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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과 변경이 가능한 생명: 백 투 더 퓨쳐2
  • 강신익
  • 승인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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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과 줄기세포 연구의 담론구조④

극미인은 정자 속에 들어있으며 달걀이나 동물의 분뇨, 처녀막과 같은 것들은 정자 속의 작은 인간이 발생하는데 필요한 '조건'에 불과하다. 중심과 주변, 결정적 요인과 부차적 요인의 구분이 뚜렷하다.

줄기세포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뼈와 피부, 달걀의 흰자와 처녀막 등의 조건은 핵을 제거한 인간의 난자로 대체되었고 동물의 거름이라는 환경은 영양세포를 함유한 페트리 접시로 대체되었으며 극미인을 담고 있는 정자는 다 자란 체세포의 핵으로 대체되었지만, 각각에게 부여된 역할의 구도는 동일하다.

정자와 체세포의 핵은 인간의 형질을 '결정'하고 뼈, 피부, 흰자, 처녀막과 핵을 제거한 난자는 발생을 '조장'하며 동물의 거름과 페트리 접시의 영양세포는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러한 사유양식에서 줄기세포 배양의 성공이라는 사건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운명에 이르는 길을 발견한 것이다. 배아의 운명은 이식된 체세포의 핵 속에 이미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연구 결과에 환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을 되돌려 이렇게 결정되어 있는 운명을 반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성된 배아에서 발생시킨 줄기세포의 운명은 인간의 욕망에 따라 변경 가능하다고 전제된다.

물론 핵이식을 통해 생산된 줄기세포를 특정 장기로 분화시키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유전자 조작 없이도 특정 장기를 재생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줄기세포를 특정 장기로 분화시키는 조건(유전자 또는 세포내 단백질)을 찾아내고 그 스위치를 열고 닫는 조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체세포핵이식을 통한 줄기세포 생산은 넓은 의미의 유전자 조작을 전제로 한 기술이다. 과거로 달려가 미래에 일어나도록 예정된 사건을 변경시키는 공상과학 영화를 연상시킨다.

 백 투더 퓨쳐(Back to the Future)!

이미 많은 포유동물의 복제가 성공한 만큼 복제의 중간단계에 있는 세포를 이용하는 이 기술의 성공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지나친 패배주의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술이 성공하려면 반복과 변경이 가능한 운명이라는 모순적 논리구조를 극복하든지 이 기술 자체가 뿌리를 두고 있는 사유의 틀을 해체하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틀을 짜야만 한다.

'변경 가능한 운명'이라는 구조를 받아들이는 것이 크게 상식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어떤 악조건이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운명이 유전자 속에 '들어'있다고 믿는데 있다.

기존의 주도적 사유 틀에서 그러한 포함관계는 기계적 결정론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포의 핵 속에 들어있는 유전체의 일정 부분인 유전자가 세포의 미래 나아가서는 그 유기체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동안 유전학자들은 그 결정의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 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는데, 그 방식은 주로 유기체와 세포의 기능을 환원 가능한 최소 단위로 분해하고 분석하는 요소환원주의였다.

세포의 핵심적 부분인 유전자가 유기체 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환원적 결정론이 바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포함한 생명공학의 핵심적 사유 틀이었다.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 결정된 운명은 모두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명공학은 그렇게 결정된 운명을 인위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변경 가능한 운명이란 명제는 그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강신익(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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