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박정희 신화를 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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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박정희 신화를 태우다!
  • 송필경
  • 승인 2016.12.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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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송필경 논설위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깃발 아래 모인 건치 회원들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나라의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보통사람의 위상이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떼가 이 가세뜨(Ortega y Gasset; 1883-1955)의 명언이다. 2016년 12월 3일, 역겨운 정치에 분노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밝힌 230만 개의 촛불 민심을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할 말은 달리 찾을 수 없으리라.

작은 종이컵에서 타오른 셀 수 없이 많은 촛불은 12월 9일에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통과하는 데 결정적 압력을 가했다. 명백한 부정선거로 겨우 당선한 대통령의 얼토당토않은 국정농단을 보통사람들이 준엄하게 직접 꾸짖은 셈이다.

이번 촛불 민심의 성과가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남긴 발자취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박정희 신화를 한 방에 날린 것으로 생각한다.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신화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현대의 신화란 이데올로기적 편견이라 할 수 있다. 독재자와 추종자들은 이런 신화적 사유를 비이성적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반민족 친일 전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비이성적 반통일 반공 정책을 강압함으로써 남한 사회에 극단적 분열과 가혹한 대립을 낳았다. 박정희를 흠모하는 추종자는 친일 반공 반통일 세력들이었다.

그들은 박정희를 ‘한강의 기적’이란 신화의 영웅으로 만들어, 과거 반민족적 기회주의 전력과 비도덕적 독재 통치의 온갖 악행을 덮고 신화로 도배질했다. 추종자는 박정희 신화의 그늘에서 자신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합리화 하거나, 신화의 편견에 마비돼 박정희를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1987년의 6·10항쟁은 몇몇 젊은이의 목숨과 전쟁터와 다름없었던 최루탄이 자욱했던 거리 투쟁의 대가로 전두환의 항복문서인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위대한 투쟁은 어리석은 야당의 분열로 혐오스러운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천추의 한이었던 분열은 결국 1990년에 ‘3당 합당’이란 기묘한 정치 야합을 낳아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정치 왜곡의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했다.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역시 ‘DJP 연합’이란 기묘한 체제로 출발했지만, 민족적 염원인 남북화해의 주춧돌을 놓음으로써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그나마 옅게 만들었다. ‘참여 정부’의 노무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기득권 주변부 인물로서 최고 권력에 올랐다. 노무현은 이른바 민주주의란 의미에 가장 합당한 인물이었음에도, 완고한 기득권의 견제와 질투를 불러일으켜 재임 중에 탄핵을 당하고, 퇴임 뒤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역시 시행착오적인 결정적 실수가 몇 있었다. 이를 빌미 삼아 반동적 수구 집단은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경제개발 지상주의란 허울을 쓴 ‘박정희 신화’를 불러냈다. 이 현대판 신화는 진보 진영의 어떠한 논리로도 어찌할 수 없는 맹목적 신념이고 광신적 편견이었다. ‘참여 정부’ 이후 박정희 신화를 후광으로 삼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가 연속으로 들어섰다. 이명박은 경제적 이득을 교묘하게 갈취하기 위해 4대강을 마구 파헤쳤고, 박근혜는 자신의 별명 ‘칠푼이’답게 역겨운 국정농단을 저질렀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이후 약 60년간 혁명의 공화정과 반혁명의 왕정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1848년 혁명이 실패하자 혁명에 염증을 느낀 국민은 27년 전 1821년에 죽은 독재자 ‘나폴레옹’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나폴레옹의 조카였던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은 '나폴레옹주의의 계승자'란 구호로 농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했다.

루이는 곧 공화정을 폐지하고 왕정을 복고 시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무능한 통치자였다. 프랑스 민중은 루이가 실각한 뒤에 나폴레옹의 신화를 그리워한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났고, 다시는 그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무능한 칠푼이’ 나폴레옹 3세와 나폴레옹 신화를 비웃었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치욕은 워털루 전투 패배도 아니고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된 것도 아니다. 어릿광대가 그의 이름을 빌려 권좌에 오른 일이다.”

프랑스 국민에게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를 끊어버린 계기를 마련한 게 그의 조카였듯이, 박정희 신화의 거짓을 만천하에 드러낼 사람은 오직 그의 딸 박근혜일 뿐이라고 나는 미리 공언했다.

부정선거 의혹에도 어쨌든 박근혜는 민주적 선거 절차로 당선했다. 이는 자신의 능력이라기보다 신화로 도배질한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권좌에 오른 셈이다. 촛불민심은 4년 내내 역겨운 국정농단으로 ‘민주주의의 위엄’을 훼손한 독재자의 딸을 준엄하게 심판했다.

이제 ‘박정희 신화’에 편승해 우리 사회의 양심 세력을 증오와 편협으로 몰아간 무리도 박근혜와 더불어 역사에서 지워버려야 하는 게 촛불 민심의 명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이 손에 쥔 셀 수 없이 많은 촛불이 민주주의의 위엄을 되찾아 태양보다 찬란히 빛날 그날까지,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범어연세치과,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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