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설 주인공 - 숨은 영웅의 휴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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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설 주인공 - 숨은 영웅의 휴머니즘
  • 윤훈기
  • 승인 2005.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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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이야기할 때는 참 조심스럽다. 분명히 좋은 점도 없지 않을진대 잘못 표현했다가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세상을 한쪽 눈으로만 바라보도록 강제하는 법이지만, "악법도 법"인 것이다.

 남북한의 사회체제원리와 통치원리는 많이 다르다. 만약 공통점이 많은 것을 찾으라면 그 중 하나는 의료시스템일런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생화학적 반응은 사회주의인간이나 자본주의인간에서나 똑같을 테니까(대뇌피질의 신경전달물질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북한에도 교육과 직업선택 그리고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다. 또한 마찬가지로 북한의사들도 시골보다는 도시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감동적인 소설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스코틀랜드작가 A.J.크로닌의 「성채The Citadel」이다. 이번 학기 북한문학론 수업에서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북한소설 「먼 산촌에서」를 읽었는데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이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되어 간략히 비교해본다.

<성채 designtimesp=27922>는 주인공 안드레아맨슨이 글래스고의과대학을 갓 졸업하여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나 南웨일즈의 탄광 마을인 드라이네피의 어떤 開院醫의 代診의사로 부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젊은 주인공은 착한 마음씨, 과학적인 탐구정신, 창의적인 발상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의사로서의 인도주의적 낭만주의의 꿈을 안고 인생의 첫발을 내디딘 주인공은 무지와 몽매, 탐욕과 이기심 게다가 허영과 무기력 등의 추악한 인간본성과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젊은 맨슨은 몇 번씩 절망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치열한 휴머니즘과 과학적진리에 대한 구도정신으로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의사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성숙해나간다. 그는 마치 바빌론의 견고한 성채를 맨손으로 공격하는 전사와도 같다.

그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절망했을 때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소수의 착한 마음씨였다. 학문적성취로 인하여 그는 런던의 유명한 의사가 되고 한 때 물질적인 욕망 앞에 무릎 꿇기도 하지만 그는 잃어버렸던 순수함을 되찾고는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뜻이 서로 맞는 몇 명의 의사들과 시골로 내려가는 것으로 작가는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성채 designtimesp=27924>에서 작가는 의사와 의료체계의 이상적인 모범을 제시하려고 한다. 주인공 안드레아맨슨의 내면은 바로 A.J.크로닌의 자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 소설은 크로닌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든 서사가 다 크로닌이 경험했던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 P> 하지만 20세기 초반 자본주의가 한창 무르익어가는 영국의 부패한 의료체계를 착한 마음씨를 지닌 주인공을 통하여 실랄하게 비판하며 현대의학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보건소에 부임한 청년의사와 같은 동네 초등학교 여선생님과의 사랑! 안드레아맨슨은 드라이네피의 한 초등학교 여교사 크리스틴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마찬가지로 <먼 산촌에서 designtimesp= 27927>의주인공 의사 박영만은 학송리 분교의 착한 여교사 조경숙을 안해로 맞아 들인다. 그 두 여인들은 전형적인 내조형 안해로 남편들이 의사로 건실하게 사는 것을 돕는다.

사회주의국가의 의사 박영만은 체제에 저항할 정도로 당돌하지는 않다. 반면 안드레아맨슨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데 좀 과격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드라이네피에 콜레라가 만연하자 원인이 더러운 하수도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동료의사와 함께 그 하수도를 모두 폭파해버린다.

물론 발각되면 의사면허 박탈은 물론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행위였지만 그것이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었기에 거사를 행하고 만다. 질병을 진단하고 관리하는데서 더 근본적인 관점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박영만은 자신이 도회지로 나가서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새로운 고향인 학송리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애인형 동지인 김진희 의사는 박영만의 고귀한 결심을 멀리하고 떠나가 버린다.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박영만은 그것을 미래의 아름다운 조국 건설을 위한 동기로 삼는다.

그리고 몇 번이고 학송리를 떠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은 새로운 고향을 선택하며 학송리병원을 시설과 인력에서 군병원 이상가는 좋은 병원으로 만들어 나간다. 그가 학송리에 남는 것에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리당비서 정경호 등 여러 동지들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씨였다.

반면 닥터맨슨은 자신의 학문적인 업적이 유명해지자 웨일즈를 떠나 런던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 척박한 탄광촌에서 그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탐욕을 수 없이 목격했기에 이제 어벨라러우는 그가 있을 곳이 더 이상 아니었다.

<먼 산촌에서 designtimesp=27936>와 <성채 designtimesp=27937> 모두에서 기적같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이어진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최영선 동무를 살려내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모습은 정말 눈물나도록 아름답다. 자본주의체제의 의사라면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 당연히 큰 병원으로 보낸다.

< P> 하지만 의사 박영만은 환자의 이송이 오히려 위험할 것으로 생각해 자신이 책임을 떠 맏는다. 닥터 맨슨은 무너진 탄광에 깔린 사람을 구출하기 위하여 언제 더 무너질지 모르는 갱도로 들어가 응급수술을 한다. 자신의 위험을 무릎 쓰고 의사의 고귀한 본분을 지켜나가는 두 의사는 아름다웠다. " 爲民獻身 醫師本分 "이다.

런던에서 개원한 닥터 맨슨은 더 조직적이고 제도적으로 굳어져 있는 의료계의 취부를 목격하게 된다.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하기도 하지만 적당히 하면 크게 얻을 수 있는 물질적 富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고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사고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동료의사의 뻔뻔함에 치가 떨린 그는 다시 本來의 자기로 돌아 온다.

그리고 착한 마음씨를 회복해 새로운 고향을 향해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또한 의사 박영만의 인민에 대한 헌신은 사람들의 마음씨를 아름답게 변모시켰다. 20년만에 다시 학송리에 오게 된 과거의 연인 김진희 의사의 마음이 다시 한번 그 옛날의 따스함에 젖게 하는 것은 박영만의 그 변함없는 착한 마음씨였다.

1980년대 북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영웅성에 대한 비판과 생활의 재발견이다. 특히 이시기에 숨은 영웅을 강조하는 것은 보통의 일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재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문학 경향과는 현저한 차이를 가져다 주었으며 이는 문학으로부터 떨어졌던 독자들을 다시 되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에 들어 북한 사회와 문학 전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숨은 영웅이란 자기가 처한 장소에서 묵묵히 자기의 일을 충직하게 하여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인물들을 가리킨다. 과거에는 이러한 인물들이 거의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여 무시당해 왔지만 이 시기에 숨은 영웅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큰 관심거리로 되었다.

한철 아름답게 피었다가 하루아침에 스러지는 화려한 종류의 꽃이 아니라 소박하고 겸허한 들국화와 같은 존재로 숨은 영웅을 그린 작품들은 그 동안 화려함에 골몰하여 이 소박함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강한 반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윤훈기(연세대 통일대학원 석사과정, 윤훈기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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