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바라보기] 고난 - 그 숭고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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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바라보기] 고난 - 그 숭고한 의미
  • 윤훈기
  • 승인 2006.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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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대부분 나라의 역사에는 전쟁과 분열 그리고 통합이라는 보편적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한반도와 매우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아일랜드와 베트남이다.

 유럽 서쪽 끝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무려 800년 동안이나 받았다. 식민모국으로서 영국의 압제와 착취는 가혹하기로 유명했다. 대부분의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지주의 소작농이었다 ( 톰쿠르즈와 니콜키드만이 주연한 영화 Far and Away를 본다면 그들 간의 착취와 주종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영국의 잘못된 제국주의정책으로 인하여 아일랜드에서는 19세기 중엽에 커다란 재앙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감자잎마름병에 의한 흉작으로 150만 명이 굶어 죽어가야 했던 대기근GREAT FAMINE을 겪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다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고향을 등지고 미국으로 호주로 떠나야만 했다. 떠나는 이들의 그 광경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훗날의 작가 제임스조이스는 “떠나는 者들의 대서양은 찢어지는 눈물의 바다”라고 묘사했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본토에 사는 인구는 800만에서 300만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모국을 떠난 사람들의 많은 후손들은 세계적인 명가문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의 영문학의 주류는 아일랜드의 작가들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주어진 고난을 극복해나가는 강인한 정신은 결국 조국의 품에 독립과 자유를 안겨주게 된다.

 아일랜드가 그 혹독한 고통을 겪고 있을 즈음의 1858년 프랑스제국은 인도차이나반도를 무력 침공하여 식민화한다. 하지만 2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프랑스는 자국이 독일의 압제하에 놓이게 되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우선 물러나게 된다. 베트남에서는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는 듯 했지만 곧이는 일본의 침공으로 인해 다시금 식민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군량미 조달을 위해 1943~1945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제의 잔인한 수탈로 인해 죄 없는 베트남양민 200만 명이 餓死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대기근 당시에 베트남인민들은 호치민의 영도아래 서로 굳게 단결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동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베트남은 연이은 프랑스 및 미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으며 비로소 117년 동안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서양의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북한의 사정도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사회주의형제국가들로부터의 원조가 끊어지는 등 여러 가지 내외적 원인에 의한 체제위기를 느낀 북한은 나진.선봉에 경제특구를 개발하는 등 변화를 추구하지만 강대국들의 방해 등으로 인해 그 성과는 아주 미비하였다. 게다가 1994년에 김일성주석이 사망하고 연이은 자연재해와 흉작이 반도의 북반부를 휩쓸기 시작하자 북한에서도 기아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어서 유사 이래 한반도에서 최악의 기근이 발생하는데 대략 200만 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1995년도부터 시작된 이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기 ARDUOUS MARCH라고 부른다. 비록 이 고통의 시간이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공식적으로 끝나갔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아픔은 우리민족의 가슴속에 커다란 상처를 남겨 놓았을 것이다.

 나타나는 현상은 조금씩 달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같은 경우는 많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참화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그 뿌리에는 제국주의의 이기심이 반드시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점령지에서 그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은 제국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식민지 확장에만 열을 올렸고, 일본 역시 자신들의 제국적 야망을 달성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인도주의에는 철저히 무관심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북에서 수많은 동포형제들이 고통을 겪고 있어도 갖은 이유를 붙여서 도와주는 것에 인색했다. 모순되게도 당시 북한을 가장 많이 도와준 나라는 미국사람들이었다.

얼마 전에 토니블레어 영국총리는 ‘150년전 아일랜드가 기아의 고통에 빠져 있었을 때 도와주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아마도 오래지 않아 일본도 자신들의 제국주의 만행에 대하여 마음속 깊이 뉘우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하물며 피를 나눈 형제자매가 어려워 할 때는 이유를 따지지 말고 도와줄 일이다. 나중에 그 어렵던 형제가 잘 살게 되면 그 때 가서 어떻게 보려고 하는가? 음지가 양지되는 법이다. 헤어졌던 우리민족이 다시 하나 되는 날에 북의 동포들이 당시를 회상하며 섭섭해 한다면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현재에도 남한은 물질적으로 넘쳐나고 북은 아주 부족한 상태이다. 균형을 잡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에 집착하는 것보다 미래를 응시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이다.

호치민의 옥중일기 한 구절이 기억난다.
“절굿공이 아래서 짓이겨지는 쌀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러나 수없이 두들김을 당한 다음에는 목화처럼 하얗게 쏟아진다.
이 세상 인간사도 때론 이와 같아서, 고난과 역경이 사람을 빛나는 玉으로 바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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