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샘 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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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샘 말론
  • 이상윤
  • 승인 2006.0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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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지역신문에 샘 말론(Sam Malone)이라는 35세의 흑인 정치인 기사가 났다.

▲ Sam Malone
전직 신시내티 시의회 의원인 샘 말론의 재판이 열렸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재판을 받는 기사는 여기서도 심심치 않게 나는데 대부분은 수뢰와 관련한 것들이다.

심지어는 미국 27대 대통령인 윌리암 태프트의 손자이자 현직 오하이오 주지사인 밥 태프트도 수뢰혐의로 곤욕을 치루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색다른 점은 이 샘 말론의 기사는 부패스캔들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체벌과 관련한 것이다.

내용인 즉슨, 말론의 14살 먹은 아들이 지난해 5월 소풍을 가서 선생님을 무시하는(disrespecting) 행동을 보였는데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말론이 집에 와서 아들을 때린 것이다. 당시에는 현직 시의원이었던 말론은 그 일이 있은 다음날 옆집 사는 소년의 신고에 의해 체포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로서 판사앞에서 증언하였는데, 검사측과 아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때렸는가를 중점적으로 묘사하면서 폭력성을 부각하는 한편, 아버지와 그의 변호사는 왜 때렸는가 하는 동기를 주로 표현하려 하였다.

아들은 증언하기를 말론이 그 소풍사건이 있은 날 집에 와서 자신을 속옷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긴 후에 2층에서 허리띠로 때렸는데 자신이 쓰러진 후에도 구타를 계속하였다고 한 반면, 말론은 자기는 엉덩이를 겨냥했는데 아들이 움직이면서 자신의 팔을 붙잡는 등 반항하였기 때문에 엉덩이 이외의 부분을 때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경우는 놀기를 못하게 하거나 반성문을 쓰게하는 것만으로는 아들에 대한 벌로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고 하며 자신은 체벌하는 내내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들이 법정에서 아버지의 위법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구타상황에 대한 자세한 증언에 나서는 모습도 가관이지만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 행동들에 대하여 변명하고 방어하여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딱하기 짝이 없다.

말론은 법정증언에서 자신은 아들에게 겁을 줌으로써 아들이 자신이 한 짓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길 바랬고, 그러한 행동이 부적절한 것이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흑인 청소년(black teenager)을 기르는 것은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는 (흑인 청소년인 아들에게) 기본적인 것들부터 가르쳐야 하고, 사회에 구걸이나 하는 존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쟁력있게 만들기 위해서 어려움에 적응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한다.

특히 교육을 잘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말론은 이어지는 진술에서 어떤 아이들은 학교교육을 멀리하고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 나서고, 마약을 사고팔다가, 결국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면서, 그들은 어떤 길이 더 나은 것인지 잘 구분을 못하지만 우리는 꾸준히 옮은 것에 대하여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론은 전에도 3-4차례정도 아들을 때린적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아들이 8학년에서 유급을 당할 것 같다는 가정통신문에 자신의 서명을 위조해 학교에 가져갔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하니 흑인으로 태어나 흑인동네에서 자라면서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을 통해 전형적인 흑인들의 생활사를 수도 없이 보아왔을 말론의 좌절감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이 간다.

미국의 공교육 과정이 상급학교진학을 위한 지식전수는 물론 고등학교 졸업후에 독립된 성인으로서 스스로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형성해주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앞서 하였다.

얼마전 오하이오 주지사 태프트가 고등학교 교육을 더 어렵게 하겠다며 새로운 고등학교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고등학교 졸업장이 너무나 많은 경우에 성공으로 가는 패스포트라기보다는 실패한 전망(For too many, a high school diploma is not a passport to success, but rather a broken promise)’이라고 규정할 정도이다.

말론사건에 대한 지역신문의 관심은 지역 명사인 말론이 과연 어떤 판결을 받을까 하는데 있지만 나는 여기서 맹목적적인 미국식 인권제도의 모순점을 본다.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은 자녀를 보호해주기 위한 것인데 결국 누가 자녀를 보호해 주는가? 명약관화한 자식의 어두운 미래에 걱정을 느끼며 매를 드는 아버지인가 아니면 그 아버지의 손에서 매를 빼앗을 뿐 그 다음에는 철없는 불량청소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미국 사회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지난해 4월인가 5월인가 텔레비전에서 본 뉴스의 한장면이 떠오른다. 패쇄회로에 녹화된 것을 방영하는 듯한 뉴스의 장면은 어느 방에 – 아마도 교장실쯤 되는 듯- 선생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과 대여섯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서로 자신의 행동을 계속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선생님인 듯한 여성은 계속해서 그만하라고, 앉으라고, 멈추라고 이야기 하지만 고성을 지르거나 손을 써서 아이를 붙잡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반면 아이는 계속해서 의자에 올라가거나 책상위로 올라가고, 심지어는 벽에 걸린 액자에 손을 대기도 한다. 아마도 아이가 교실에서 말을 안들어 교장실로 벌을 받으러 온 것 같은 상황으로 짐작되는데 교장실에서도 아이가 통제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잠시후 그 여성이 경찰을 부르고 두명의 경찰이 등장하여 아이에게 수갑을 채워 데려가는 것으로 장면은 끝난다.

미국교육은 확실히 애들을 편하게 해준다.

욕도 없고 때리는 것도 없고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없다. 하지만 평가는 확실하게 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아무리 어린시절에 받은 것이라도 피부에 새겨진 낙인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며 그 사람이 평가받는데 한 몫을 한다. 그래서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말론은 내일이면 늦으리 하며 아들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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