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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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 커밍아웃
  • 강재선
  • 승인 2006.03.10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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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은 개인적으로 좋아라 하는 감독 중 하나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모두 다 본 건 아니지만)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정도는 봐 줬다. 독특한 유머가 좋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치밀한 구성능력이 좋고, 미묘한 감성도 좋다.

흡혈귀와 동성애를 묶어 코드화한 ‘커밍아웃’은 감독의 초기작으로, 마구 권하고 싶은 영화까지는 아니지만 감독의 특성이 드러나는 매력적인 단편영화다.

출시된 비디오는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다시 봐도 역시 유치하고 장난 같은)와 장진 감독의 ‘극단적 하루’가 함께 들어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영화 보는 것이 다반사지만, 한국영화에 인터넷과 디지털이라는 매체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2000년 당시, 인터넷 영화 상영이라고 딴에는 떠들썩했던 영화들이다.

-흡혈귀인 주인공이 아는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머뭇거리던 주인공은 조심스레 자신의 비밀을 고백한다.

나, 사실은 흡혈귀야.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어머, 너도 흡혈귀였구나. 우리 삼촌도 흡혈귀잖아. 영국에 흡혈귀들만 모여 사는 동네가 있어서 거기 간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너도 이민가야겠네. 나 바빠서 이만 끊는다, 안녕. 뚜뚜뚜...

흡혈귀라는 존재가 난리법석 떨 일이 아니다. 프란체스카 일족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 정말로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난, 술 취한 무더운 여름밤 공중전화 박스 같은 곳에서 그들에게 목을 물렸을 수도 있는데, 잠시 정신을 놓아버린 후 모기에게 물린 걸로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그래서 매복치 발치시 흥건한 블리딩에 흥분하는 걸 수도 있다). 뭐 이런 식의 내용을 가진 영화다. ‘비호감’을 굳이 ‘호감’으로 바꾸려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비호감’일 건 또 뭐냐는.

-살아가면서 모든 걸 투명하게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소원해져서, 삶의 영역이 좁아져서, 닳고 닳아 때가 낀 지금 모습에 예전 지인들이 놀랄까봐, 기타 등등.

그러나 변명을 접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두려워서’겠다. 나 또한 언젠가 지나치는 농담처럼 누군가의 스캔들을 쉽게 이야기했듯이, 나로부터 흘러나온 나의 고백이 누군가에게 이르러서는 한낱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내 사연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고,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 맘은 그런데, 세상에 비밀은 없고,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몇 마디로 정리되어지는 객관적인 내 모습. 그게 두려운 걸 거다. 세상의 언저리에서 외치는 크고 작은 커밍아웃들이 외롭지 않게 격려해주고 싶은 이유다.

-봄밤의 기운이 상큼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항상 받아들여주었던, 나로 인해 당황했던 내 인생의 벗들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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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기 2006-03-09 22:38:01
커밍아웃은 취향이 아니었지만

다찌마와 리는 재미있어서 몇 번을 봤습니다. ^^;

강재선 2006-03-08 13:59:02
미성년자와 보지 마세요.
막판에 좀 마이 에로틱해서 애기들이 혼란스러워할 거에욤.

강재선 2006-03-08 12:54:17
적당한 사진 찾기가 어려워요. 다시 사진 올리겠슴돠.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 갔다가 우연찮게 눈에 들어와 다시 본 영화인데..
다찌마와 리..진짜 유치해요..어우~~ ㅎㅎ
안 떴을 때의 이윤성, 곱네요ㅋ 안 떴을 때의 신하균도 나오네요. 그땐 몰랐는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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