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건강권 침해 저지 최전선에 서야
상태바
의사, 건강권 침해 저지 최전선에 서야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7.11.27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의협 국제학술대회서 일본‧영국‧필리핀 등 의료현황 밝혀…신자유주의‧민영화 저지 ‘최우선’

 

"사람의 건강이 정치·경제·사회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우리 의사들은 기본적 인권인 건강권을 침해하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불평등의 시대, 건강불평등과 의사의 역할'을 주제로 지난 21일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펼쳐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

이날 대회에서는 ▲인의협 우석균 공동대표의 ‘인의협 30년을 통해서 본 한국의 보건의료운동과 그 과제’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 Yanagisawa Hukashi 부회장의 ‘일본의 격차와 평등, 우리는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People's Health  Movement(이하 PHM) Edelina P. Dela Paz 교수(마닐라대학교 의과대학)의 ‘Health Inequality and the Physician's Role' ▲영국 Socialist Health Association(이하 SHA) Brian Fisher 부회장과 Jean Hardiman Smith 사무총장의 ‘Austerity and Privation -Threats to The NHS' 발제로 꾸려졌다.

특히 발제자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의료민영화가 전세계적 건강불평등의 확대원인이라고 지목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공의료를 지키고 질병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다루기 위해 대중과의 연대는 물론 그 최전선에 의사가 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평화주의’ 기초로 불평등에 저항한다

민의련 야나기사와 후카시 부회장은 이날 발제에서 일본의 불평등 실태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민의련의 노력과 과제에 대해 밝혔다.

그는 일본의 건강불평등의 원인을 1990년대 후반 시작된 신자유주의, 그에 따른 국민의 삶과 인권을 도외시하고 부유층을 우대하는 정책의 추진, 미국의 압력에 따른 군비확장, 평화헌법 개악 등을 지목했다.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야나기사와 후카시 부회장

야나기사와 부회장은 “일본헌법 제13조와 25조에서는 권리로서의 사회보장이 돼있었지만, 2013년 사회보장법에 ‘개인의 책임’을 명기해 누더기가 됐고, 전력 불보유를 천명한 헌법 9조 역시 2015년 안전보장법이 성립되면서 집단적 자위권이 명목상 승인됐다”며 “이로 인해 노동자의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 고령자의 연금 삭감, 생활보호대상자 수급비 삭감, 의료비 억제 정책으로 부유층을 제외한 전계층에서 빈곤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본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이며, 특히 편부모 가정의 빈곤율은 50%를 상회할 뿐아니라 2017년 유니세프 최신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어린이 빈곤은 37개국 중 23위를, 청년 자살율은 37개국 중 26위를 차지했다”며 “2000년대 전세대의 10%가 연수입 300만 엔 이하를 기록했는데, 연수입 300만 엔은 결혼가능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저출산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야나기사와 부회장은 지난 10월 22일 진행된 일본 총선결과 보수개혁정당을 포함한 집권여당이 전체의석의 80%를, 야당은 60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일본의 의료시스템은 혼합진료금지를 원칙으로 운영됐는데, 정부는 선택요양제도를 통해 이 이 원칙을 허물고 있다”며 “아베노믹스 정책의 방향성은 비보험진료를 통해 국가보험제도를 무너뜨리고 의료산업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민의련을 비롯한 시민사회연합이 일본 공산당‧자유당‧사민당 등 3개 야당과 공통정책을 수립하고,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정치 변화의 세력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다짐키도 했다.

야나기사와 부회장은 “이들 3개 야당과 헌법 9조 개정 반대, 특정비밀보장법, 안보법제, 공모죄법 등의 백지화, 원전제로 등 환경‧평화와 전쟁반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며 “어린이와 약자를 위한 보육‧교육‧고용 등 지속가능한 정책, LGBT 차별 해결, 여성 고용차별 및 임금 격차 철폐 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고 전했다.

특히 야나기사와 부회장은 민의련 운동의 중심이 ‘평화주의’에 있다며, 무차별 평등의료라는 민의련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구성원들에게 헌법을 교육하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입안 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평화주의는 생명을 지키는 정책 추진의 전제조건”이라며 “민의련 조직원들은 헌법을 배우는 ‘헌법학습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가두선전, 서명운동도 벌여왔으며, 조직목표로서 무차별 평등의료의 실천, 헌법 정신인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하며, 의료 그 자체를 위한 병원운영을 환자, 지역주민, 국민과의 공동행위로 인식하고 건강증진 운동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 질병의 환경으로 환자를 돌려보낼 것인가?

이어 PHM의 Edelina P. Dela Paz 교수는 27억에 달하는 전세계의 빈곤인구, 기아에 시달리는 8억 명, 상위 1%가 전세계 부의 50%를 차지하는 상황을 들었다. 그러면서 필리핀의 상황을 통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반추해 보자고 제안했다.

People's Health Movement의 Edelina P. Dela Paz 교수

그는 “빈곤, 기아, 실업의 문제는 다양한 통계치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부자들은 경제를 마구 휘두를 뿐 아니라 생태계 역시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데 사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정부의 정책과, 그 정책이 누굴 위한 것인지 개발은 누굴 위한 것인지 고민해야할 때”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Dela Paz 교수는 기본적 인권이자 사회적 목표로서의 ‘건강’, 주민참여 권리, 1차보건의료의 중요성을 골자로 1978년 제정된 알마아타선언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건강이 상품처럼 거래되는 의료‘민영화’가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그는 “모든 사람의 건강상태는 정치‧사회‧경제‧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음에도 급진적 세계화, 신자유주의 하에서 공공보건과 복지에 대한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며 “필리핀의 경우도 IMF, 세계은행의 압력으로 사회 프로그램 부분의 지출 삭감, 보건의료분야의 민영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며, 지금도 공공병원 환자 중 10%~15%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여기에 필리핀 정부는 병원의 현대화란 명목으로 기업을 참여시켰다”라며 “결국 기업은 투자이익금을 남기려 할 것이기 때문에 이름만 공공병원인 것이며, 우리는 이 ‘현대화’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민관협력의 민영화 작업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그는 이런 현실에서 의사들에게 “눈을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시해야 한다”며 “환자를 볼 때 그의 질병 뿐 아니라 그의 가정, 그의 가족, 그의 처한 현실을 보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또 가능한지 분석하고, 다분히 정치적인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실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Dela Paz 교수는 “우리는 한 사회의 평등과 정의가 얼마나 실현되는지, 정치‧경제적 관심보다 건강을 더 높이 생각해야 한다”며 “의사로서 질병을 치료한들, 똑같은 환경으로 환자를 돌려보낸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0년 창립된 PHM의 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PHM은 전세계 70개국이 가입된 단체로 개별활동 네트워크다. 이들은 "정치는 대규모의 의학이다"라고 말한 병리학자 Rudolph virchow 교수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중건강헌장을 만들었으며, ▲회원국 민중 건강 투쟁 연대 ▲건강에 대한 사회적결정요인에 대한 위원회 운영 ▲지역단위의 단체 연합‧교육 등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건강정책에 저항하는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영국, 보건‧복지 긴축재정…사망율 높였다

SHA의 부회장이자 의사인 Brian Fisher도 영국 국민건강서비스(이하 NHS)역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건강권 보장범위의 축소, 보건서비스의 분화, 복지 축소 등 누더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Fisher 부회장은 “과거 NHS에서는 보건서비스에 주택, 교육, 지방정부, 사회 돌봄서비스를 포괄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핑계 삼아 정부에서는 복지국가를 축소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졌고, 각 부문별 경쟁을 유도해 시장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긴축재정으로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증거가 영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나오고 있으며, 우리 SHA는 여기에 저항해 투쟁하고 있다”며 “2012년부터 긴축재정의 영향으로 적자병원이 증가했으며, 사회돌봄서비스 재정 삭감으로 전체 65세 이상 고령자 중 26%만이 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Fisher 부회장은 NHS 재정 축소로 인해 국민들의 ‘정신건강 돌봄 서비스’의 훼손을 우려했다.

그는 “내가 일하는 곳은 1차 요양기관인데, 긴축재정으로 인한 업무량 증가, 수진율 감소, 환자 대기시간 증가, 병원건물 매각, 일반의가 민간병원으로 흡수되는 등 공공병원의 의료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있다”며 “성인뿐 아니라 아동 층에서도 자해‧자살 시도율이 증가하는 등 국민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서비스기관이 재정긴축의 제1 타겟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수십년에 걸쳐 평균수명이 증가했는데, 몇년전부터는 평균수명 증가가 중단됐으며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보건복지 관련 긴축재정으로 인해 2만6천여 명이 추가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영국의 젊은 의사들까지도 긴축재정에 관한 불만을 넘어 절망과 두려움을 나타내며 조직적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Fisher 부회장은 "SHA는 NHS의 본래 원칙으로 돌아가 시장화와 민영화에 반대하고 공공보건 예방 서비스 강화와 정치적 부문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다음 선거에서 NHS를 지지하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공동의 정책개발, 캠페인과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영국 Socialist Health Association의 Brian Fisher 부회장, Jean Hardiman Smith 사무총장

Jean Hardiman Smith 사무총장은 NHS의 혜택을 받은 환자 입장에서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내 고모는 돈이 없어 2살에 죽었다”면서 “그러나 1948년 NHS가 생긴 후 태어난 나는 고모와 같은 선천적 질병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제도의 혜택을 통해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제도는 무조건적으로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였지만,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물결로 인해 병원들이 영리병원으로 전환됐다”며 “이로 인해 질병으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추가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끝으로 그는 “환자의 목소리에 정부와 모두가 귀를 기울여 주길 바란다”면서 “환자 또한 다시 한 번 영국의 NHS를 위해 투쟁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