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쥑일 놈들 뭐하는 짓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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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쥑일 놈들 뭐하는 짓이여!"
  • 전성원
  • 승인 2006.05.2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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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평택 대추리·도두리 의료활동을 다녀와서…

 

철거된 초교엔 '평화' 깃발만…

▲ 마을 진입로부터 모든 곳에 삼엄한 검문이 펼쳐지고 있다.
처음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 경찰들의 삼엄한 검문이 펼쳐진다. 얼마 전 폭력진압으로 얼룩진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의 고통을 치료하러 가는 것마저도 그들에겐 상부 보고사항이란다.

입구에서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상부에 보고가 안돼 들어갈 수 없다."

"무슨 이유로 진료를 막느냐."

"신원 확인을 먼저 해야한다"는 등등.

한참을 거듭된 실랑이 끝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소속 치과의사와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소속 한의사, 한의대 학생들이 두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대추리노인정, 다른 한 팀은 도두리 노인정에서 진료를 하게 됐다.

마을로 진입하는 모든 입구와 마을로 가는 길 중간 중간, 마을 내 갈림길 등등 모든 곳에 바리케이트와 삼엄한 검문 검색이 펼쳐진다.

검문의 이유는 "수배자 확인 때문"이란다. 통행하는 모든 외지 사람들은 한참을 붙들려 들어가는 이유를 명쾌하게 대답해야 그 검문을 통과할 수 있다.

아마 80년 5월 광주항쟁 직후 광주와 통하는 모든 진입로가 이러했을 터.

먼 곳엔 작업하는 포크레인, 마을 어디건 늘어선 전경들 닭장차, 초소 인근엔 전봇대 등을 세우고 가로등 다는 작업이 한창이다.

▲ 집집마다 대문 옆에 수용을 거부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마을과 새로 미군기지가 들어설 부지 사이엔 이중삼중의 철조망이 남과 북을 가로막는 휴전선인냥 널리 펼쳐져 있다.

마을 곳곳의 집 담벼락엔 '미군기지 확장 이전'을 반대하는 갖가지 그림이, 집집마다 대문 옆에는 "수용을 거부한다"는 팻말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최종 진압작전이 벌어졌던 텅빈 대추리초등학교에는 '평화'라는 문구가 새겨진 깃발만 나부낄 뿐이다.

80년 광주항쟁 이후 26년만에 처음으로 군과 민이 대치하는 상황이 평택에서 재현됐다는 말에 '그런가보다' 생각은 했지만, 막상 현장은 80년 5월 30일 새벽 군대가 금남로를 지나 도청으로 최종 진압작전을 벌인 이후 황폐해진 광주의 모습을 보는마냥 '서글픔'이 밀려온다.


▲ 청한 소속 학의사가 부항을 뜨고 있다
벼가 손바닥만큼이나 올라왔는디…

지난 21일 대추리·도두리 진료에 건치에서는 필자와, 윤귀성 전 대표를 포함, 박두남, 홍수연 3명의 서울경기지부 회원이 함께 했다.

한의사도 2명이 참여했고, 한의대 학생과 건약 소속 약사들도 이번 진료에 함께 했다.

"스케일링이나 해주나?"

한 주민분의 질문에 "아뇨. 구강검진하고 상담만 해 드려요" 하니 "그냥 침이나 맞고 갈란다"신다.

어쨌건 찾아와 주고 관심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주민들에게 우리는 진료활동 보다는 이런저런 대화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죽일 놈들! 저 뭐하는 짓이여? 저 놈들만 보고 있음 울화가 치밀고 속이 뒤집어져…"

노인정으로 들어서는 어르신 입에서 나오는 첫 마디가 모두 군과 경찰에 대한 욕이다.

▲ 건약 소속 약사의 치료 모습
한 어르신은 "비나 300mm 500mm 퍼부어라. 저놈들 다 쓸려가게"라신다.

평택의 논들은 대부분 갯벌을 간척해 만든 논이라 비가 오면 뻘처럼 된단다. 때문에 작업 중인 포크레인 등이 빠져 옴싹달짝 못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 지금까지도 비 때문에 너댓 대가 빠져서 꺼내느라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한 노인 분은 "직파한 벼들도 이미 손바닥만큼 올라왔는데…"라며 한숨을 쉬신다. 노인정 앞에 늘어선 쉬고 있는 농기계 옆엔 의경들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제껏 일궈온 내 땅을…

"철조망 뒤엔 포크레인으로 수로를 파놓았어. 그 안엔 덩굴철조망을 넣고 물을 채워놓았고. 모르는 사람이 그냥 절조망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물에 뛰어들면 그대로 철조망에 찢겨 오도 가도 못하게 돼. 군인 놈들이 죽을 때까지 쥐어 패겠다는 거여 저것들이…"

▲ 철조망 모습.
도두리 이장인 이상열 씨의 반감어린 설명이다.

이상열씨는 "626번이나 계속 촛불집회를 해왔다"면서 미국과 협상한 국방부·정부, 안을 통과시킨 국회 등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나타낸다.

"이제껏 일궈온 이 땅을 지켜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우리 주민들의 몫이여. 죽는 한이 있어도 내 땅을 내줄 수 없다"는 이상열씨, 지난번 시위 때 경찰에 밀려 패댕이 쳐지면서 어깨인대를 다쳤다고 하는데 목소리만은 카랑카랑하다.

함께 진료에 나선 윤귀성 선생(평택에서 개원하고 있어 평택 사정에 밝다)에 따르면, 현재 대추리에는 50가구 도두리에는 20여 가구가 남아있다고 한다.

윤귀성 선생에 의하면 대추리는 땅을 부쳐 농사짓던 사람들이 많아 계속 버티고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고 이 분들은 어디 가기도 어렵단다. 그나마 도두리는 자기 논을 가진 사람이 많아 보상받고 이주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 남아있는 분들의 의지는 대부분 정부가 주장하는 "더 많은 보상" 때문이 아니라 "고향을 죽어도 떠나지 않겠다"는 자기 땅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다.


정부는 '쇼'가 아닌 진정한 '대화'를

"요즘 정부가 대화를 하자고 하는데, 그게 쇼를 하는 건지 해결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

이상열 씨는 "다음날 10시에 집회가 잡혀있는데 전날 내일 10시에 만나자고 전화가 와. 그게 만나자는 거여 머여"라고 울분을 터뜨린다.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라고 하니 종이 쪼가리에 몇 줄 인쇄해서 부고장 보내는 것 마냥 보내와서 정식으로 직인 찍힌 공문으로 다시 해오라고 보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단다.

▲ 쉬고 있는 농기계들.
"총리가 오든 국방장관이 오든 누구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와야지 권한도 없는 것들이 와서 토지 수용하고 이주를 전제로 대화하자는 것이 무슨 대화여?"

주민들은 최근 정부가 언론지상에 "대화하려 하는데 주민들이 거부한다"고 떠드는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4시간 남짓 진행된 진료 답지 않은 진료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미국을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얼마든지 위선적일 수 있는 정부의 모습"에 떪떠름함을 떨칠 수가 없다.

전성원(건치 공동대표, 두리치과)

▲ 먼 곳에 작업하는 포크레인과 길게 늘어선 전경 닭장차들.
▲ 초소 인근 전봇대에 가로등 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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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사 2006-05-24 17: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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