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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한발 걷고 한숨 쉬고 또…[조남억의 남미여행일기 13] 인천건치 조남억 회원
조남억 | 승인 2018.04.13 12:26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공동회장 김영환 주재환) 전 회장이자 연세조아치과의원 조남억 원장이 지난해 11월 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약 40일간 남미여행을 다녀왔다. 한 사람의 남편이자 네 자녀의 아버지, 그리고 개원의라는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비록 패키지이긴 하지만 페루, 볼리비아, 잉카문명 지역, 우유니 소금사막, 안데스, 아마존,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로망 가득한 남미지역을 여행했다.

조남억 원장은 이번 여행에서의 소감과 정보를 『조남억의 남미여행 일기』란 코너를 통해 매주 풀어낼 예정이다.

열세 번째 회에서는 종잡을 수 없는 6088m의 와이나포토시산의 날씨와 고작 산 타는(?!) 것인데도 자기 스스로의 몸이 모래주머니가 된 듯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며 산을 오르고 또 내려오는 자신과의 싸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편집자


11월 20일

이번 여행을 한 이후로 일기를 밀린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일기만큼은 이틀일기가 될 것 같다. 어제 고산증세로 인하여 일기를 쓸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리고, 오늘도 하루 종일 시간이 없었기에 이틀만의 밀린 일기를 쓰게 되었다. 어제 아침(20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6-7-8 일정이었다. 어차피 기상시간 전에 일어나있었기에 짐 정리 및 일기를 쓴 후, 7시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두 부부 팀은 이미 먹은 상태였고 혼자서 조금 먹다보니, 다른 두 분이 내려와서 함께 먹었다.

오늘 일정의 준비사항으로 최 가이드의 말로는 비오면 우비가 있어야 하고, 해떨어지면 추위에 준비하고, 물도 많이 준비해야 하고 등등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 많았다. 나도 초행길이고, 날씨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또한 내가 문제가 되어 다른 분들께 피해를 주어서는 절대 안 되겠기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오늘의 코스가 이번 여행 중에 제일 힘든 코스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태양의 섬에서 그렇게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라파스에서는 잠을 잘 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을 할 때부터 컨디션이 좋았다.

8시에 호텔 로비에 모여서 와이나포토시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다행이 날씨가 좋았다. 뒷산처럼 보이는, 높이 6439m의 일리마니 산이 우렁차게 보였고, 라파스의 위 도시인 엘알토 도시에 올라오니, 와이나포토시 산(6088m)도 우람한 설산으로 보였다. 그 중간에 마치 카일라스처럼 피라미드 모양으로 보이는 산이 있어서, 6년 전 생각도 많이 났고, 그때 고생했던 고산증이 또 생각이 났다. 이번엔 잘 해내야 할 텐데…

6439m의 일리마니 산이 라파스 뒤에 우람하다. (ⓒ 조남억)
버스를 타고 1000m 이상 고도를 높이기 때문에, 고산증에 대한 대비를 이때부터 해야한다.(ⓒ 조남억)

중간에 광부의 무덤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설명을 들었다.

“볼리비아는 156년간 무려 193번의 쿠데타와 혁명을 겪었습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을 때, 부통령 르네 바리엔토스가 또 한 번의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집권에 성공한 바리엔토스 정권은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농민조합을 끌어들이고, 정권의 대척점에 있는 광산조합과 좌파세력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습니다. 광산 노동자들은 전국적인 파업으로 맞섰지만,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파업을 무력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에 묻힌 무덤의 주인도 그때 죽음을 당한 광산 노동자들입니다.”

스페인은 초반부터 은과 금을 많이 캐어 가길 원했고, 많은 잉카인들이 광부로 힘들게 일하다가 죽어갔다. 그 인력이 모자라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데려와서 광부 노동을 시켰었다. 지난 500년간 끔찍한 고통을 당해온, 볼리비아 광부들의 역사를 생각하니, 광부의 무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4000m를 넘어가면서 나무가 사라지고 초원이 나타나면서 멀리 와이나포토시산이 보인다.(ⓒ 조남억)
(ⓒ 조남억)
광부들의 묘지(ⓒ 조남억)
억울하게 희생된, 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 조남억)

산의 첫 베이스캠프(4820m)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준비운동 후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 트레킹의 코스는 4800m에서 시작하여 5130m까지 330m만 오르면 되는 짧아 보이는 코스지만, 중간에 포기자가 많이 나오는 만큼 부가이드를 한 명 더 섭외한 후 출발하였다.

어제 3600m 라파스에서 모두들 컨디션이 좋았지만, 출발자체가 4800m이기에 걱정이 많이 되어서, 나는 버스가 100m식 고도를 높일 때마다 물 한 모금씩을 의도적으로 계속 마셨다. 첫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때는 이미 물 2병을 다 마신 상태였다. 날씨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일단 매우 맑은 상태였다. 산행은 결국 짐의 무게와의 싸움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려고 다 챙겼던 짐들 중에서, 좀 무거운 것들은 모두 버스에 남겨놓고서,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올라갔다. 만약에 내가 준비를 못해서 못 올라가는 상황이 되면, 아마도 준비물이 있어도, 못 올라갈 상황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과감히 짐을 줄였다. 날씨가 이상해서 못 올라가는 것이 낫지, 짐이 무거워서 못 올라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 조남억)
4800m 제1 베이스캠프 (ⓒ 조남억)
트레킹 전에는 항상 준비운동을 한 후 시작했다. (ⓒ 조남억)

최 가이드가 선두에 서서, 천천히 느릿느릿 속도를 조절했기 때문에, 12시 반까지는 모두 같은 속도로 걸었다. 나도 처음 계획대로 제일 끝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으로 제일 뒤에서 조 선생님과 함께 걸었는데, 12시 반이 넘자 현지 가이드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런 속도로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너무 천천히 걷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현지 가이드들도 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10시부터 3시간을 걸어서 올라왔는데, 아직도 100m밖에 안 올라왔다고 하니, 갈 길이 아직 멀기도 했다.

나와 조 선생님이 먼저 부가이드와 선두조로 나서고, 나머지는 뒤를 따라 가기로 팀을 나누고, 이때부터는 앞장서서 걸었다. 갑자기 부지런히 걸으려니, 숨이 턱턱 막히고, 어지러워지려 하였다. 이런 속도로 무리하면, 나도 바로 쓰러질 것 같아서, 뒤처지는 조 선생님을 앞에 세우고, 그 분을 뒤따라가기로 했다. 5000m 높이에 있는 중간 검문소에서 1시에 이름을 적고, 입산료를 내고 오르는데, 여기서부터는 돌들이 계단처럼 이어지는 깔딱고개였다. 힘을 안 쓰고 싶었지만, 한발 한발 힘을 써야만 했고, 숨이 차려고 하면, 어지러웠다. 그래도 내 앞에서 더 힘들어 하시는 조 선생님의 쉬는 타임에 따라서 쉬다보니, 나는 그나마 덜 힘들게 올라갈 수 있었다. 처음 예상은 왕복 4시간이라고 했었는데, 그 시간은 절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 조남억)
(ⓒ 조남억)
고산증 증세가 한번 나타나면, 하산밖에 답이 없다. 숨차지 않게 천천히 올라야 한다. (ⓒ 조남억)

1시에 우리 조&조 팀은 검문소를 지나 다시 출발하였다. 가이드는 검문소에 남아 뒤 사람들을 기다리고, 우리는 부가이드와 함께 셋이서 올라갔고, 그분의 말대로 130m를 1시간 반 동안 올라가서 2시 반에 제2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등산은 어차피 중력과의 싸움이다. 버스가 있었기에 차에 오를 때는 모든 것을 가지고 탔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물과 비옷과 카메라만 남기고 다 버스에 내려놓고서, 거의 빈 가방만 들고 시작했었다. 초반에 겉옷을 가방에 넣을 일이 생겼지만, 그래도 가벼운 상태였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바로 눈 앞의 언덕만 오르면 5000m (ⓒ 조남억)

5000m를 조금 더 지난 후, 조 선생님의 발걸음이 급속도로 느려졌다. 중간 중간 다른 팀에게 길을 비켜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우리끼리 올라가는 속도도 몇 걸음을 못 움직여서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우리가 고갯길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두 부부 팀도 검문소를 지나 계속 오르자고 마음먹고, 시도를 했는데, 몇 걸음 못 떼고 고산증을 느껴서 바로 포기하고, 하산하셨다고 하였다.

고갯길의 초반에는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어서, 그냥 올라가고 있었는데, 50m를 오르고, 70m가 남은 상태에서, 조 선생님께서 너무 힘들어 하셔서, 부가이드에게 5달러를 주면서 카메라만 좀 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고 올라갔다. 그것만 없어도, 조 선생님의 걸음걸이가 훨씬 편해졌다. 다시 40m정도를 오른 후, 이제 30m정도가 남았을 때에는, 이정도면 나는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 선생님의 배낭과 내 가방을 바꿔서 들자고 하였는데, 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기까지 올라오신 69세의 조 선생님이 너무나 대단하게 보였다. 마지막 30m는 앞서가는 조 선생님을 따라가느라, 내가 너무나 힘이 들어서 헐떡헐떡 거렸다. 가방하나 바꿨는데, 속도가 다르다. 역시나 무게와의 싸움이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동안 두 부부 팀은 가이드와 함께 버스로 내려가고, 최 가이드는 성큼성큼 따라 올라와서, 우리를 따라잡아서 함께 올라갔다. 결국 부가이드의 예상대로 2시 반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보니, 그 전과는 다른, 능선너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정상까지 도전하고 내려오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여서 신기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하였다. 눈앞에 남아있는 높이는 1000m인데, 여기 베이스캠프에서 하루 더 자고, 새벽 1시 즈음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못 오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330m오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1000m라니, 더 연습을 많이 하고 와야 6000m급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 조남억)
파란 지붕의 검문소에 이름을 적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 조남억)
검문소를 지나면서부터는 돌 계단이 이어지는 깔딱고개가 이어진다.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 조남억)
5130m 제2 베이스캠프에 도착, 69세 조 선생님의 체력이 대단하셨다. (ⓒ 조남억)

눈앞에 펼쳐진 만년설의 빙하를 보면서 사진도 찍고, 베이스캠프 벽에 남들처럼 이름도 조그맣게 써놓고서 2시 50분에 좀 급하게 하산을 했다.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면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아서, 하산 길에는 부가이드의 속도에 맞춰서 좀 빠르게 걸었는데, 문제는 하산할 때에도 내가 조 선생님의 배낭을 지고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언제 그만큼 올라갔었나 싶게,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구불구불 길이 계속 나타났다. 올라간 길은 기억이 별로 안나서, 짧았던 것 같은데, 내려오는 길이 길고 멀었다. 4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했기에 너무 부지런히 걸었더니, 하산 2/3 지점에서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면서 덥고 어지러우면서 구토증상이 나타났다.

잠깐 멈춤을 하고, 무거운 배낭을 벗고, 옷을 좀 벗고, 천천히 걸어서 내려왔다. 나의 가벼운 가방을 메고 걸음걸이가 빨라진 조 선생님의 속도에 맞췄더니, 내가 힘들었었던 것 같다. 하산길에 힘이 덜 들어서 조심하지 않았더니, 오버페이스 한 것 같다. 후두부위 보온을 잘 해야 한다고 하더니, 오후 들어서 빙하의 찬바람이 뒷덜미를 치는 것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제1베이스캠프에 간신히 도착해서, 퀴노아 스프만 간단히 먹고, 바로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모두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초반에 천천히 걸은 것은 좋았으나, 시간이 너무 걸렸던 것이 후반 속도를 내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 같다. 책에는 4시간 정도의 시간이면 된다고 했었는데, 오르는 데만 4시간 반이 걸렸다. 내려오는 것까지 하면 7시간은 시간을 잡아야 할 것 같고, 아침에 좀 더 일찍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하산하면서 좀 무리를 했더니, 그때부터 머리가 아프고, 의욕도 없는 고산증세가 심해졌다.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천천히 걷느라 더 힘들었을 부가이드와 함께. (ⓒ 조남억)
T&C 여행사 최진우 가이드와 함께.(ⓒ 조남억)
와이나포토시 정상까지 남은 높이는 1000m. 가는 길도 보이고, 내려오고 있는 사람도 보이니, 체력 훈력을 하고 와서 정상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조남억)
지금은 아랫쪽에 베이스캠프 건물을 새로 지어 사용중이다. (ⓒ 조남억)
하산길. 숨이 덜 차고, 힘이 덜 든다고 해서 좀 빨리 걸었더니, 역시나 고산증이 왔다. (ⓒ 조남억)
하산길에 만난 라마들. (ⓒ 조남억)

물론,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분들의 상실감에는 비할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른 분들 앞에서 등반에 성공했다고 좋아하는 척도 하지 못했다. 2001년에 킬리만자로 정상 50m를 남기고 포기했을 때, 나도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었다. 50m 바로 위에서는 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얼마나 걸릴까 물어보니, 가이드가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세 걸음 걷고 1분 쉬고를 반복할 때였는데, 같이 간 선배 누나가 1분이 지나도 숨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 헉헉대고 있었다. 가이드 없이 나 혼자서 올라갈 수도 없었고, 만년설 옆에 그 누나보고 2시간만 가만히 혼자서 앉아있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부가이드가 있었다면, 한명씩 나눠서 갔겠지만, 가이드는 한 명이니,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하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17년 전의 일이지만,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항에서 짐을 다시 싸서, 짐을 비행기에 부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7시 반 비행기여서, 식사시간이 없어서, 각자 100 SOL씩 받아서 공항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소고기 타키야키 30cm짜리를 시켜서 셋이서 나눠 먹었더니 먹을 만 했다. 그래도 역시나 입맛도 없었고, 머리도 너무나 아팠다.

8시 반에 우유니 공항에 내려서, 기다리고 있던 지프차 3대에 나눠 타고 소금호텔로 향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아스팔트가 잘 깔려 있어서 1시간 동안 편안하게 왔다. 10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바로 방을 배정받고 헤어졌다. 곧장 호텔밖에 나가서 별을 보았는데, 사막 한 가운데이긴 하지만, 호텔불이 밝아서 별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머리도 아프고, 3680m 고도 이다보니 숨도 가프고, 춥고 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춥고 힘이 없어서 일기도 못쓰고 그냥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라파스 국제 공항에서 보이는 와이나포토시산. (ⓒ 조남억)
우유니 소금호텔 침실. (ⓒ 조남억)
소금호텔 거실. (ⓒ 조남억)

조남억  whomi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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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타리 2018-08-02 17:12:24

    인류의 역사속에서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일은
    결코
    끝난 적이 없었지만
    에덴의 문은 여전히 닫혀있어

    이 정복자들에겐
    오직 권력과 완력에만 굶주려있는,
    왜냐하면
    진짜 엘도라도는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게 아니니까
    그것은
    불멸의 열망이지
    불멸의 열망일 뿐이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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