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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고통의 변주가 세상을 바꿀까?[기고] 인의협 여성위원회 세미나 후기…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전임의 김새롬
김새롬 | 승인 2018.04.16 17:37

의료와 젠더, 몸과 고통에 대한 변주가 만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검은 밤하늘에 벚꽃이 예쁘게 핀 모습이 무색하게도 봄추위가 시작하던 4월의 첫 번째 수요일 저녁, 여느 때보다도 많은 청중들이 여성위원회 세미나를 위해 모였습니다. 모르는 얼굴이 많아 주위를 둘러보는데, 여성일색일줄 알았던 자리에 남성 참석자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꽤 앞줄에 앉은 두 남성분이 불편할 법도 한 이야기들에 너무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바람에 감짝 놀라기도 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자로 오신 정희진 선생님은 미투와 낙태죄와 의료에 대한 적절한 예시를 들어가며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다만 강의 서두에 정희진 선생님께서 모든 글(text)은 그 글의 맥락(conteext) 속에서 해석돼야 하므로 지금 강의에서 했던 말들을 맥락을 떼어내고 옮기면 그 의미가 와전되기 마련이니, 제발 강의에서 한 말들을 다른 곳에 옮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제가 이렇게 옮겨 적고 있으니, 죄송스러워야 하는 노릇일까요? 하지만 간사님이 요청하신 ‘강의 후기’를 누군가가 적기는 해야 하는데… 그러니 이 글은 강의에서 배운 대로 저는 제 인식세계에 입력된 정 선생님의 말들을 제 나름의 방식대로 풀어내고 있는 거고, 제 경험에 대한 ‘발화’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의협 여성위 2번째 모임

강의 초입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페미니즘과 의학은 모두 ‘몸’을 탐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이때 몸은 마음(the mindful body)이자 사회(the social body)라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몸에 대한 의료화된 관점을 넘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몸을 다루어 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의 여러 가지 활동이 떠오르는 대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총체적인 경험과 경로가 체현돼 나타나는 ‘몸’과 그 반영으로 ‘건강’을 고민하는 의료인이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이 말하는 몸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페미니즘이 고민하고 밝혀낸 mindful body와 social body에 대한 지식들은 의학이 집중해 온 생물학적 몸(biological body)에 대한 지식이 놓치고 있는 많은 지점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의사들의 권력이 환자의 고통에서 나온다”고 하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여지껏, 의사 권력은 전문지식과 법적으로 보장되는 의료에 대한 독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스스로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공부하고 지향한다면서 의사 권력에 대해 사람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고, 그것의 책무를 당장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정 선생님 말대로 의사의 권력이 환자의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고통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인의 권력은 그런 고통을 야기 하는 세상을 바꿔 나가는 데 사용돼야 하는 것이겠죠.

의학과 의료에 대한 훈련과정에서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모두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학교에서 젠더와 성(sex), 성애(sexuality)에 대해 구분 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보건학과 역학에서도 회귀모델에 성을 통제 변수로 넣고 지나가는 정도지, 진지하게 차이와 격차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의료와 건강 정치는, 젠더를 어떻게 이해하고 통합해 낼 수 있을까요?

인의협 회원이라면 이제 젠더가 생물학적 성과 구분되는 사회적·문화적으로 형성·수행되는 정체성을 의미한다는 정도는 다 알고 계시지요? 젠더 건강이나 젠더 문제가 여성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도요. 강의에서 정 선생님은 젠더가 적어도 3가지 차원으로 읽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계급, 인종과 비슷한 지위를 가지는 성차로써 젠더 체계가 있고, 두 번째로는 사회를 구성하는 매우 핵심적인 성분으로 젠더(수행), 마지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론으로 젠더를 이해해야 한다고요.

이런 관점에서 의료인으로서 사람들의 몸과 고통을 다루는 의료인들이 다차원적인 젠더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젠더 관점을 일상과 의료현장에서 작동하는 성역할과 젠더 위계를 존속시키는 제도(가부장제나 이성애 중심주의 같은), 그리고 젠더 폭력을 연결시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임상적 실천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수한 억압과 고통을 야기하는 젠더 체계의 변화를 위해서는 그 고통을 곁에서 목격하고 치료하는 의료인들의 변화가 필요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인의협 여성위원회의 활동과 역할이 추위를 견디고 끝내 피어나는 봄꽃처럼 활짝 개화하길, 기존의 활동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대안과 변화의 실마리들을 이끌어내길 기대하고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김새롬  wcaph20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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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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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용 2018-04-17 09:52:33

    의사의 권력? (보건)의료인의 권력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ㅎㅎ 그리고 의료인의 권력이 환자의 주관적인 고통에서 나오고 그 고통을 해결해주는 권력이라면 그다지 큰 문제되지 않을 것 같네요. 더 심각한 것은 실재하는 고통과 무관하게 정상과 비정상, 환자와 환자 아닌자를 나누고 치료까지 할 수 있는 권력이 진짜 무서운 권력 아닐까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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