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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노동 문제의 사회문화적 성격[건강과대안 칼럼] 박건 상임연구위원
건강과대안 | 승인 2018.11.14 11:42

본지는 건강 문제를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과 보건의료 이슈에 관한 정기연재 협약을 체결하고, 지난 7월 11일부터 첫 연재를 시작했다.

2018년 올 한해를 휩쓴 이슈 중 하나인 '여성 재생산권'에 관한 칼럼을 시작으로, 10여년을 끌어온 제주 영리병원 논쟁에 대해 다뤘다.

앞으로 건강과대안 칼럼에서는 치열한 보건의료 이슈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맥락에서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 주

 
작년에 있었던 한림대 성심병원의 이른바 ‘장기자랑’사건, 올해 아산병원에서 발생한 박선옥 간호사의 죽음, 그리고 여전히 계속되는 간호사에 대한 각종 부당한 대우들은 보건의료계에서 간호노동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많은 논란과 사건들 그리고 주장들 속에서도 특별히 나아지는 모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 해 한림대 병원노조는 98%의 총파업 결의 속에서 병원 측과의 협상과정에서 간호 2등급 유지, 인력 85명 충원, 기간제 및 의무기록사 파견직 정규직화, 적정 임금 인상 등에 합의하는 성과가 있었고, 아산병원의 경우 ‘면접갑질’이 또 다시 문제가 되면서 과연 반성이라도 하는가라는 한탄과 자조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사후 대응을 통해 한림대 병원은 과거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고 나아지고 있으며, 아산병원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소위 ‘빅5’로 불리는 대형병원들만의 문제인가? 혹은 노동조합의 문제인가? 이제 우리는 간호사들의 노동환경과 간호사들과 우리 시민을 둘러싼 보건의료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많은 질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간호사들의 노동환경과 관련하여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에서 분석되는 노동실태 뿐 아니라 노동문화, 간호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간호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 등 다양한 것들이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 다만, 간호노동을 이야기함에 있어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었던 간호사들의 노동환경 문제 이외에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간호노동의 사회문화적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간호노동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동안 한국 의료계에서는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간호사의 양적 공급부족을 확대하기 위하여 신규 간호인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방안을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간호대학의 정원확대(최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간호대의 편입인원의 확대를 이야기하고 있다)를 제시하고 있으며, 문제의 핵심으로 노동시장에서 간호 인력이 지속적으로 이탈하는 상황을 개선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쪽에서는 고용조건과 근로환경의 개선, 정책과정의 합리화/민주화, 간호인력에 대한 투자, 노동조합의 문제해결 과정 참여 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병원의 갑질 문제에 대하여 좋은 처방의 하나로 생각된다.

특히 강력한 노조의 존재는 어느 정도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간호사를 병원 내 노동 구조의 하위파트너로 구조화하고, 핵심의료 인력의 한 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또는 형식적인 수준에서만 인정하거나), 의료현장의 동등한 동료로 대하기를 거부하는 과정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하거나 차별하는 사회문화적 시선에 대한 문제들 역시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위계질서가 당연히 형성 될 수밖에 없다’라는 식으로 우리가 그동안 당연히 보아왔던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씩 질문하고,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간호사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정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생각해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에서 1800년대부터 직업으로 등장한 간호사는 초기부터 의사와 병원관료가 통제하기 쉽도록 제도화되었고, 특히 해당직업군이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오랫동안 공식적인 직업적 이미지를 갖지 못했다. 한국 의학드라마에서의 간호사 이미지를 연구한 논문에 의하면 간호사는 ‘주로 의사의 치료행위 관찰 혹은 병원의 물품과 기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역할’로 그려진다.

그렇다면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가치부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단지 직업에 대해 사회적 인정을 부여하는 것으로 가능한가? 병원 내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의 본원적인 작동양식과 형식 속에 이미 간호사의 종속적 지위가 배태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논쟁이 아마도 간호인력이 보건의료 영역에서 충분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잠시 병원으로 이동해보자.

병원이라는 공간에서의 의료서비스에서 간호 인력이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의 정도에 대해서는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어도, 반드시 필요한 핵심인력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병원 내 반드시 필요한 핵심인력이라는 점은 중요하다는 점 이상을 의미한다.

즉, ‘중요’가 의미하는 것은 중요의 정도에 따른 제도적, 사회적, 문화적 배치를 의미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은 그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조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단순한 언어의 나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조건의 변화를 위하여 검토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 즉, 문화적 수준에서의 가치평가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것은 어떤 가치관에 근거하여 누가 핵심의료 인력인지를 평가하는 것을 포함하여, 특정 직업군에 대한 문화적인 수준에서의 가치평가의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간호사 직군에 대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종속적 이미지, 부차적 이미지, 이탈가능성 등의 이미지가 꾸준히 형성되어 있는 상황은 간호인력 부족 문제를 신규인력의 양적 확대로 쉽게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과 연관된다. 이것은 이들 직업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로 전환되며, 이러한 문화적 가치평가와 병원 조직 내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특정 직업군을 종속적으로 배치하는 과정을 전환하지 않고서는 기존 가부장적 위계질서 속에서 재조직되는 간호노동의 위상을 재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문제는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총체적이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병원 내 위계질서의 문제는 단순히 ‘생명존중’을 이유로 이루어지는 위계적 질서가 아니다. 19세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의료분야의 노동 분업은 가부장적 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데, 특히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는 젠더적 노동 분업의 일종으로 설명가능하다. 그러므로 노동 분업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같은 이러한 노동 분업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와 질서에 대해 문제제기 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간호노동이 의료분야의 노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 속에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어떻게 간호노동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지 살피지 않는다면, ‘생명존중’을 명목으로 가부장적 위계질서의 정당성이 뒷받침되고 있는 현실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갑의 온정주의적 행위나 땜질 처방으로는 순간의 고통을 참을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지만, 해결은 불가능하다.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자원의 분배, 보건의료 영역의 동등한 동료로 서로 만날 수 있는 구조를 파괴하고, 간호사를 종속적 지위로 떨어뜨리는 제도적/문화적 구조들, 자신이 직접 영향을 받는 각종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 등에 대한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당연히 의료계 내부에서의 변화만으로는 어렵다. 의료계를 포함한 전체 사회의 변화와 논의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논의를 위한 전제로 요구되는 사회적 연대는 의료기관 내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에서 가져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적 연대의 원천을 찾아가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안, 다양한 ‘갑질문화’의 근원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방안을 찾아나간다면, 이는 비단 간호노동의 현실을 바꾸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좀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박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건강과대안  healthcommu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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