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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의지 가진 이들이 세상 바꾼다”[인터뷰] 건치 30주년 다큐멘터리 『서른. 그리고 하나』 제작을 마친 박봉남 감독
윤은미 | 승인 2019.07.23 17:46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봤다. 선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서른. 그리고 하나』 제작이 끝났다. 작년 8월 계약서를 쓰고 올 6월 말까지 총 10개월간 35회 분량으로 마무리됐다. 완성본을 들고 7월 초 건치 사무실을 찾은 박봉남 감독을 만나 제작 후기와 건치에 하고픈 말을 들어봤다.

건치 사무실을 찾은 박봉남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봉남 감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오랜시간 현장을 기록했던 사람이다. 팽목항, 바지선, 체육관, 안산, 국회, 광화문……. 가끔 미디어로 소식을 접하며 일상을 살아온 이들에게도 여파가 컸던 그 사건 현장들을 영상으로 기록하는데 2년을 쏟았고 그 후유증은 컸다. 어떤 이야기에도 별 감흥도 분노도 없는 사보타지 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 기록하고 담아내는 일을 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는 치명적이었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일에서 잠시 멀어지기로 한 박 감독은 크게 두 가지 준비를 시작했다. 하나는 통일에 대비하는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몇 년 전 시작한 나무에 관한 공부이다. 수목전문가이면서 영상연출자로서의 역할 준비에 몰두해 연간 100일을 산에서 보내던 그에게 건치 다큐멘터리 제의는 호기심을 불렀다.

"홍수연 대표의 제안이었다. 홍 대표와는 대학 동기다. 촛불 때 대학동기들과 다시 만나 산에도 다니고 하면서 그가 이런 저런 일로 바쁜 건 대충 알고 있었다. 여름엔 베트남에 진료하러 간다고 하고, 쌍차 진료도 다닌다고 하고, 어느 날은 공동대표를 맡았다고 하더라. 궁금증이 생겼다. 홍수연 대표가 열심히 하는 거 보면 의미 있는 일일 텐데, 같이 활동하는 치과의사들은 뭘 하고 사나 궁금해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평연 촬영분 직접 못 갔지만 가장 인상 깊어
치과의사 '윤귀성'의 삶 기리며 엔딩씬 편집
건치는 ‘연대’하는 조직…‘봉사’와는 또 달라

제한된 기간, 정해진 예산으로 시작한 다큐멘터리다 보니 박 감독의 호기심을 다 풀어내기엔 아쉬운 점도 많았다. 기존에 맡고 있던 방송분과 건치 다큐멘터리 취재가 겹치면서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이하 평연)엔 직접 촬영을 가지 못했다. 아쉬움과 함께 내년 평연 20주년 행사에서는 그간 해온 연대 활동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그들(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 촬영분도 베트남에서였다고 말한다.

“평연 정제봉 이사장이 종이에 ‘나는 21년을 일해 온 실력 있는 한국의 치과의사다. 우리를 믿고 입을 벌려주면 된다’라고 써서 아이들에게 보이는 장면이 있다. 그 때 그가 아이들에게 ‘매년 이곳에 왔으며 올해가 스무 번째’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이들의 표정이 화면에 살짝 나왔다. 매년 왔다고 할 땐 별로 놀라지 않던 아이들이 스무 번째라고 하니 놀라더라. 나는 베트남 촬영분을 보면서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사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가해자는, 또 피해자는 어떻게 서로를 만나는가. 역사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예의로 그들을 대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다. 직접 취재는 못 갔지만 건치 선생님들과 치과위생사, 한의사들의 땀과 절제한 눈물이 화면 곳곳에서 보였다.”

엔딩씬에 에바다복지회 윤귀성 대표의 사진을 넣었던 것도 박봉남 감독에게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박종필이라는 내가 아는 감독도 에바다에서 오랜시간 동거동락하며 『끝나지 않은 싸움 에바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박종필 감독이 이제 갓 오십인데 재작년에 지병으로 사망해 마석모란공원에 묻혔다. 그 때 에바다에 있던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내가 알던 두 사람이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연대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치과의사 윤귀성이라는 이의 삶이 궁금해져 좀 찾아보기도 했다. 에바다 투쟁이 진행되면서 내부갈등이 많았다는 사실도 알게됐는데, 윤귀성 선생님이 그런 갈등 속에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윤귀성이라는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이들은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하는 것도 궁금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을 떠올리며 윤귀성 선생님의 사진을 마지막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상 깊었다.”

시작하면 끝을 보는 건 서로 아니까, 해야 한다 싶으면 일단 일을 벌이는 게 건치다. 그래서 일당백이 된 회원들이 무던히 해온 사업들은 일상이었다. 그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봤을 때 회원들은 새삼 드는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또 ‘우리의 일상이 봉사와 같은 것이었나…’ 낯설기도 했다고. 그런 반응들을 전하자 박 감독은 건치의 활동은 봉사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건치는 연대하는 조직이다. 봉사와 연대는 다른 것이다. 이번에 울산건치에 (촬영을) 갔더니, 2001년부터 이주민 노동자를 위한 진료를 꽤 오래 해왔더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 흥미로웠던 건 회원들이 건치 안에만 머물지 않고 울산의 핵심적인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박영규 선생님은 울산시민연대를, 이채택‧안재현 선생님도 울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했다. 어울림복지재단은 초창기 이종상‧김병재 선생님 두 사람이 개인당 1억씩 비용을 출자해 재단을 세웠다. 이들이 기구를 만들었다는 건 일회성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회원들 주머니도 적지 않게 뜯어(?)갔다고 한다. 이건 명확한 연대다. 연대를 왜 하는가? 함께 하면 더 나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지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천도 울산과 비슷하다. 지역 시민사회 조직이 굴러가는 핵심이 치과의사였다. 처음 알았다. 치과의사들이 그런 일을 할 거란 생각을 안 하지 않나. 돈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절대 돈을 내지 않는다. 인천건치가 시민운동 펀드를 만들어 지원하고, ‘꿈베이커리’를 짓고 하는 일들 모두가 쉽지 않다. 치과의사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건치, 60주년 어떻게 만들어갈지 준비해야…
참치학교‧꿀잠진료소…청년들과 결실 볼 것
통일시대 맞이하며 건치와 다시 만나고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최근 건치가 하는 생각이나 고민을 지켜본 박 감독은 ‘건치가 앞으로 30년만 더 잘 버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와 분단체제의 해결이 앞으로 남은 굵직한 과제라고 보는 박봉남 감독은 건치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작년 말에 부산에서 LT를 하면서 정효경 선생님이 ‘우리는 이미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더라. ‘최소한의 자기 것을 유지해야 하고, 부담이 있는 집회나 현장에는 나가지 않으니 우리는 이미 투항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해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혼란스럽다.

대부분 의료인들이 신자유주의체제에서 그냥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건치는 계속 고민을 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냐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연대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런 건치가 이제까지 해온 큰 과제들은 아직 다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평화, 건강불평등, 인권…….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바로 이끌어주는 이들이 필요하다. 그게 건치라는 거다.”

세대를 이어가기 위한 건치의 고민에 대해서도 그는 비교적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참치학교나 꿀잠진료소와 같이 청년 의료인들을 품고 가는 활동들이 작은 경험이 되고 은근한 자극이 돼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조언도 전했다.

“젊은 청년치과의사들은 건치가 추구해왔던 보편적 가치만으로 더 이상 조직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건 건치만의 문제는 아니고 진보를 지향하는 조직들이 함께 직면한 문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는 게 꼭 투쟁만이 아니다. 정책으로도 승부를 걸고 사회적 약자를 감싸는 그 자체도 중요하다. 그 안에서 건치가 즐겁게 노는 모습도 봤다. 그렇게 살면 되지 않나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참치학교나 꿀잠진료소를 보면 청년 치과의사들이 여러 스펙트럼을 보인다. 참의료인이 되고 싶은 사람과 돈 잘 벌고 싶은 사람, 둘 다 관심있는 사람이 다 혼재돼있다. 그곳에서 의료인의 가치 추구를 고민하는 김창우 선생님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건치가 품었던 가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년치과의사가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치가 방향을 잘 잡고 청년 의료인들에게 나 개인의 안락한 삶으로만 빠지지 않도록 은근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사는 것도 재밌다고, 아니 더 재밌다고. 너 혼자 행복하지 못한다고. 함께 행복해지는 거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공간이 건치이길 바란다. 지금이 이흥수 교수님이 했던 질문을 다시 할 때다. ‘당신이 생각하는 건강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는 뭐냐’고.”

박 감독은 10개월 간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위로를 조금 받았다고 말했다. ‘치유’가 됐다는 표현도 나왔다. 통일시대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만큼 때가 되면 또 건치와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전했다.

“촛불집회 때 찍은 영상에서 홍수연 대표가 탄식을 하더라. ‘우리가 30년을 정말 열심히 해왔는데 어쩌면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나는 나중에 홍 대표에게 ‘당신 같은 사람이 30년 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해서 그나마 이정도’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힘든 시기였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있어야겠다던 참이었는데 건치를 취재하면서 약간은 위로를 받았다. ‘이 사람들 참 열심히 살았네. 30년간 아무것도 안 변한 게 아니었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은 나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을 들면서 조금 해소가 됐고, 나무를 촬영하러 다니면서 치유를 받았다. 건치를 촬영하면서는 아직은 세상이 괜찮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 거다. 건치와는 앞으로도 이래저래 인연을 맺고 가지 싶다.”

윤은미  yem@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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