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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나가사키·새로운 세상을 보다.[2019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관기]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동근 정책기획팀장
이동근 | 승인 2019.08.16 14:32

나는 8월 8일 아침 일찍 짐을 챙겨 집을 나서는 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물론 전날 회의를 마치고, 새벽에 다시 일어나서 공항까지 가는 길이 피곤했으리라 예상되지만, 이에 더해 일본에 관한 비판적인 많은 뉴스들이 쏟아지는 시기에 일본에 방문한다는 점에 고민과 걱정이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돌아보건대 이 시점에 일본을 방문하였던 것은 거꾸로 일본의 시민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호기였고, 더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었던 기회가 됐던 것 같다.

오오츠카 상,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폭체험을 전하고 있는 오오츠카 카즈토시 씨

나가사키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참여한 곳은 피폭체험자와의 간담회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오오츠카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자리가 그날만으로 3번째 피폭체험 증언이라고 하셨다. 고단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게 매우 힘드셨을 텐데도 그는 어떤 힘든 기색 없이 원폭으로 인한 참혹한 경험담을 풀어내셨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또는 언론에서 핵무기나 전쟁에 대해 전달하는 내용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오오츠카 씨는 어린 나이에 겪은, 원폭으로 폐허가 됐던 나가사키의 모습, 2차 세계대전 이후 피폭자를 인정하지 않았던 미국, 온 가족이 피폭자로서 죽어갔던 삶을 생생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는 그러한 원폭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개최됐으며, 74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씀하셨다. 짧은 시간임에도 내가 지향해야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알게 해주셨다. 오오츠카 씨는 그렇게 고통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아직 그 참혹함을 이해하지 못할 젊은 세대를 위해 증언을 해주시고 계셨다. ‘오오츠카 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꼭 오래오래 건강하게 이렇게 있어주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체육관을 가득 채운 열렬한 외침, 그 한가운데에서

2019 원수폭금지세계대회 폐회식에서 원폭이 투하된 오전 11시 2분, 참가자들이 일제히 묵념을 했다.

나가사키 도착한 다음날 오전 나는 숙소 근처 시민회관 체육관에서 열리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 폐회식에 참여하기 위해 나섰다. 평일 출근시간이 한참 지난 오전임에도 도로에는 분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체육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엄청난 인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체육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오로지 2시간여 진행되는 세계대회의 폐회를 기념하기 위해 모여 있었던 것이다.

폐회식 진행 중에 여러 단체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때로는 엄숙하게 원폭의 잔혹성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즐겁게 평화를 외쳤다. 무대에서 어떤 분께서는 평화주의자는 이상주의자가 아닌 현실주의자이며, 핵무기는 현실적으로 비인간적인 무기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전쟁은 절대 안 되고, 핵무기는 절대 안 된다고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행사가 또 있을까? 나는 일본의 반전운동에 대해 들어본 바는 없지만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한편으론 일본의 원폭체험이 반전운동을 더 절실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계속 가슴에 되뇌는 말이 생겼다. ‘평화주의는 정말 현실주의이다.’ ‘핵무기는 너무나 비인간적인 무기다.’

나가사키의 돌은 검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폭심지 바로 옆 하천
원폭 피해를 입은 오오우라 천주당 건물 일부를 폭심지 근처로 옮겨다 놓았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이었다. 그 곳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의 위력, 그리고 이후 나가사키가 겪은 참담함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원폭에 의해 발생한 섬광, 폭풍, 열선, 방사선에 의한 피해를 설명해주었다. 특히 열선에 의한 피해는 눈으로 바로 느껴졌다. 지표면의 온도가 4000~5000℃이었다니깐 정말 모든 걸 녹였을 것이다. 폭심지에서 4km나 떨어진 곳에서도 벽이 검게 탔다고 했다. 방사선에 의한 피해는 참혹했다. 피폭자들은 당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심지어 같은 피폭자였음에도 부상자 구호에 헌신하다가 돌아가셨다. 안타깝게도 피폭자는 그 자녀까지 피해가 전달된다. 원폭의 피해는 현재 진행 중인 셈이다. 자료관에 나와서, 나는 나가사키의 돌을 유심히 보게 됐다. 나가사키 강가의 다리들, 보도 주변 돌들은 검은 색을 띄고 있었다. 이것들 역시 74년 전 원폭의 무서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제주 강정마을을 떠올리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사세보항 전경

사세보항은 나가사키 시내에서 차로 1시간 30분여거리에 있다. 커다란 사세보만을 중심으로 한 항구인데, 산에 올라가 사세보만을 살펴보면 원형의 넓은 만으로 파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수심은 깊어서 천연의 항구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점령해 항구로서 역할을 상실하고 군사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사람이 사는 동네에 탄약창고가 숨겨 있고, 핵잠수함이 항구를 드나든다. 미군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이 미군기지는 사세보항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세보항을 보면서 제주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미군들이 기지를 사용하고 있다. 정말 그 미군은 제주도를 지켜주고 있을까? 한국에게 선물 같은 제주도가 강정마을로 최근에는 제2 공항으로 미군에 의해 점점 점령당해가고 있다. 환경을 지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할 바인 것이다.

생활밀착형 의료를 지향한다

사실 나는 이번에 방문하기 위해 준비하기 전까지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번 기회로 민의련이 어떤 단체인지 공부할 수 있었다. 민의련을 설명하는 책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후에 절박한 의료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진보적인 의료인들과 주민들, 노동조합이 돈을 모아 마련한 민주진료소가 민의련의 첫 출발이라 한다. 그렇게 탄생했기 때문에 민의련은 의사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가 같이 조직하고 운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6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많은 주민들이 민의련에서 인간적인 의료를 접근할 수 있다. 민의련은 더 많은 의료인이 현재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뜻이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의사나 약사, 간호사가 되도록 지원해 준다.

이번에 민의련이 운영하는 병원과 요양시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나가사키 민의련 병원은 입원하는 곳에 테이블이 많이 놓여있다. 그 이유는 환자들이 거동은 불편하지만, 꼭 병실 밖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만 있지 않고, 일어나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카미토마치병원 내 식사공간

한편으론 그만큼 병실에 그들을 돌봐줄 의료인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민의련 선생님은 유전자치료처럼 영화 같은 의료보다 생활에 밀착한 의료가 더 많은 환자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계셨다.

최신 의료는 혁신의 시대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의 치료들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이 병을 진단하고, 바이러스나 나노물질을 몸에 넣어 치료하거나 다른 사람의 세포를 배양해서 몸에 이식하여 치료하기도 한다. 그런 치료는 최첨단의 기술이 필요한 만큼 엄청난 치료비 또한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사람을 살리는 인술은 그런 공상과학에 있지 않을 것이다. 의료의 혁신 시대에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환자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많이 배워서 갑니다

내가 이번 나가사키를 방문하면서 가장 큰 수확을 하나만 꼽는 다면 바로 일본인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진 일이었다. 잘못된 역사의식과 ‘망언’으로 한국의 뉴스를 도배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일본 내에는 지난날 일본이 다른 국가들에 했던 만행에 대해 반성해야 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심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민의련 선생님들과의 간담회에서 만난 치과의사,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에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일본인들, 일본의 가해 책임과 조선인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던 오카 마사하루 목사와 그를 기념하기 위한 평화 자료관은 나에게 또 다른 치유가 됐다.

일본 정부는 조선을 강제로 병합시키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에 대해 외면하지만, 적어도 양심 있는 일본인들은 차별받는 조선인들을 위해 힘쓰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추모하고, 한국인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에 몇 번이나 울컥했다.

내가 일본인이었다면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나부터 일본사람들을 쉽게 오해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의련을 포함한 나가사키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워서 갑니다.

*본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동근(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기획팀장)

 

이동근  gcnews@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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