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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적 고통 속 탄생한 건축무한육면각체[김다언‘s B급 살롱] 시인 이상…『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 AU MAGASIN DE NOUVEAUTES』의 이해
김다언 | 승인 2019.12.06 14:35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해설을 위해 버지니아 울프와 박인환 시인에까지 탐구의 영역을 확장하며 지난 2017년 9월 『목마와 숙녀, 그리고 박인환(보고사)』, 이어 2018년 12월엔 『박인환,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보고사)』를 연달아 펴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이창호 원장(이&김치과), 작가 김다언이 세 번째 책 『박인환, 미스터 모某의 생과 사』를 들고 돌아온다.

이창호 원장은 올해 중반 건강 문제로 본지에 연재 중이던 '김다언'S B급 살롱' 등 모든 집필활동을 잠정중단했다가 최근 마무리를 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그는 연재 중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세 번째 책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인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해설을 본지에 먼저 살짝 공개키로 했다.

이번 책 『박인환, 미스터 모某의 생과 사』에서는 박인환과 이상·김수영 시인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특히 박인환 시인은 동시대 천재로 불렸던 이상을 흠모해 추모시를 포함해 여러 일화를 남겼다.

이창호 원장은 박인환 시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시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이상의 시나 글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 두 번의 책을 내는 과정마다 이상과 관련된 글과 연구서를 읽었으나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고.

그러던 중 세 번재 책을 내려고 마음먹은 이후 이상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 했다. 그 방법은 바로 '지나가던 이과가 알려드립니다'다.

이상은 시인이기도 했지만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가를 나와 조선총독부 건축기수로도 근무했고, 재직 당시 건축학회지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서 1등과 3등에 당선되는 등 뛰어난 '이과생'이기도 했다.

이 원장은 치과대학을 나온 같은 '이과생'으로서 그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의 생각의 회로를 따라가며 난해한 시 중의 하나인 『건축무한육면각체』를 해설해 냈다.

본 기고글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시 원문의 한자를 한글로 바꿔 표기했다.

-편집자

 


건축무한육면각체는 AU MAGASIN DE NOUVEAUTES를 포함한 7수의 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상은 1932년 7월 『조선과 건축』에 일어로 된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발표했다. AU MAGASIN DE NOUVEAUTES는 불어이며, 그 사전적 의미는 ‘새로운 문물이 전시된 상점’을 의미하니 지금의 백화점으로 이해된다. 이 시에 대한 많은 연구논문은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의 현대적인 최신 상품과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소재로 시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이 어떤 목적으로 미쓰코시 백화점을 찾아갔으며, 그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한 논문은 찾기 어렵다. 방문 목적에 따라서 시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이 시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하는 연구자들에게 방문 목적은 중요한 요소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도쿄 본점을 비롯해 일본 전역에 있었으니 이상이 일본을 여행할 때 들렀던 감상을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백화점 방문이 일본 여행 일정 중 하나로 관광 목적이라는 주장이며 시의 해석은 당연히 일본 관광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것이다. 관광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자면 시의 ‘반복되는 사각형과 원운동, 대각선 방향으로 추진하는 막대한 중량’의 내용이 서로 의미의 연계성을 가지며 이상의 직업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이다.

당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 신분인 이상이 시설점검 목적으로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을 방문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의 배경은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특정되며 도쿄와 경성의 장소에 대한 논란은 불필요하게 된다. 기계장치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만을 근거로 건축기사인 이상이 시설점검으로 백화점을 방문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비록 가설을 세우고 분석하더라도 시의 해석은 서로 맥락이 닿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32년 이상이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근무하던 시기에 동행이 있는 상태로 미쓰코시 백화점을 방문한 목적과 연계하여 상징적으로 묘사된 시어들을 분석했으며, 그 결과 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동행이 있다는 내용도 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설명이 가능하므로 시의 전문을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설명을 이어가겠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 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루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마지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량약이라고쓰어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무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락체공식.

시계문자반에XII에내리워진이개의침수된황혼

도아-의내부의도아-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야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깐에방금도달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여진다.

검은잉크가엎질러진각설당이삼륜차에적하된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 가구를질구하는조화금련.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저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련한해후에애련하는나)

사각이난케-스가걷기시작이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지에-타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빠이.

바깥은우중. 발광어류의군집이동.


시가 난해한 관계로 첫 구절부터 차례로 해석하지 않고, 이상이 움직인 동선을 따라가며 방문 목적과 연관된 시어를 먼저 골라냈다. 시를 보면 이상은 백화점에 들어선 후 옥상정원, 식당(4층), 라디에이터 근방(1층), 마지막으로 비 내리는 시내라는 동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 이상이 라디에이터 근방에서 ‘승천하는 굿바이’로 표현한 부분은 일행과 헤어지는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헤어지는 상황이 기분 좋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는 일단 식당(4층)으로 추정한다. 옥상정원으로 올라간 부분에서 ‘시계문자반 XII에 내리워진 두 개의 침수된 황혼’은 약속시간이 12시이며 이상을 포함한 2인은 당일의 약속이 부담스러운 일정이어서 침수된 황혼처럼 힘든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가정하니, 라디에이터 근방의 헤어지는 기쁨은 시의 흐름상 처음 설정한 가설에 부합했다. 식당에서 각설탕이 차례로 삼륜차에 투하되는 장면을 세 잔의 커피에 설탕을 넣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이상 일행과 만난 사람은 군용장화를 신은 일본군 장교이며 테이블에 모두 3인이 앉아 있는 것이다. 이상의 일행 2인과 일본군 장교를 포함한 3인의 만남이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4층 식당에서 12시에 있었다는 상황을 설정하고 시의 중요한 부분을 차례로 살펴보겠다.

‘4각이 난 케이스가 걷기 시작이다’는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가는 상황을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공학을 전공한 김지우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한 『근대 사회와 그 속의 자기 자신을 진단하는 지식인-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 중 ‘AU MAGASIN DE NOUVEAUTES’를 중심으로(교신 저자: 기초교육학부 이수정 교수)』 논문은 사각이 난 케이스를 엘리베이터로 설명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내려갈 때 순간적으로 바닥이 없어져 떨어지는 느낌이 발생하는데 엘리베이터에 익숙하지 않던 시대라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는 순간을 끔찍한 일이라고 표현했다는 생각이다.

‘위에서 내려오고 밑에서 올라가고…’ 부분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는 과정에 엘리베이터가 교차하는 과정이나 에스컬레이터의 움직임 등과 연계한 해석이 가능하다. 오르내리는 운행상태와 시승 느낌까지 표현한 엘리베이터는 시의 흐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이 개장한 1930년은 미국의 뉴욕 맨해튼에서 102층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건설 중에 있었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1929년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로 사회의 첫발을 내디딘 이상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에 설치된 두 대의 엘리베이터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설치된 엘리베이터와 동일한 회사인 미국의 오티스사 제품이다.

오티스 사의 엘레베이터의 원리 (제공=이창호)

고층빌딩의 역사는 엘리베이터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고층빌딩을 걸어서 오르내려야 하니 무작정 건물의 높이를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이 건축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엘리베이터의 역사와 원리는 중요한 내용이었을 것이고, 102층의 초고층 빌딩의 핵심 시설 중 하나인 엘리베이터는 끊임없이 진보하는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주목할 점은 혁신적인 철골구조의 공법으로 1929년 공사를 시작해서 1년을 조금 넘겨 1931년 개장했다는 사실이며, 이는 당시 엄청난 사건이었다. 참고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비슷한 높이로 약간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크라이슬러 빌딩은 4년이 넘는 건축기간이 소요됐다.

시의 내용 중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부분은 당시 전 세계에  엘리베이터를 판매하던 오티스사의 상징마크와 동일한 묘사이다. (사진참조) 현재 오티스사의 상징마크는 바뀌었지만 오티스사 100년을 기념해 만든 기념책자에 나온 상징마크는 경위도가 표시된 지구본 모양을 평면적으로 디자인한 형상을 사용했다. 이상은 미쓰코시 백화점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티스사 지구 모양의 상징물을 보며 조선을 지배하는 일본을 넘어 서구 현대문명의 엄청난 진보를 생각한 것이다.

오티스 사의 상징 마크 (제공=이창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선 뉴욕 맨해튼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세계의 이주민이 몰려들던 곳이다. 맨해튼은 섬의 특성상 공간 확대에 대한 한계점이 있으나 그 한계를 고층빌딩 건설로 극복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세계 최고층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전망대는 뉴욕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가 됐고 당시 신혼여행객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비행기가 대중화되기 이전 여객선이 중요 운송수단 중 하나였던 시대에 바다 건너 뉴욕으로 오던 사람들이 육지 가까이 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맨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이니 세계 최고층 빌딩은 이상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세계인의 관심사였다.

옥상정원에 올라간 부분에서 ‘만곡된 직선을 질주하는 낙체공식’은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인간의 시선을 설명하고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멀리 수평선을 보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 우리가 보는 수평선은 직선으로 보이지만 지구는 둥글어서 만곡된 직선이며 멀리 보이는 눈높이의 수평선도 실제로는 아래를 보고 있지만 우리가 착시현상으로 눈높이처럼 느끼는 것이다. 당시 이상은 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조선의 도시 경성에서 비록 점령국 일본의 기술로 만든 4층 건물 옥상이지만 세계로 눈을 넓히며 미래를 생각하는 꿈 많은 청년이었음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시의 앞부분 ‘거세된 양말’은 백화점에 진열된 스타킹으로 해석되지만 당시 조선의 모습을 이상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선의 전통 양말은 버선이며 버선에는 버선코가 있는데 코가 잘린 모습의 버선을 거세됐다고 표현한다. 이는 봉건시대 조선에서 상투를 틀던 성인 남성의 상징이 단발령으로 잘리게 됐던 모습을 동시에 연상시킨다. 500년 조선을 지배하던 사대부 세력은 상투가 잘리고 버선코도 거세된 힘없는 무리가 됐다. 이상은 식민지 조선에서는 많이 배우고 똑똑한 지식인이지만 오늘 총독부 하급관리의 위치에서 일본군 장교를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 부분은 사각형 케이스인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사각형 통로, 통로를 둘러싼 사각형의 벽, 사각형의 건물 등을 역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각이 난 원운동의 사각이 난 원운동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것은 승객이 보기에는 모두 직선운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기계장치는 회전운동이 대부분이며, 회전운동을 축으로 한 피스톤 운동 등이 변환되어 엘리베이터의 직선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초고속 엘리베이터 작동 원리를 설명한 유튜브 영상 (제공=이창호)

이상은 건축무한육면각체 외에 과학이론과 연관해서 광선의 속도 등을 언급하며 우주가 확장하는 빅뱅이론의 초기 이론을 묘사한 시도 썼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은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의 움직임을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고, 이를 근거로 엘리베이터보다는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에 두고 설명하는 연구도 있다. 굳이 반박할 내용은 아니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 함께 움직이는 균형추는 엘리베이터와 로프로 연결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로프에는 대각선 방향의 장력이 걸린다. 따라서 엘리베이터의 운동을 표현했을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의 설명을 마치고 백화점 내부의 풍경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겠다. ‘마루세이유의봄을해람한향수, 空中에鵬遊하는Z伯號’는 백화점 내부의 풍경을 묘사한 부분이다. 백화점과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는 소재이지만 Z伯號는 비행선을 의미한다. 당시 백화점은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의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과학문명의 첨단 기술을 선보이는 장소이기도 했다.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은 일상적인 판매활동 외에 전시 및 박람회를 개최했다. 노혜경의 『일본 백화점계의 조선 진출과 경영전략』이라는 논문에 보면 다음 내용의 전람회가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개최됐다.

육군 신병기 전람회 1932.3
경성의 어제와 오늘 전람회 1932.8
이토 히로부미공 유묵 유품 전람회 1932. 10
조선인삼에 관한 전람회 1933.3
전기는 나아가고 전파는 뛰어간다 전람회 1933.5

위의 내용처럼 이상이 미쓰코시 백화점을 방문했던 시기에도 다양한 영역의 전람회 등이 개최되고 있었다. 백화점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박람회 등을 개최한 것은 아니며, 이는 백화점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가 있다. 이 시의 불어 제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간략히 설명한다.

미국 출신의 백화점 사업가 해리 고든 셀프리지는 영국으로 건너가 1909년 영국 런던의 옥스포드가에 셀프리지 백화점을 개장한다. 셀프리지 백화점은 새로운 광고, 영업 전략을 가지고 개장했으며 개장한 날로부터 백화점으로 호기심에 찬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으나 구경꾼이 모두 고객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당시 영국 런던의 백화점은 상류층이 물건을 구매하는 곳이었으며 하층민이 이용하는 매장은 따로 있고 소매점이 사회 계층별로 구분돼 존재했다. 셀프리지는 백화점을 모든 계층이 이용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 했고 주 고객층을 여성으로 상정했다.

기존의 영국 백화점의 경영전략과 확연히 구분된 전략을 세웠던 셀프리지는 프랑스 비행사 루이 블레리오가 1909년 7월 25일 영국해협 횡단에 성공하자 그 비행기를 가져와 셀프리지 백화점에서 전시행사를 갖는다.(사진참조) 이 전략의 성공으로 백화점은 문정성시를 이루게 된다. 이후 텔레비전 등 새로운 문물을 소개할 때는 백화점에서 언론사와 대중을 모아 공개행사를 갖는 등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게 된다.

셀프리지는 백화점 1층에 화장품과 향수를 전시해서 냄새를 맡고 발라보는 등의 친화적인 디스플레이와 여성의 활동성을 높이도록 스커트의 길이를 줄이는 패션스타일을 선도하며 패션쇼를 여는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마케팅에도 공을 들였다. 이후 영국에서 여성참정권운동이 일어나 여성시위대가 런던 시내의 공공기관을 포함해 건물의 유리창을 모두 부수는 등의 과격한 양상을 보일 때도 셀프리지 백화점은 무사했다고 전해진다. 셀프리지 백화점은 단순히 상품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문물의 소개와 문화마케팅을 통해 성공했으며 현대의 백화점 경영전략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공=이창호)

셀프리지 백화점의 경영전략은 당시 백화점업계가 모두 벤치마킹했으며 미쓰코시 백화점의 모습 역시 그에 부합한다. 당시 TV도 없고 신문의 인쇄상태가 조악한 현실에서 백화점에 광고목적으로 전시된 비행기 모형이나 갤러리에서 보는 사진은 지금과는 다르게 큰 영향력을 가졌을 것이다. 노혜경의 『일본 백화점계의 조선 진출과 경영전략』이라는 논문에서 경성의 미쓰코시 백화점의 매출은 도쿄 본점 다음으로 높아서 미쓰코시 계열 2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경성점이 4층 건물로 지하매장 포함 연면적 2,300평이었으며, 일본 오사카점은 8층 건물 연면적 6,600평이었으나 경성점이 매출에서 앞섰다고 하니 당시 경성점은 조선에서 사회‧문화‧경제적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글의 앞에서 이상이 미쓰코시 백화점을 방문한 목적에 대해서 세웠던 가정을 시의 내용과 함께 다시 살펴보겠다. 시를 보면 이상 일행은 옥상정원에서 4층 식당으로 이동한다. 이길훈의 『미쓰코시 백화점의 설립과 경성 진출』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지하 1층은 restaurant, 4층은 dining room, 옥상정원은  음료를 파는 곳이 있어서 만남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 곳이 모두 3개이다. 백화점 전체적인 구조와 위치를 보면 4층 식당은 그 중에서 정찬을 하는 고급스러운 장소로 생각된다.

‘검정잉크가엎질러진角雪糖이三輪車에積荷된다’는 구절은 상당히 난해한 내용이다. 책 『커피컬쳐 (최승일 저)』에 ‘카페 로얄’이라는 나폴레옹이 즐겨 마신 커피의 제조법이 소개돼 있다. 카페 로얄은 커피에 설탕을 첨가하는 방법으로 스푼 위에 각설탕을 얹고 브랜디(독한 술의 일종)를 설탕에 흘린 뒤 불을 붙여 녹은 설탕이 커피 잔으로 떨어지게 하는 방법으로 만든다. 『커피컬쳐』의 카페 로얄의 제조법에 브랜디와 압생트가 같이 언급돼 있다. 브랜디는 통상 갈색이며 브랜디를 각설탕에 얹으면 흑설탕처럼 갈색으로 변한다.(사진참조) 압생트는 브랜디보다 훨씬 알코올 함량이 높은 술로 사진과 같이 녹색, 푸른색 계열이며, 특히 화가 고흐가 즐겼던 술로 유명하다.

이상 일행이 식사를 마친 후, 백화점 식당에서 바리스타가 디저트 음료로 커피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고급 커피문화를 체험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이상은 바리스타가 스푼 위 각설탕에 독한 술을 부은 다음, 불을 붙여 녹은 설탕을 커피 잔에 차례로 떨어뜨리면서 카페 로얄을 만드는 과정 중 테이블 위에 모아진 커피 잔 3개를 삼륜차로 묘사한 것이다.

(제공=이창호)

‘시계문자반 XII아래 두 개의 침수된 영혼’은 조선총독부 산하 건축과의 관리로 이상과 그의 상사로 추정된다. 1930년 이상이 연재한 소설 『십이월십이일』에 세 번에 걸쳐 의주통 공사장에 있으면서 쓴 글이라고 밝힌 사실을 보면 현장 파견업무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이 1929년 근무를 시작했으니 식민지라는 위상에서 이상의 지위를 감안하면 조선총독부 건축과 상급자와 함께 일본군부에서 발주한 공사와 관련된 일로 군의 담당 장교와의 약속장소에 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상 일행의 백화점 방문은 시가 발표된 1932년 7월 이전의 사건이니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일본은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1932년 3월 만주국을 세웠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대륙진출 및 확장을 위한 교통망의 확대와 보급처의 역할을 위해 많은 공사가 있던 시기이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총괄하던 중추기관이다. 1932년 5월 15일에는 일본제국 해군 내 극우 청년 장교를 중심으로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수상을 암살하는 소위 5.15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은 정치권이 일본 군부를 통제하기 어려워 만주사변을 군부가 독자적으로 벌이고 정치권이 이를 사후 승인하는 등 군부는 위험한 야망을 숨기지 않던 시기이다. ‘군용장화에 짓밟힌 명함’이라고 하는 내용은 이상이 총독부 건축과 상사를 수행해 일본 군부의 건설 분야 책임자와 만났고 공사현장을 지휘하는 건축전문가의 설명이나 기술적 어려움은 일본군 장교의 강압과 명령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구에질구하는조화금련’은 자동차가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조화금련’은 풀이하면 인공으로 만든 금속 연꽃을 말하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연꽃문양과 자동차 바퀴의 모습이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이 졸업한 보성고보는 1924년 재단법인 조선 불교 중앙교무원이 설립자가 됐다. 이상의 다른 시에서 불교의 역사적 사건과 맥락에서 보아야만 이해가 되는 내용도 나온다.

(제공=이창호)
마곡사 대웅전의 백의관음보살, 연꽃을 밟고 서 있다. (제공=이창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불교의 그림에는 연꽃을 밟고 세상에 내려온 관음보살이나 수레바퀴 문양을 발바닥에 가진 부처님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많다. 가구에 질구하는 조화금련은 이상이 식당 창을 통해서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며 과학의 발달은 과거 종교적인 신화에서 볼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가능하게 하지만 인류를 평안하게 만들기보다 혜택이 소수에 집중되고 약소국에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을 표현한 대목으로 보인다.

이상의 상사가 장교에게 면박을 당하는 상황에서 동병상련의 이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내면상태를 표현한 해석 역시 가능하다. 건설 책임자인 상사와 이상은 공사 현장에서 경성으로 불려왔고, 이상 일행은 오늘의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고, 식당으로 갔을 때 일본 군부의 장교를 수행하고 온 총독부 건축과 일행이 있었으며 그는 처음 만나는 이들의 만남을 안내한 후 밖으로 나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자웅과 같은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안내하고 간 사람이 이상과 매우 친한 조선인일 가능성도 있다. 그날 약속된 일정은 일본 군부가 발주한 공사와 관련해 일본군 장교로부터 질책 또는 무리한 요구를 받는 부담스러운 자리였던 만큼 상당히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약속시간은 12시이고 이상을 포함한 세 사람은 식사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으며 검정잉크가 엎질러진 각설탕의 묘사에서 1930년대 초반은 볼펜이 없던 시절이라 기록을 하는 사람은 잉크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했으니 이상은 잉크병과 펜을 사용하는 기록자의 역할을 맡는 상황에서 술을 이용해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잉크를 연상했을 것이다. 기록이 필요한 공식적인 자리였다는 추정 또한 가능하다. 마지막의 ‘우중 발광어류 군집이동’은 빗속에서 라이트를 켠 전차, 버스, 자동차 등을 타고 사람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에 연구자들의 생각이 일치한다. 이상은 거리에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자동차는 라이트를 켜고 다녀야 되는 정도의 시간대에 밖으로 나왔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상의 감정을 날씨와 연계시켜 표현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시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이상은 백화점에 설치된 오티스사의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1년여의 짧은 기간에 102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을 올리는 현대과학의 진보를 직시한다. 백화점에는 서구문명의 새로운 상품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지만 거세된 양말을 통해 나라도 잃고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표현한다. 옥상정원 원후를 흉내 내는 마드무와젤은 백화점 내의 마네킹에 입혀진 옷이나 패션스타일을 따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내용이니 아직은 서양의 모습을 흉내 내는 정도로 일본의 수준을 묘사한 장면으로 생각된다.

이상은 군용 장화에 짓밟힌 명함을 통해서 일본이 군사력을 앞세운 나라로 진정한 학문과 과학의 발달을 추구하는 문명국은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상은 서구의 발달된 과학문명을 빨리 습득하면 비록 미개한 조선이지만 아직 높은 수준까지 오르지 못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에 과학기술과 관련된 표현이 많다고 생각한다.

1931년 10월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삼차각설계도』는 총 7수의 시로 이루어졌는데 주로 과학, 수학, 기하학을 소재로 한 시이다. 여기에 포함된 시 『선에관한각서 1』은 빛의 속도(초속 30만km)를 언급하며 사람이 빛의 속도를 넘는 발명을 하고서 두 배, 백 배, 천 배, 만 배의 속도로 빛을 쫓아가면 태초의 빛을 볼 수 있다는 과학이론을 표현했다. 이는 현대의 빅뱅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설명이다.

빅뱅이론의 모태가 되는, 즉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이론은 1927년 벨기에의 천문학자이며 사제였던 조지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가 최초로 제안했고, 허블이 우주에서 오는 빛의 적색편이를 관찰해 우주팽창론의 첫 관측 증거를 1929년 발표했다. 이상의 시 『삼차각설계도』는 이상이 당시 최신의 과학이론을 접하고 있었으며 이해도가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선에관한각서 5』의 내용에서 ‘미래로 달아나서 과거를 본다… 확대하는 우주를 우려하는 자여… 광선보다도 빠르게 미래로 달아나라’의 부분은 현대인이라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등 높은 수준의 과학적 소양이 있어야 접근이 가능한 시이다.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아이작 아시모프 등이 쓴 과학교양서가 익숙한 수준의 독자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필자가 빛과 시간에 대한 궁금함에 빠져서 스티븐 호킹의 책을 반복해 읽으면서 수년간 함께 읽은 책들이 있다.(사진참조) 이상은 과학이 진보한 시대의 필자가 과학이론을 포함한 다양한 책을 읽어서 얻은 빛과 시간에 대한 지식보다 훨씬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시 『삼차각설계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인력거가 시내의 중요 교통수단의 하나인 시대에 살던 사람이 과학이론이 하나씩 증명되고 통합적 체계를 이루어가는 과정 중 서구의 과학자들이 과학과 철학적 주제를 묶어 연구한 책을 내기도 전에 어떻게 이처럼 시에 압축적으로 표현했는지 필자는 이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상의 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점 중에서 가장 큰 이유가 상당한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많다는 것이다. 이상은 쇄국정책 때문에 조선이 서구의 과학문물을 배우지 못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계몽운동에 힘썼던 당시의 지식인과 같은 시대정신 속에서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

(제공=이창호)

이상이 『조선과 건축』에 발표한 일본어 시를 통해 일본제국에 대한 반발을 담은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상 평전』을 쓴 김민수는 머리말에서 “시의 본뜻을 이해하고는 이상의 처절한 삶에 전율하고 눈물이 났다.”고 표현했다. 아마도 김민수는 이상이 일본을 통해 빠르게 진보하는 과학문명을 배우는 입장에서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수직의 신분으로 배움의 유리한 조건과 친일 협력자로서의 이중적 존재의 고통 속에 있는 그의 외로운 삶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필자도 이상의 작품과 연구논문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기도 하고 여성과 관련한 성적인 관점에서 이상의 시를 바라보는 연구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으나 김민수의 『이상 평전』은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으며 필자의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상이 건축을 전공하고 작품에 과학과 문학을 통합해 썼기 때문에 단순히 문학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일부 작품은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과학을 전공한 학생이 이상 연구논문을 쓰고 문학계가 이러한 연구를 읽고 통합적인 사고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며, 묻힐 뻔한 원고를 찾아 이상 전집을 만드는 등의 수많은 연구자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김다언(작가)

김다언  gcicwelfa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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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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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rugi 2019-12-11 14:38:48

    선생님의 건강하고 좋은 글에 기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삭제

    • kygdc 2019-12-07 09:16:56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삭제

      • serenitt 2019-12-06 22:50:16

        이창호원장님! 대단한 식견을 지니신 치과의사이십니다. 작가나 문학자가 되셨어도 매우 탁월하신 업적을 남기셨을 것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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