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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오르한 파묵터키의 에밀 졸라냐 아니면 안병직이냐.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6.12.10 00:00

 

   

2006년 10월 12일, 고의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터키인들에게 두 개의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첫번째 사건은 터키의 유명한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이 터키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고, 두번째는 프랑스 의회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저질렀다고 하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정하는 자에게 45000 유로 벌금을 매기거나 1년 징역을 받게 한다는 새 법안을 10월 14일 표결에 부친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실지로 이 법안은 10월 14일 찬성106표, 반대19표로 프랑스 의회를 통과했고 프랑스 상원과 대통령 자크 쉬라크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이나 터키는 이 법안이 승인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터키인들에게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주고 치욕감과 분노를 심어준 사건들이었다.



도대체 왜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을 수상하자 터키의 모든 신문 논평가들과 국민들은 그에게 축하와 격려가 아닌 혹평과 분노의 글들을 쏟아 냈을까?

왜 터키의 유명한 작가들조차 오르한 파묵의 수상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을까? 심지어 유럽 챔피언 리그에서 우승한 터키 축구 프로팀과 유로비젼에서 1위를 차지한 터키의 한 대중 가수에게는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공식 축하 메세지를 보냈던 대통령도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오르한 파묵의 노벨상 수상은 대부분의 터키인들이 믿고 주장하고 있듯이 프랑스 의회의 새 법안 사건과 맞물려있으며 이것은 정말로 유럽이 터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세지일까? 터키인들은 오르한 파묵에게 준 것은 노벨 문학상이 아니라 노벨 정치상이라 믿고 있다.



요즈음 터키인들에게 엄청난 미움을 받고 있는 오르한 파묵,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비록 유럽에서는 터키의 움베르토 에코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대부분의 터키인들이 의심하듯 과연 그는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정체성을 찾지 못해 엄청난 정칟사회 혼란을 겪고 있는 터키라는 나라에서 오르한 파묵은 '나는 고발한다'를 외치던 에밀 졸라인가, 아니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나라 이름을 판 한 매국노에 지나지 않는가.


이 두 사건이 왜 이토록 터키인들의 분노를 샀는지, 오르한 파묵이 왜 이토록 터키인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오르한 파묵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간략하게 터키의 과거를 훑어보는 게 좋을 듯 싶다.


터키의 유럽을 향한 짝사랑은 터키 공화국의 역사와 함께 한다. 한때 모든 유럽을 공포에 떨게하며 위협적이었던 오스만 제국은 18세기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강국 프랑스와 영국은 오스만의 영토를 탐내고 제국주의 특유의 분리해서 지배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아랍인을 선동했다.

 18세기부터 끈질기게 반란과 폭동으로 오스만 제국의 동부 전선을 괴롭혀온 아랍인을 터키인은 배신자로 여겼다. 그리하여 터키는 공화국 건설과 함께 이슬람 세계와 중동과 절교를 선언하며 서쪽으로 등을 돌렸다. 새로 건설한 공화국에서 개혁은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스만 시대부터 중동지역 아랍인들과 터키인들을 연결하던 이슬람에게서 등을 돌리고 철저히 세속화 정책과 동시에 친 서구화 정책을 펼쳐 나갔다. 냉전 시대 트루만 독트린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도움을 받고 NATO에 가입하기 위해 미국 다음 큰 규모의 군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7년에 유럽연합에 가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럽연합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터키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터키와 역사적인 앙숙인 그리스와 아르메니아가 방해 공작한 영향도 있겠지만, 유럽연합 자체 내에서도 싸이프러스 문제, 쿠르드족 문제 그리고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이유로 들며 50여 년 동안 터키인들의 자존심을 마구 짓밟아 뭉갰다. 이에 터키인들도 근래 들어 유럽을 향한 짝사랑에 회의를 느끼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세 가지 문제는 유럽 사회에 어울리고 싶어하는 터키인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는 국제사회와 터키 내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들로 떠올랐다



"우리는 아르메니아인 100만 명과 쿠르드족 3만 명을 학살했다."


2005년 10월 오르한 파묵은 스위스의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한 오르한 파묵의 이 한 문장은 대통령부터 시골의 아낙네들까지 7천만 터키인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모든 미디어들도 하나같이 파묵을 영혼을 판 사탄에 비유한 모습은 중세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했다. 급기야 파묵은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관련하여 국가모욕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야 했고 재판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천 명의 시민들은 그에게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터키 검찰은 재판 직전 기소중지처분을 내렸다. 검찰이 태도를 바꾼 것은 세계 각국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가입을 협상 중인 터키 정부는 파묵의 재판에 강행할 경우 불러올 유럽 쪽의 거센 비난여론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90여 년 전, 19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는 종교세를 내면 이민족과 기독교도 자유를 보장하였기에 제국 영토 곳곳에는 아르메니아인을 포함한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침입한 서구 열강이 심어놓은 민족주의에 심취한 다른 민족들은 오스만 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 오스만 제국을 분리하려던 서구 열강국가들은 반란을 더 부추기고 선동하고 도움을 줬다. 특히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프랑스와 비밀협정을 맺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곳곳에서 발생하는 반란에 골머리를 앓던 오스만 중앙 정부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프랑스와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막기 위해 소아시아에 퍼져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모아서 1915년 시리아와 이라크로 대거 강제이주를 시켰다. 이동 중 절반 이상 아르메니아인들이 배고픔과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고의적인 대학살이었고 오스만 정부의 대학살로 약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공식발표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정부는 터키 정부에게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소련의 붕괴 이후 아르메니아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터키 정부는 오스만 역사에서 대학살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고문서와 역사 학자들의 발표를 근거로 아르메니아와 국교를 단절했다. 국제 사회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막강한 로비력으로 서구 사회에 접근했다. 그 중에서 예전부터 비밀협정으로 친교를 맺어온 프랑스와 러시아는 일찌감치 아르메니아와 한 편이 되어 터키 정부를 비난해 왔다. 18세기부터 오스만 정부를 괴롭힌 아르메니아는 오늘날까지 터키의 행보에 끝없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과 한 패가 되어 온 서구 유럽국가들도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을 들먹이면서 터키의 유럽 진출을 막으며 자존심을 마구 후벼파고 있는 것이다. 이에 터키인들의 반 서구 감정과 아르메니아를 향한 악감정은 더욱 격렬해져만 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6년 오르한 파묵이 노벨상 수상자로 확정 발표한 날 프랑스 의회에서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을 인정하는 법을 표결에 붙인 것이다. 분개한 터키인들은 유럽인들이 오르한 파묵을 작가로 높이 평가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 것이 아니라 터키에게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를 주기 위하여 이 상을 수여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오르한 파묵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터키에서는 반서구 감정과 더불어 파묵을 향한 악감정도 더욱 격해졌다.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1953년, 토박이 이스탄불 부르조아 가정에서 태어나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부유한 환경 덕분에 그의 책에서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을 쉽게 엿볼 수가 있다. 터키에서 명문 중에 명문인 로버트 칼리지( 명문 사립고에서 영어로 교육을 받은 덕분에 오르한 파묵은 자신의 글들을 영어로 번역하는데 있어 가장 뛰어난 번역가를 자신이 직접 고르고 자신이 직접 번역을 하기도 한다.)를 졸업했다. 그림에 소질을 보이던 파묵은 이스탄불 공과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나 화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 이후 글쓰기에 몰두한 파묵은 지금까지 8권의 책을 출간했고 터키와 해외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파묵의 책들은 전 세계 약 28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오르한 파묵의 명성을 세계에 드높인 책 중 하나인 '내 이름은 빨강(My name is Red)'은 15세기 오스만 제국시대에 세밀화 화가들이 서양 문명과 페르시안 문명을 접하면서 받는 문화적 충격과 가치관의 갈등을 그만의 언어로 이야기한 걸작이다.



이제까지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은 주로 서구인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저명한 몇몇의 역사 학자들의 사료를 통해 대학살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지만 아직도 학계에서나 정계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정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민감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파묵이 양심선언을 한 진정한 지식인인지 아니면 그저 유럽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한 마디를 던진 치졸한 매국노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한 마디로 파묵은 터키 내에서는 매국노로 치부되고 이에 따라 그의 문학적 성과마저도 터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실지로 파묵이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에 파묵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있다.



무너진 오스만 제국 위에 급격히 세워진 터키 공화국은 1923년 건국 이후 현재까지 정치적 혼란과 종교 문제로 이데올로기 충돌을 겪으며 내부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는 마치 정체성 찾아 우왕좌왕 헤매는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한다.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오르한 파묵과 같은 소설가가 문학적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치적 문맥 속에서 평가절하 되고 있다. 터키 정치는 아직도 여러 이데올로기에 옭매여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지 못한 풍토에서는 창의가 창작 될 수가 없다. 그런 풍토에서 창의적인 작가가 그의 정치적 신념이 어찌 되었든 간에 문학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정치적 잣대로 평가받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다.


***이상은 올해 노벨상 수상자 파묵에 대해 질문하자 터키에서 정치학 공부하는 제 딸이 e-mail로 보내온 답글입니다. 제 딸은 파묵의 글을 즐겨 읽었습니다.



딸 글의 원래 제목은 "터키의 에밀 졸라냐 김완섭이냐"였는데 김완섭이란 인물은 아무래도 격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안병직으로 바꾸었습니다.
안병직 잘 아시지요? 얄팍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일제 통치를 합리화하고 정신대 할머니를 모욕하는 안병직과 그를 추종하는 일부 서울대 학자들이 요즈음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깽판을 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인하면 벌금이나 징역형을 때린다는 프랑스도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심히 의문이 갑니다. 2차 대전 후 베트남을 독립시켜 주지 않고 전쟁을 벌이면서 학살을 자행했고(어찌보면 도덕성 없는 전쟁 자체가 학살이며 테러입니다), 베트남전쟁에서 패주한 뒤에도 그 군대를 끌고 알제리로 가서 독립운동을 탄압하면서 몇 백만을 학살한지 모릅니다. 자신들의 역사를 외면하는 몰염치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아르메니아 학살이 사실이라면 미국도 인디언을 고향에서 추방하고 황량한 땅으로 이주시키면서 자행한 죄악에 대해서도 터키와 마찬가지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터키에서 소용돌이치는 오르한 파묵의 파문을 바라보면서, 6·15선언으로 노벨상을 받은 DJ를 이런 저런 이유로 올바르게 대접 못 하는 우리 정치 풍토도 매우 안타깝습니다.

일단 '내 이름은 빨강'이란 책을 한 번 읽어보세요.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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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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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이비k 2007-01-26 02:50:00

    요즘 내이름은 빨강이란 책에 빠져 있습니다. 읽으면서 터키의 문화와 세밀화에 문외한이라 자료를 찾아가면서 읽고 있죠.
    자료를 찾다보니 오르한 파묵의 한 마디로 자국의 비판적 시선이 뭔지 궁금했는데
    여기와서 궁금증이 풀렸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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