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 힘내서 '제2도약' 이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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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기! 힘내서 '제2도약' 이루길…"
  • 이현정 기자
  • 승인 2007.01.09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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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6년 건치인생 마침표. '터줏대감 조순자 부장'

 

지난 16년동안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를 묵묵히 뒷받침해주던 조순자 총무부장이 작년 12월 31일자로 퇴사했다.

지난 91년 3월 건치에 입사한 조순자 부장은 말 그대로 18년 '건치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그가 20대와 30대를 함께 했던 지난 16년간의 건치 인생을 되돌아 본다.
편집자

건치와의 인연

"원래는 전북 김제시에서 기독교청년회(이하 기청)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김인섭 선생(건치 13대 회장)도 기청 활동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연이 돼 입사하게 됐죠."

기청은 기독교 내에서도 통일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진보적인 단체 중 하나다.

조순자 부장은 처음에는 기청 활동을 계속하면서 보건의료운동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건치 입사 제의에 선뜻 응했지만, 처음부터 보건의료운동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단다.

그가 입사하던 해인 1991년. 당시에는 건치가 지금과 같이 강당시설이 갖춰진 회관이 아니었다. 당시 건치는 남부터미널 근처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총회나 대형 행사가 있을 때마다

한가득 보따리를 싸서 이곳 저곳을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다고 한다.

"당시에는 강당이 없어서 숭실대 사회봉사관, 신협 강당 등을 빌려 보따리를 싸가지고 다녔어요. 그래서 현재의 서초동으로 이사왔을 때 '아! 드디어 이젠 더 이상 보따리 안싸도 되겠구나' 하고 기뻐했던 게 기억에 납니다."

대단했던 초창기의 열정

"1994년 건치신문이 창립됐을 때 신문을 발행할 때마다 모든 임원이 모여서 새벽 2∼3시까지 발송작업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초창기에는 그만큼 임원들의 열정이 대단했어요."

당시에는 건치 재정이 충분하지 앟아, '발송비'를 아낀다고 모든 임원들이 그런 무식한(?) 방법을 택했단다. 돈 대신 열정, 몸으로 때운 것이다.

특히 초창기 '사무국장'은 상근활동가 보다도 더 막중한 역할을 해야 했다. 건치의 모든 사업을 총괄하고 진두 지휘했던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 사무국장을 오래 맡았던 배강원 선생과 김인섭 선생이 조 부장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92년 여름이었던가? 송학선 선생의 아버님 집인 가평 부근 호명리로 모든 임원이 MT를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영재 선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송학선, 유영재, 김인섭, 배강원 등등…. 모두들 요즘에는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 건치의 원로가 돼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건치가 있었을 터.

조 부장은 기억에 남는 건치 선생 3명을 더 지목한다. 한영철 선생과 김광수 선생, 성열수 선생. 그들은 일명, 건치의 '3대 시어머니'로 통한다.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항상 잔소리를 하며 야단을 치곤 했죠. 그래서 후배들이 많이 어려워했지만, 반면 자신들이 앞장서서 실천했기 때문에 존경했던 것같아요."

건치의 터줏대감

조 부장은 '건치의 터줏대감'으로 통했다. 그만큼 오랜기간 건치에서 일한 것도 있지만, 건치의 모든 사업들이 그를 거치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 분화가 됐지만, 초창기만 해도 임상교실, 건치신문, 서울경기지부,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남북특위 등 건치의 모든 사업이 중앙에 집중돼 있었다. 조 부장은 초창기 건치신문 기자 일도 했으니, 어찌 보면, 필자의 선임기자였던 셈이다.

또한 조 부장은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와 30대를 건치와 함께 했다.

건치 상근활동가로 있으면서, 대학도 다녔고, 대학원도 다녔으며, 남편과의 만남도 어찌 보면 건치가 중재했던 셈이다.

"동료였던 이인문 선배를 따라 역사기행을 갔다가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이던 남편을 만나게 됐죠."

건치에 16년간 있으면서 조 부장을 거쳐간 상근활동가들도 수두룩하다.

김용호, 이한주, 원선아, 유한범, 황석지 간사 등등…. 그에게 기억에 남는 동료를 뽑으라니 '이인문, 원선아 간사'를 뽑는다.

건치는 '배움터'이자 '가족'

"오래될수록 '건치의 터줏대감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이 자긍심 보다는 부담감으로 와 닿았습니다."

조 부장은 "년수가 쌓여갈수록 '전문성' 높아져야 하는데…"라는 부담감이 압박으로 쌓여 왔단다. 그래서 과감히 휴식을 선택했다.

"일단 푹 쉴 겁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요즘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당분간 고전 중심으로 사유를 깊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많이 읽고 싶습니다."

사실 그는 막상 "그만 두겠다"는 말을 하고도 '내가 잘 한 것인가' 하는 불안감을 한켠에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새 상근자가 들어온 지도 얼마 안됐고. 지부 정체 등 건치의 어려움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GD 프로젝트 등 변화가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인가도 걱정이다.

조 부장은 "건치는 직장이기에 앞서 배움터였던 곳이었고, 임원들도 고용주가 아닌 건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이었다"면서 "상근자는 무엇보다 '소통'의 역할이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임감'을 갖고 임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어려운 시기! 힘내서 '제2의 도약' 이루시길 바란다"는 조순자 부장. 그도 일정기간 사색 기간을 거쳐 새로운 '제2의 인생'을 만들어 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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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기 2007-01-15 11:21:35
벳남에서 볼수있죠?

우석균 2007-01-13 14:50:06
멀리서만 뵌 것 같습니다만
긴 기간동안 하셨던 수고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하시는 일들도 지금까지 처럼 보람있고 성과있는 일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송필경 2007-01-11 08:27:00
지난 2001년 베트남에서, 기억나시죠?
부화직전 오리알 까먹던 것...털이 숭숭난 알을 굴꺽 드신 것.

누나보다 더 포근한 조순자 부장,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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