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승부수가 또 다시 발동했다.
지난 1월9일 대통령 4년 연임제로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것이 그것이다. 이로써 대통령선거를 1년 앞두고 또 한번 정치권이 커다란 소용돌이로 들어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신당창당 논의로 사분오열되는 것 처럼 보이던 여권이 모처럼 환영 일색이고, 한나라당은 반대의견을 당론으로 밝힌 가운데, 개헌을 받아들이는 것이 대선에서 이기는 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찍 찾아온 레임덕이라는 핀잔을 받던 노무현대통령은 그야말로 하루 아침에 자신이 정치의 중심임을 보여주고 정치판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개헌이 되던지 말던지,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개헌논의 와중에 정작 국민의 생활과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은 순식간에 언론의 관심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개헌에 대한 기사로 온통 신문지면과 인터넷 언론이 도배가 된 와중에, 한미FTA가 2월에 전격 체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있었고, 주한미군사령관 벨은 미군기지 평택이전이 지연되면 '싸울 것'이라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부동산 폭등으로 내 집 장만이 어려워져서 '반값아파트'든 '장기전세'든 주택정책에 대한 논쟁이 벌어져서 모처럼 그래도 정치인들이 '밥값을 하려나'라고 기대를 품었던 서민들은 또 다시 '그들끼리'의 정쟁이 재현되면서 '역시나'를 되풀이 하게 된다.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한 9일은 마침, 민중-진보진영의 상설 연대체를 자임하는 한국진보연대(준)이 발족한 날이기도 하다.
이 진보연대의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한미FTA에 의해 가장 피해를 많이 볼 노동자와 농민과 빈민들의 연대조직이고, 한미FTA에 가장 앞장서서 싸워왔던 민중들의 연대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의 저항과 미국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한미FTA가 결렬되는가 싶더니, 위기라고 여긴 한미 양측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15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6차회담에서 협정문의 골격을 완성한 뒤에 2월에 미국에서 열릴 7차회담에서 타결하겠다고 알려지고 있어 이에 대해 강력히 저항할 진보연대의 발족은 적지않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개헌 논의'가 이 두가지를 동시에 완벽히 묻어버렸다.
민중은 한미FTA에 강력히 저항하겠지만, 언론은 대선주자의 꽁무니 따라다니기와 개헌논의 중계에 올인할 것이고,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한미FTA가 타결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미FTA는 국가의 경제질서와 사회질서를 송두리째 바꾸게 될, 그야말로 '개헌'사안이다. 국회에서, 언론에서, 모든 국민들이 치열하게 논의하고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그것이 하찮은 '대통령 4년 연임제'논의에 묻혀버리게 될 것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87년 6월항쟁을 촉발시켰던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발표 때보다 더 달갑지 않다.
개헌내용이 진정으로 한국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 딛고 가야합니다. 다음 정권에서는 더욱 하기 힘들죠. 대권주자들이 공약하고 가면 된다고 하는데... 순진한 발상입니다. 노통도 공약했고 실천하려 하지만, 이렇게 저항이 심한데, 임기를 줄이면서까지 어느 누가 쉽게 개헌공약 실천하겠습니까?
개헌논의 집어치우고 민생부터 챙겨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어떤 당으로부터 듣던 슬로건과 정확히 일치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