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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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2
  • 이상윤
  • 승인 2007.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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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

 

영어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의 영어이야기를 좀 하려한다.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상사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5년을 살았던 어떤 아줌마가 한국으로 돌아 가서는 사람들 몰래 새벽에 영어 학원에 다닌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5년을 살았으면 영어에 ‘능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대치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


어떤 통계를 보면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 영어라고 한다. 수십년을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도 영어 때문에 애로사항을 느낀다는 것인데 별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30년을 미국에서 살았더라도 한국사람들만 모여 사는 지역에서 – 엘에이 같은 – 한국사람들만을 상대하면서 살아 왔다면 영어가 크게 늘 수가 없다. 물론 영어 단어는 많이 구사한다. 예를 들면 공항에 마중나간다 하는 말을 공항에 라이드(ride)주러 간다고 한다든지, 얘들아 청소좀 해라 하는 말을 얘들아 클린업(clean up)좀 해라고 한다든지, 깜짝이야! 하는 말을 오마이 굳니스! 한다든지… 하지만 그것을 영어가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영어단어를 우리말처럼 자유자재로 쓰게 되는 습관이 되었다고나 할까.(모든 엘에이의 한국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해 없으시길...)

앞서 말한것 처럼 영어는 몇년을 미국에서 살았는가 하는 것 보다도 몇 살부터 영어를 사용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 왔든지, 어떻게 살았든지 간에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던 사람들에게는 영어가 제2의 언어로서 가지는 한계가 항상 남아있다.


나로 말하면 2000년에 미국에 와서 처음 3년동안 레지던트 과정을 하면서 영어가 처음보다 많이 늘긴 했지만 그 이후에 일자리를 찾고 일을 시작 하면서 영어가 훨씬 더 많이 늘은 것 같다.


일단 집을 나와 출근하면 학교와는 달리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고 아침부터 저녁 퇴근시간까지 모든 대화가 미국인 환자, 미국인 스태프들, 그리고 나의 미국인 어시스턴트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보니까 영어가 꽤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내게 노출된 분야 뿐이다. 나는 환자들의 설명을 알아듣고 그들에게 치료계획을 설명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결국 그들이 치료계획에 동의하여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지만 가끔 환자들이 친한 척 한다고 자신의 일상적 이야기나 우스개 이야기를 농담반 속어반 섞어서 하면 절반 이상은 못 알아 듣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환자는 환자이고 의사는 의사이기 때문에 영어 좀 못 알아 들어도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레지턴트를 시작할 때는 내 말을 못알아 듣는 환자들을 보며 조마조마 했지만 이제는 가끔 내 영어를 못 알아 듣는 환자를 보면서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영어가 못 채워진 빈자리에 배짱이 채워진 것일까?)

물론 내가 내 생활의 일정시간을 할애해서 악착같이 영어공부를 죽 해왔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유창한 – 미국인들의 그것에 좀 더 가까운 - 영어를 구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만 살면서도 동시통역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도 있는데 매일 매일 미인회화(美人會話)를 하고 있는 내가 주마가편하는 심정으로 영어에 투자했다면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대로 제2의 언어로서의 영어의 한계도 느끼게 되고 그렇게 투자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치주과 의사로서 환자를 보고, 일주일에 한번씩 치과대학 치주과의 외래교수로 나가서 레지던트들을 가르치고 하는데 별로 어려움을 못 느낀다.


처음 미국에 와서 어려움을 느낄 때는 테잎도 사고 책도 사고 하면서 공부를 하였지만 일단 급한 어려움이 어느 정도 해결되면서 영어에 더 투자하게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죽도록 투자해도 영어가 미국인들처럼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모든 미국인들이 하는 것 – 영어를 한다는 것! – 을 하는 것 뿐인데! 일이든 공부든 할 일이 있고 가족이든 친구이든 같이 시간을 보내야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 다 팽개치고 조금 더(!) 미국사람들처럼 보이려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솔직히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영어는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그것이 현실적이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쨌든 살면서 미국인들과 접촉을 계속하는 한 영어는 조금씩이라도 늘게 되어 있다. 노출되는 만큼, 그리고 필요한 만큼.

이런 문제는 나같이 30살이 넘어 미국에 와서 6-7년 정도 미국에 머문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와서 수십년을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1982년 고등학교 2학년때 미국으로 가족이민을 와서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후 미국의 한 명문 주립대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 미국인 회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K씨는 자신의 영어가 미국사람들의 영어와 다르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이 없다.


본인이 알아듣고 말하는 것에는 불편 없이 살지만 발음이 미국인들의 그것과 분명히 다른 것은 물론이고 특히 글을 쓸 때 한계를 많이 느낀다. 요즘도 가끔 몰랐던 단어를 알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어느날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된 후에 뉴스를 들었는데 그 단어가 생각보다 빈번하게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 것이다. 자신은 뉴스같은 것은 100퍼센트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한다.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아예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들도 있다. 말은 겨우 알아들어도 그것이 어떤 뉘앙스를 가지는 것인지, 사람들이 왜 그 대목에서 웃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한국인 치과의사 K씨는 중학교때 이민을 왔는데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자기는 소아 환자를 보기에 자신이 없다고. 왜인가 하면 중학교때 왔기 때문에 그 이전 나이의 아이들이 쓰는 언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치과의사가 애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겠지만.


심지어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큰 아들의 경우는 유치원에 다니던 5살에 미국에 와서 이제는 speaking in English 정도가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처럼 말하며 thinking in English 를 하는 수준인데도 집에서 부모가 한국말만 쓰다보니 학교에서 가끔 손을 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선생님이 새 단어를 보여주며 집에서 언제 이런 말을 들어 보았는가 하고 질문을 하면 다른 아이들은 언제요 언제요 하며 이야기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그 시간에 가만히 구경만 하게 되는 것이다.

돈들여 해외로 단기 어학연수등을 하면서 사람들은 짧은 시간동안이라도 영어가 늘어날 것을 많이 기대하지만 사실은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영어학습에 대한 기대치와 실제 습득되는 영어구사능력 사이에 일어나는 이런 괴리는 무의식중에 영어를 공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학습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인데 사실 영어는 그 사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의 일부인 언어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특히 생활영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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