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추중하는 우리 정치… 21세기 젊은이의 가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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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추중하는 우리 정치… 21세기 젊은이의 가치는?
  • 송필경
  • 승인 2023.10.11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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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Ⅰ. 20세기의 인물

1
레파 라디치(Lepa Radić; 1925〜1943)는 1941년 나치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을 때 15세 소녀로 빨치산에 합류해 총을 들고 싸우다가 1943년 나치에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치는 레파 라디치에게 공범이 누군지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레파 라디치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우리 민중의 배신자가 아니다. 너희들이 찾는 공범은 내 원수를 갚으러 너희들 앞에 나타날 때 알 수 있다!” 그리고는 공개 교수형을 당했다. 당시 17살이었다.

2
보티사우(Võ Thị Sáu; 1933〜1952)는 14살 어린 소녀로 프랑스군에 저항하는 게릴라 부대 ‘베트민’에 자원입대했다. 예의 바른 성격이었으나 독립심이 강했다. 또래의 소녀보다 키가 커 조숙해 보였다.

1947년 프랑스 군인들에게 수류탄을 던져 사상자를 냈으나 잡히지 않았다. 1950년 현지 총독 사무실에 수류탄을 던졌으나 불발돼 잡혔다. 잔인한 고문을 받고도 조금도 자비를 구하지 않았다.

사형 판결이 나자 “식민주의는 물러가라, 저항군은 승리하리라”고 외쳤다. 프랑스 법은 미성년자나 여성의 처형을 금지했는데도 먼 바다 외딴 섬 꼰다오로 끌려가 1952년 사형당했다. 19살이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여유롭게 길가의 흰 히아신스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았다. 총살대에 묶여서도 “호찌민 만세”를 외쳤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누나 보티사우’로 부른다. 우리가 유관순 이름 뒤에 누나를 붙이듯이.

Ⅱ. 고전(古典)에서 찾아 본 21세기 우리 젊은이 유형

1.
양주(楊朱; BC 기원전 440? ~ 360?)는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다. 명분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는 사상을 제시했다

양주는 사회적 ‘이익’이라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이익’이 하나의 숭고한 목적이 되면 자신의 소중한 삶을 하나의 수단으로 폄하한다고 봤다. 양주는 국가가 제공하는 어떤 이익이나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원했다. 요즘말로 하면 철저한 아나키즘 사상이다.

한 개의 터럭을 뽑음으로써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해도 뽑지 않겠다. 천하를 내게 준다 해도 받지 않겠다. 사람마다 한 개의 터럭도 뽑지 않고,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천하는 절로 다스려질 것이다.

“지나친 명분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고, 남을 돕든 침해하든 간에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했던 양주는 진정한 개인주의자였다.

2.
한비자(韓非子; 기원전 약 280∼233년)는 전국시대 사상가로서 인간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 법가학파의 대표 인물이다.

독재군주가 권력으로 신하와 민중을 통제해서 부국강병을 이루는 이론과 방법을 설파했다. 일반적으로 전제 군주정치 아래서 민중은 이해타산에 빠진다. 자신에게 이익과 해로움을 계산해서 왕이 주는 상과 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라 국가정책에 참여한다.

이기주의자는 자신에게 이롭다면 독재 군주의 명령도 듣는 사람이다. 한비자는 양주의 개인주의를 경계하고 실리적 이기주의를 주장했다.

Ⅲ. 역사는 돌고 도는가?

요즘 사회적인 명분과 가치를 쫓는 20세기형 젊은이를 보기 힘들다. 오히려 2천년도 훨씬 지난 기원전 전국시대 양주와 한비자란 인물의 옛 사상을 단순히 이해하기보다 색다르게 재해석하니, 21세기 우리 젊은이들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젊은이들 중 대부분은 사회적 풍요 속에 개인적인 빈곤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다. 천정부지의 집값과 일자리 부족에 따른 취직걱정이 가장 큰 근심이다. 때맞은 결혼과 출산은 마음에 담아둘 여유조차 없게 되었다.

때문에 젊은이들은 양주처럼 터럭 한 개 뽑아 천하가 이롭다 하더라도 뽑지 않을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있거나, 강력한 권력 설사 독재권력에 의지해서라도 이해타산을 맞추려고 하는 이기심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Ⅳ. 젊은이에 필요한 장비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현상은 때에 맞물린다는 뜻이다.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얇은 옷을 입는다는 이치다. 응병여약(應病與藥)은 병에 따라 적합한 약이 있다는 뜻이다. 개인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다르게 가르친다는 이치다.

‘촛불’로 우리 사회는 민주화란 험한 산을 넘었다. 넘고 보니 그보다 더 험한 산들이 줄줄이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산들이다. 험악한 여러 산들을 넘기 위해 기성세대가 사용한 20세기 민주화 장비는 시절인연에 맞지 않다. 응병여약의 장비가 당연히 필요하다.

레파 라디치(위)와 보티사우(사진제공= 송필경)
레파 라디치(위)와 보티사우(사진제공= 송필경)

Ⅴ. 젊은이들을 위한 정치

우리 정치에서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을 위한 정책 대결이 사라졌다. 오직 집권을 위한 흑색선전만 거리낌이 어지러울 뿐이다.

기성세대가 앞으로 젊은이들에게 의지해 노후를 보내려면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창조적인 에너지를 제공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정치판이 내 살고 상대를 죽이는 증오와 복수심만 불태우고 있다.

나는 치과의사라는 기득권을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20세기형 가치를 쫓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아버지께서는 사회문제에 눈 돌리는 나에게 먼저 가족들의 안락을 우선하라는 말씀을 귀 따갑도록 하셨다. 하지만 나는 사회민주화에 더 많이 눈을 돌렸다.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아주 작은 집조차 마련해주지 못해 집값 폭등에 아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젊은 날에 돈의 현실적인 무게를 과소평가한 결과 늙어가면서 서서히 불편해 온다.

바른 가치(진리추구)는 이상(理想 Ideale)이며 불교용어로 진제(眞諦)라 할 수 있다.
건전한 돈(경제/실리)은 현실(現實 Reality)이며 불교용어로 속제(俗諦)라 할 수 있다.

어느새 나도 '꼰대' 소리를 듣는 기성세대에 들어와 있다. 21세기 젊은이들의 취향에 어리둥절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 혁명의 맛을 보기 위해 사회주의 나라 쿠바를 여행했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 쿠바가 자랑하는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에 갔다. 영화에서 본 쿠바 특유의 음악색 짙은 공간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한 대형 극장식 유흥업소였다.

10명 이상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2∼30개 있었다. 사회자가 테이블을 돌면서 손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대답을 하면 그 나라의 국기가 큰 전광판에 나타나면서 그 나라의 대표 음악을 내보내면서 전문 댄서들의 춤을 곁들였다.

사회자가 우리 테이블에 왔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사우스 코리아'라 말했다. 바로 전광판에 태극기가 펄럭이며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울려 퍼졌다. 무대 위의 전문 댄서들은 물론 모든 무대 출연진들이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바로 각국에서 온 모든 테이블의 손님들도 동시에 일어나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우리 일행에게 무대 위로 올라오라 해서 모두 무대에 올라 춤을 추었다.

내 세대는 우리 대중문화를 업신여기면서 미국의 팝송문화를 우러러 봤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의 대중문화가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방탄소년단(BTS)이 비틀즈가 앉았던 자리에 있으리라고는 우리 세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쿠바에서도 가전제품은 삼성과 LG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자동차도 간간이 우리 차가 보였다. 쿠바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낯선 나라가 아니다.

Ⅵ. 우리는 일본을 따라야 할까?

21세기 대중문화에서 우리는 일본을 압도하고 물질적인 생산도 일본에 그리 뒤처져 있지 않다. 사실 우리 세대와 우리 앞 세대는 일본에 열등감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

40년 전 내가 치과 개업을 할 때 주요 장비와 재료는 거의 일제였다. 하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국산이고 초정밀 장비만 독일제다. 일부 화학제품 재료 외에 일제는 이제 치과에서 보기 힘들다.

어느새 우리가 여러 면에서 일본을 따라잡았고 일부는 일본을 앞지르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반도체를 쓰는 제품과 가전제품들 중 일제는 사라졌다.

일본이 왜 제자리걸음 중일까를 나는 생각했다. 일본의 기초학과 기술력은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의 인문학 수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사회 기반의 기초가 튼튼한 데도 일본이 비실한 아유를 나는 이렇게 본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앞세운 엘리트 정치관료제는 일사분란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일본의 융성을 이끌었다. 『로마 이야기』를 쓴 의외의 인물인 일본인 여성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제국의 흥망을 이야기하면서 흥의 요인이 망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식 관료제는 서구를 따라잡고 앞서는 흥의 요인이었지만, 20세기 말에 한 정점에 도달한 뒤 21세기에는 망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정치의 역동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천황을 신주단지로 만들어 신사참배와 같은 애국심으로 보수정치를 이끌었다.

이는 21세기 국제질서와도 어긋나는 시대착오이다. 변하고 있는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구질서의 지침서(매뉴얼)에 따르기 때문이다.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꾀하고 있으며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로 이웃인 우리와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집단은 천황을 교묘하게 이용해 민중의 저항을 막는다. 민중도 천황에 길들어 있어 우리처럼 4‧19 의거나 6‧10 항쟁, 촛불항쟁 같은 약동하는 민중의 저항이 있을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의 구체제 관성은 무엇보다 윤리적 반성을 통한 새로운 윤리가치를 창출하지 못했다. 천황제를 탄생케 한 19세기의 윤리적 가치로 20세기를 통과했지만 지금은 21세기이다. 위안부와 식민지 강제동원, 그리고 간도와 난징 대학살의 존재자체를 시대착오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나치의 만행을 철저하게 반성한 독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윤리를 모르쇠 하는 일본의 국력은 윤리적인 반성을 끊임없이 하는 독일의 국력에 점점 뒤처지고 있다.

Ⅶ. 아름다운 가치란 곧 윤리이며 국가의 진정한 힘이다

2001년 베트남에 첫발을 내딛고 난 뒤부터 우리는 일본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슴에 깊이 새긴 바 있다.

베트남은 민족의 숭고한 가치를 위해 미국에게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온 힘으로 싸웠다. ‘홍익인간’의 민족인 우리는 단군 이래 처음으로 다른 민족을 침공했다. 비록 미국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베트남이 대미항쟁에서 흘린 피는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고귀하다 할 수 있다. 우리는 베트남 마을에서 총을 들지 않은 아녀자와 노인, 어린이 등에게 잔인하게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폭력을 극복한 베트남에서 배울 건 배우고 주민학살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윤리적 자세가 필요하다.

1985년 5월 8일, 나치 패망 40주년을 맞아 독일의 바이츠제거 대통령은 젊은이들에게 어버이 세대의 잘못을 기억하도록 당부했다.

“우리는 모두 죄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우리의 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세대가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40년 전에 일어난 일에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를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본을 닮아야 할까, 독일을 닮아야 할까? 우리 젊은이들이 사회적 가치(진리추구)와 개인적 가치(실리)를 조화롭게 추구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게 기성세대와 정치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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