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의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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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나의 베트남!
  • 김기현
  • 승인 2007.03.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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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베트남 진료단 참가 후기-①

 

▲ 위령비에 견학 전에 진료단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였다.
그리움의 땅,
그러나 가고 싶지 않았던 나라.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다.
아마 어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술이라도 한두잔 마시고 푹 잘텐데...'

아침부터 밀려오는 환자들 덕에 몸은 피곤하지만, 오히려 괜찮다. 이렇게 늘어난 환자들을 앞으로 상대할 내 파트너인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오전을 보낼 수 있으니까....

점심을 먹고, 베트남가서 필요한 물품을 몇가지 샀다.
면도기, 헤드렌턴, 또 뭐가 있었지? 돌아다니다, 이내 포기하고 만다. 거기가면 대충 다 해결될거야 라는 심정으로... 사실 베트남을 이제 곧 만나게된다는 약간의 설레임과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생생히 보여준 비극의 현장, 그러나 그 전쟁의 승리로 인해 세계 모든 이들에게 '경외로움과 위대함'을 심어준 영광의 땅, 불가사의의 땅, 이전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영원히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로 장식될 베트남 혁명의 영웅 호치민의 나라.
이것이 내가 보고싶고, 그리워했던 베트남이었다.

베트남!!
그러나 별로 가고싶지 않았던 나라.

미국과의 지독한 전쟁을 마치고 나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해버려 곳곳에 궁핍의 흔적이 역력한 핍박의 땅, 이젠 도시 곳곳에 상업적 광고판이 넘쳐 흘러 급격한 자본주의의 물결에 휩싸여 가는, 그리하여 '아시아의 자존심'이 자본앞에 허무하게 주저앉은 듯 보이는 슬픔의 나라, 이곳 잘난 대한민국의 대로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이 말도 안되는 문구가 버젓이 걸린 유일한 나라.

보면 더 슬퍼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게 되었다. 그냥 가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스스로 가져버린 의무감이(사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는데도) 이곳으로 날 향하게 만들었다. '괜히 간다고 했을까?' 아직까지도 썩 경쾌하지는 않다.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부터는 나만 생각해야 했다. 몸은 어떻게 잘 건사해 올 것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이제 내 몸과 마음은 스폰지가 되어야 한다. 술과 베트남의 모든 것을 쑥쑥 빨아들이는 것 외엔 별다른 방도가 없지 않은가?

인천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서도, 공항에서 짐을 부치는 순간 순간에도 계속 그 생각 뿐이었다. 결국 호치민시의 '떤 썬 녓'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 생각뿐, 잠을 한숨도 못잤다. 그 긴시간동안...

피곤함이 배로 밀려온다. 어제 잠을 충분히 잤어야 했는데...


그를 좋아하게 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듯..

정확하진 않지만, 1989년 가을쯤으로 기억된다. 김남주 시인을 아주 가까이서(약간 사석인 자리에서)보게 될 기회가 있었다. 그 이후로 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게는 그냥 민족시인 중의 한사람이었던 그를, 단 한번(그것도 대화도 해본 것도 아니고) 가까이서 이야기를 들었던 것 뿐이었는데도....

그를 좋아하게 되는건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그 당시 어린 내가 보기에는 많은 나이였다)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한마디는 무척이나 열정적이고 순수했으며, 아름다웠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 그것이 무엇일까 하고 // 별 하나 외로이 / 서산 마루 위에서 빛나고 / 바람이 와서 / 내 귓가에 속삭인다 / 싸우는 일이라고 / 푸르고 푸른 조국의 하늘 아래서 /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 싸우다가 죽는 일이라고 designtimesp=32163> (김남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이렇게 그는 싸우다 죽었다. 아마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가 죽은 후 세월이 흐른 만큼 내 기억속에서도 그가 잊혀져갔다.

베트남으로 오기 1주일전 나와 아들은 자주가던 공원에서 '광주전남 추모사업연대' 회원들을 만났다. 그날이 고 김남주 시인 13주기 추모식이 있었던 날이었고, 그 공원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했다. 그를 좋아한 내가,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자주가던 공원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니... 역시 세월은 모든 것을 잊게 한다는 말, 참으로 맞는 말이다고 생각하며 혼자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됐든 그들과 함께 거길 둘러보게 되었고, 이제 그는 다시 내 기억의 편린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도 18년전 그에게서 받은 그 느낌, 그대로였다. 역시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치민시 '떤 썬 녓' 공항에서 이틀밤을 묵게될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오는 도중 버스 창밖으로 베트남을 보기위해 연신 기웃거렸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크락션 소리의 요란함만이 나에게 다른 나라임을 알려줬을 뿐.
술 한잔을 해도 잠이 오질 않는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본다. 억지로 청한 잠은 쉽게 안 오기 마련이지만, 몸의 피곤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든다.

아침잠 많기로 둘째가면 서러워할 나지만, 일찍이도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 역시 많이 못잤다. 사실 베트남에서는 이른 시각도 아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학교 수업이 내가 눈을 뜬 그 시각에 시작한다니..

씻고 거리에 나가보았다. 후끈거리고 덥고, 더러울 줄 알았던 거리가 그렇지 않았다. 건물형식의 상이함을 제외하면 그냥 한적한 도시풍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낯설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이제 18년전 광주의 한 구석진 식당에서 만났던 김남주를 보러간다.

김기현(건치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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